<전라도닷컴> 곡성, 시인의 마을 서봉리 ⑤

 

▲ ‘복(福)’이라고 지붕에 올린 글자, ‘인(仁)’이라고 담장에 쓴 글자, 삿된 것은 물러나고 길한 것만 들어오시라고 그려 붙인 부적들에 담은 마음은 애오라지 자식들의 평안을 향한 것.

“얼매나 강그리고 몽그리고”

<돈이 없슨게 안 와/ 경비가 든게로// 와야 줄 것도 없고/ 차비도 없고/ 그냥 작파해붓어/ 다들 힘들게 산디> (도귀례 ‘생일’)

생일 작파해야 도리어 마음자리 편안한 촌 어매들. 누구라도 한생애를 그렇게 살아왔다.

‘복(福)’이라고 지붕에 올린 글자들, ‘인(仁)’이라고 담장에 쓴 글자, 삿된 것은 물러나고 길한 것만 선한 것만 들어오시라고 그려 붙인 부적들에 담은 마음은 애오라지 자식들의 평안을 향한 것이었다.

대문간에 맨발로 앉아 팥을 추리는 김복님(78) 할매.

“할아부지는 가셨어. 13년짜여.”

생각하문 짠한 사람이라고 할매는 눈물을 찍는다.

“우리 영감 두 살 묵어서 어마니는 돌아가셨어. 의붓어매가 아들 밥그륵에 밥이 높은 꼴을 못봐. ‘너는 미련허게는 안 생겼는디 밥 담은 것이 참 미련하다’

고 지천을 해. 그 고된 일을 허는 사람인디 그 밥 묵은 것이 아까와서. 근디도 말대답 한자리를 못 내놓고 살았어.”

제월리 평촌서 열아홉에 ‘너이(넷이) 띠민 가매’ 타고 와서 발 내려놓은 자리가 서봉리 꼭대기였다.

“집도 꼭대기 밭뙈기도 꼭대기 논뙈기도 꼭대기. 비가 안 오문 모를 못 숭궈. 글문 서숙 갈고 메물 갈고, 메물을 비어서 방앳실서 밀가리 타대끼 타. 고놈을 죽을 쒀서 묵으문 메물내가 나서 못 묵겄어. 무시 조깨 여코 사까리 조깨 여코 뒤적거려갖고 보재기 깔고 딱 찌문 묵겄드라고. 그렇게 묵고 살았어.”

그리 고생시킨 큰딸하고 큰아들이 돈벌이를 나가더니 돈하고 옷을 사왔더란다.

“얼매나 강그리고 몽그리고 모탰을 것이요. ‘니그들 피눈물 나는 돈 안 받을란다. 옷도 사오지 마라, 어매가 날마동 쫄아든께 옷 사와도 안 맞는다.”

슬그머니 놓고 가는 돈을 모으고 입면 전체에 일 안 다닌 데가 없이 쑤시고 다니며 모 숭구고 서숙밭 매고 나락 비고 그렇게 남의 일을 했다.

“빤듯한 논 한나가 없었는디, 지금 논이 열야답 마지기여.”

손톱 밑에 들어간 흙을 파내어 모았어도 몇 산태미(삼태기)였을 것이다. 한 뼘의 땅이라도 늘려서 벼 한포기라도 더 심으려고, 논둑이나 밭둑을 호미로 조금씩 파서 제 땅으로 만드는 것을 두고 ‘호미로 땅을 산다’ 하였다.

“이런 촌에서 부모복 못 타고 난 애기들인께 뭐이라도 복이 되게끔 허고자프제.”

논에도 밭에도 지붕에도 담장에도 기둥에도 아비와 어미가 간절하게 써온 것은 자식의 안녕임을.

 

 

▲ 저세상에 간 남편이 꿈길로 돌아와 논을 사주고 밭을 사준다는 임순엽 할매. 부모의 고단했던 생애를 아는 자식들의 맘이 꽃으로 놓였다.

“꿈에 와서 논을 사주고 밭을 사주고”

할매는 맨발이다. “밭에서 금방 들왔어, 인자 씨슬라고.”

마당 너른 집에 사는 임순엽(71) 할매.

마당 넓은 집의 마당의 용도는 예전과 오늘이 다르다.

“나락 널라고 덕석 많이 필라고 마당을 널룹게 했더니 인자 기계에다 말려불고 근께 필요가 없구만. 인자 멍석 필 일이 없어. 꽤 같은 것 털문 잠꽌이나 널까. 아그들 오문 차는 두 대썩 들어와서 다 돌아나가고 근께 좋기는 헌디. 옛날에 우리집도 아그들이 차 한 대 샀으문 좋겄다 했더니, 그런 시상이 오기는 왔네.”

남원 대강면에서 시집온 할매의 생애사는 이렇게 압축된다.

