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열린 ‘자물쇠’

마침내 자물쇠가 열리기 시작했다. 대기업 재벌 총수들이 국회 청문회에 참석하는 가운데 엘시티 인허가 과정의 진실이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검찰은 엘시티 관련 특혜와 비자금 조성, 정치권에 불법적으로 전해진 정황 등을 놓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던 엘시티 게이트는 전현직 청와대 인사와 부산 정치권을 겨냥하며 조금씩 몸통을 향해가고 있다.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어디로 이어질지 재계와 정치권의 긴장감도 커지는 형국이다. 엘시티 게이트의 최종 목표지점을 전망해 봤다.

 

 

정치권과 재계의 부적절한 유착, 각종 특혜성 의혹과 강제 모금, 비자금 조성 등 마치 수십년전의 상황을 보는 듯하다.

엘시티 인허가 과정에 관여한 공무원들과 정치권 인사들이 검찰에 줄소환될 것으로 전해지면서 관련 정치권과 관가가 발칵 뒤집혔다. 부산지검 특수부는 최근 부산시청 건설본부장을 지낸 엘시티 시행사 감사 이모씨를 재조사했다.

전관예우의 영향력이 강한 건설업계에서 이씨가 엘시티 관련 공무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펼쳤는지가 핵심 관건이다. 그는 ‘자물쇠’로 불릴 만큼 입을 닫아왔던 이영복 회장이 1990년대 말 부산 다대․만덕 택지전환 특혜 사건에 연루됐을 때도 부산시청 건설 허가 관련 부서에 간부로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엘시티 시행사 감사로 자리를 옮긴 것도 뒷말이 무성하다. 이 씨는 2009년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으며 위원회는 이후 엘시티에 특혜성 행정조치를 연이어 내놨다.
 

곳곳 ‘의혹 투성이’

지역 소식통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제약이 많은 중심지 미관지구가 일반미관지구로 바뀌었고 60m로 제한된 해안 쪽 건물 높이도 풀렸다. 사실상 엘시티가 주거시설을 포함 초고층 복합건물을 지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셈이다.

더구나 이 회장 등은 500억원이 넘는 회삿돈을 빼돌리거나 횡령했고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이사에 로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엘시티 비리 연루 혐의로 한 차례 소환 조사를 받은 정기룡 전 부산시장 경제특보도 계속해 수사 대상이다. 검찰은 정씨가 엘시티에 근무할 당시 받은 급여가 비정상적으로 회계 처리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6년간 엘시티 시행사에서 일한 정씨는 2008년 8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엘시티 총괄 프로젝트 매니저를 지냈다. 이후에도 엘시티 자산관리 부문 사장, 엘시티 고문을 지냈다.

이들 외에도 부산시청과 해운대구청, 부산도시공사의 전현직 고위 인사들이 검찰의 조사를 받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엘시티 비리의 몸통은 비단 지역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상 청와대가 몸통이란 의혹이 무성하다. 부산지검 특수부는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구속했다. 이 과정에서 현 전 수석은 자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검찰은 현 전 수석이 이 회장에게서 채권․채무관계를 가장해 받은 돈이 당초 알려진 30억원이 아닌 50억원 규모로 파악하고 수사 중이다. 현 전 수석은 이 회장과 지인 간 돈거래가 이뤄지도록 소개했을 뿐 돈은 받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현 전 수석이 엘시티 사업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포스코건설 시공사 참여를 알선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대가로 이 회장에게서 거액을 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엘시티 시행사가 부산은행으로부터 3800억원을 대출받는데 현 전 수석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 회장의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그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한 때 신용불량 상태이던 이 회장의 엘시티 시행사에 수천억원이 전격 대출된 것도 논란이다.
 

“돈을 먹을 수 있을 때”

엘시티 비리와 청와대와의 관계도 점차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 회장이 도피 중이던 지난 10월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코리아 VR 페스티벌’에선 박 대통령이 이 회장의 아들 이모씨가 최고경영자로 있던 벤처기업 전시부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또 비선실세 최순실씨와의 친목계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씨의 인맥을 이용해 각종 이권을 챙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최씨가 계원인 줄 몰랐다”고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의 아들 이 씨는 정부의 창조경제 사업에 추진 위원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만큼 엘시티와 청와대의 관계가 실체가 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이 씨는 에프엑스기어의 대표로 재직하던 2013년 11월 미래부 산하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창조경제문화운동’ 추진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했다.

창의재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창조경제 문화를 확산하고자 다양한 분야와 연령대의 인사를 추진 위원으로 뽑았다”고 해명했다. 창의재단은 최순실씨의 조카 사돈인 김모씨가 기업 파견직으로 일해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이 회장의 아들 이 씨는 서울대 이공계 박사 출신으로 2004년 에프엑스기어를 공동 창업해 대표를 맡다가 지난 10월 퇴사해 부친 이 회장의 회사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굳게 닫혔던 이 회장의 입이 열린 것도 아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엘시티 비리의 진실 규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누리당을 탈당한 이성권 전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누가 이 사람을 정무수석에 앉힌 것일까”라며 “그분이 일말의 책임도 없다는 자세를 취할 것 같아 분노스럽다”고 청와대를 겨냥했다.

그는 또 “현 전 수석은 ‘돈은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닌 사람”이라며 “그에게 애초부터 ‘공공의 가치’란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엘시티 관련 정관계 인사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있는 가운데 몸통을 제대로 수사하기 위해선 또 다른 특검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시대를 역행하고 있음을 보여준 엘시티 사태의 결말이 어디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