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호 지음/ 창비

100만, 200만… 전국의 광장에서는 1987년 이후 최대의 인파가 든 촛불이 넘실거리고 있다. ‘대통령 하야’라는 분명한 구호와 함께 사어(死語)로 전락해가던 ‘혁명’이 ‘명예혁명’ ‘시민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이제 혁명은 목숨 건 투쟁이 아니라, 생활 속 즐거운 축제와 다르지 않은 이름이 되었다. 터져나오는 외침들은 저마다 억눌러왔던 분노의 표현이기도 하다. 세월호 이후 변하지 않는 국가, 당리당략에 목숨 건 정치인들, 제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기득권자들, 자그마한 권력이라도 쥐었다 하면 ‘갑질’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한 이들에게서 “싸그리 망해버려라” 하는 ‘리셋’의 감정이 자라나는 중이었다.

변화의 갈망과 파괴의 감정이 동시에 터져나오는 시점에, 그 근원을 캐묻고 다시 역사로 귀환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엄기호가 신작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를 들고 돌아왔다. 손꼽히는 파워라이터인 저자는 이번 책에서 과격화된 세계와 개인을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파헤친다. 특유의 아래로부터의 글쓰기로 사회학 대중화를 이끌어온 저자는 혐오와 리셋의 감정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지, 그리고 그 끝은 무엇인지,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거꾸로 가는 한국 민주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미래를 위한 제안을 담은 이 책은 망가져가는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서이자, 우리 사회를 복원하기 위한 처방전인 셈이다.

우리 시대의 소통 불가능성에 대해 분석한 '단속사회', 이러한 관점을 학교 현장에 적용한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출간 이후 저자는 ‘왜 우리 아버지는 박근혜를 찍었을까’ ‘세월호 이후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같은 주제의 대중강연을 이어가며 변함없이 엉망인 한국 사회의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단속사회' 출간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는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 사회는 메르스 사태, 강남역 살인사건, 구의역 사건 그리고 최근에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까지 엄청난 일들을 겪어왔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매번 광장에 섰고, 권력은 망각을 강요했다. 광장의 조증과 일상의 울증을 함께 앓으며 지낸 그간의 삶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이것이 이번 책의 물음이다. 그리고 그 키워드는 ‘리셋’(reset)이다.

리셋에 대한 언급은 세대를 불문한다. 저마다 ‘시대의 주역’임을 자처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 사람들은 배제되어 있다고 느낀다. 전쟁의 참화 위에서 나라를 만들어왔다고 자부하는 어르신들은 “싸그리 망해버려라”를 입에 달고 살며, ‘N포 세대’라 불리는 젊은 층은 불의와 부당함에 저항하며 ‘리셋’을 외친다.

나와 세상, 나와 타인과의 관계 재정립 문제부터 현안에 대한 관점의 문제까지, 이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폭넓게 살핀다. 독자들은 ‘혐오’와 ‘리셋’의 정념을 넘어서기 위한 방안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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