“셋째 딸하고 셋째 아들이 만나서 아들 둘 딸 둘 낳고 살았제. 한날한시에 같이 가자고 했는디, 4년 전에 아저씨가 몬자 가불었어. 시집와서 암것도 없응께 남편이 남의집살이도 하고 고생 많이 했어. 아저씨하고 나하고 금호(금호타이어공장) 댕김서 농사 다 짓고, 오로지 모을라는 욕심으로 몸썰나게 일하고 살았어. 돈 모아지문 한 절반 빚 지고 논 사고, 빚갚으고 또 논 사고. 그때는 논이나 소 그런 것이 젤로 귀했어. 지금은 농사고 논이고 값이 없는 시상이 되아불었제만.”

그럴망정 꿈길 밟고 종종 아내를 찾아오는 남편은 꿈 속에서도 ‘사랑의 증표’인 양 아내에게 논을 사주고 밭을 사준다.

“요새도 꿈에가 잘 보여. 꿈에 와서 논을 사주고 밭을 사주고. 쩌참에는 논을 사주더니 요참에는 밭을 넓적한 놈을 사주대.”

부부의 한생애의 꿈이었던 논밭이다.

“논은 우리 아저씨 살아계실 때, 한 5년 전에 애기들한테 노놔줬어. 우리 엄마아빠가 어찌고 산논인디 그것이 이러코 내 앞으로 왔다고 배달온 등기를 보듬고 우리 딸이 울었다요.”

부모의 고단했던 한생애를 아는 그 마음. 마당 넓은 그 집 토방에 지난 어버이날 자식들이 사온 꽃바구니의 카네이션이 색색이 곱다.

 

 

▲ “우리 영감 속은 평화강산이여. 입에서 나온 소리가 버릴 것이 없어.” 환갑 나이로 늙지 않는 영감을 자꾸 들여다보는 김옥남 할매. 사진으로 걸린 식구들 한데 불러내어 왁자글 놀고 싶은 봄날이다.

“생지가 먹고 잡다네, 영감이”

<똥구먹을 빡빡 다듬어 갖고/ 나풀나풀허니/ 싸악 다듬어서/ 저녁에 간 쳐놨다가/ 배추 담을라고// 생지가 먹고 잡다네, 영감이> (도귀례 ‘오래 사시쇼’)

‘빡빡’ ‘나풀나풀’ ‘싸악’ 다듬은 그 공력은 오직 생지가 먹고 잡다는 영감을 위함이다.

초콜릿이나 케이크가 아니고 ‘생지’에 은근한 사랑을 담아내는 할매들이 사는 마을.

<설 세고 남편이 휴가를 왔네/ 부엌에서 일 하다가 돌방을 못 넘어 가겄네/ 서방 얼굴을 못 보겄어서/ 작은 방에 건너를 못 가겄네/ “삶서 애썼네”/ 뭐라 대답할 수도 없네/ 사흘 있다 가븐께 벙하네/ 열 아홉에 시집와서 스무 살에 군에 갔는디/ 서당에만 다니느라/ 집에도 잘 안 왔는디/ 섣달에 영장 나온께/ 얼굴 볼 새도 별로 없었는디> (김점순 ‘휴가’)

 

▲ 김옥남·배봉환의 혼례식 사진.

 

“음력 10월에 결혼해서 섣달에 영장이 나왔어. 쬐깨 연기해서 설 쇠고 갔어. 4년을 휴가 한번썩 오문 거석하고 부끄롸. 글제하문, 한번썩 오문.”

혼인한지 4년이 되도록 김점순 할매한테 남편은 ‘거석’한 사람이었다.

“낮에는 만나보도 못해. 어른들 볼 직에는. 좋다는 표현을 어찌고 해.”

좋다는 말은 없어도 휴가 왔다 가는 남편이 어른들한테 차비라고 받은 돈을 슬쩍 놓고 갔더라고 말하는 이는 윤금순 할매.

“물 묵으로 오는 것매니로 와서 귀퉁이에다 돈을 내놓고 가.”

김옥남 할매는 영감이 가고 영감 따라 천리향꽃이 가버린 것이 서운하다.

“우리 영감이 꽃을 좋아해. 내장산가 백양산가 거그서 이 백일홍 나무를 캐다 숭궈놓고 천리향도 사다 숭궜는디 죽어불었어. 숭근 사람이 돌아가시문 죽어분다고 글데.”

환갑 사진 속엔 손자 열 명을 앞에 둔 영감이 앉아 있다.

▲ 그림·양양금

“우리 영감은 암것도 자랑할 것 없는디 속은 평화강산이여. 영감 앞에서 욕 한번 해갖고 그 욕 다시 해보라고 네 시간을 보꼈어. 입에서 나온 소리가 버릴 것이 없어.”

평화강산 영감은 저세상에서도 평화강산이련만 남편 떠난 빈자리가 헛헛하다.

<나무를 때면서/ 속상한 생각/ 3년을 때니까 없어지네/ 허청이 텅 비어브네> (김막동 ‘남편’)

사진으로 걸린 식구들 한데 불러내어 왁자글 놀고 싶은 봄날이다.

<새끼들을 기다렸다/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새끼들// 이 놈도 온께 반갑고/ 저 놈도 온께 반가웠다// 새끼들이 왔다 간께 서운하다/ 집안에 그득흐니 있다가/ 허전하니// 달도 텅텅 비어브렀다> (박점례 ‘추석1’)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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