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외부감사’ 종합대책 발표

정유년 초입부터 재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지난해 해양․조선 분야의 침몰과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신정경유착 의혹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금융당국은 최근 기업 외부 감사 시스템에 대대적인 수술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외부 감사의 3대 축이라 할 수 있는 선임, 감사, 감독 과정을 모두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각 기업들의 부실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현재 회계 시스템으로는 대형 회계부정 사태를 차단하기 어렵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거대한 변화가 예상되는 회계 시스템과 기업들의 대응을 예상해 봤다.

 

 

더 이상 대형 회계부정 사태를 지켜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들의 도덕성 해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직접적인 타격으로 이어지면서 손 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최근 기업 외부 감사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보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엔 상장사 감사인 지정제 확대, 감사인 등록제 도입, 핵심감사제 적용 확대, 감리주기 단축, 제재 강화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대거 포함됐다.

그 동안 재벌 등 기업들을 감사해야 하는 회계법인들은 ‘갑’인 기업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일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의 회계 수준은 국가 경쟁력 등에 비쳐볼 때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은 지난해 회계 및 감사 부문 평가에서 한국을 61개국 중 꼴찌인 61위로 평가했다. 세계경제포럼 평가도 하위권인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전세계 꼴찌 수준’

이로 인해 대형 회계 부정 사건도 약방에 감초처럼 줄을 이었다. 2013년 3800억원 규모의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한 대우건설, 분식회계를 통해 3조원대 사기 대출을 일으킨 모뉴엘, 그리고 2015년 5조 7000억원대의 분식회계가 적발된 대우조선해양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분식회계를 통해 부정을 저지른 기업과 부실감사를 한 회계법인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우조선의 경우 실적을 부풀리려는 최고경영자와 이를 묵인한 회부감사법인의 공조로 판명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업 경영진의 경우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의식이 부족하고 감사인은 저가수주로 인한 독립성 부족으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막대한 회계부정에 비해 제재 수준도 낮아 문제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대책 중 가장 핵심은 상장사 외부감사인 선임 기준의 강화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직접 외부감사인을 지정해 주는 ‘직권지정제’ 대상을 확대하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과 분식회계에 취약한 기업 등에 ‘선택지정제’를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전체 상장사 1958곳 중 지정감사제 적용 대상 기업이 현재 6.8%(134곳)에서 50%(980여곳)로 많이 늘어나는 셈이다. 그 동안 ‘자유수임제’였던 곳들이 ‘지정감사제’ 중심으로 바뀌면서 감시 체제가 강화되는 것이다.

기업 내부 감시를 위한 통제․강화 장치도 보완할 예정이다.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한 감사인 인증 수준을 ‘검토’에서 ‘감사’로 상향 조정했으며 내부고발 포상금도 1억원에서 10억원으로 올렸다.

하지만 당초 회계업계가 요구한 ‘전면지정제’는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회계법인의 무리한 외부감사 탓에 문제가 없는 기업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게 고려 대상이었다. 부실감사의 원인인 ‘저가 수임’ 방지를 위해 ‘최저감사보수’를 정해 달라는 회계업계의 요구도 수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 관계자는 이에 대해 “높은 감사보수보단 적절한 감사인력 투입과 감사시간 확보가 더 중요하다”며 “가격은 시장원리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분식회계 취약 회사’

한편 이번 수술 대상엔 상장사 감사인 등록제와 핵심감사제 확대 적용등도 포함됐다. 일정 요건을 갖춘 회계법인만 상장사를 감사할 수 있도록 등록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 동안 문제가 됐던 부실 회계법인을 골라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지난해 7월부터 조선․건설 등 수주산업에만 적용해 온 핵심감사제를 단계적으로 전체 상장사에 도입하기로 한 것도 눈길을 끈다. 외부감사인이 중요한 재무․회계정보를 의무적으로 감사보고서에서 상술하도록 해 투자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리고 피해를 막겠다는 목적이다.

이와 함께 감리 주기는 25년에서 10년으로 단축한다. 자료제출요구권과 계좌추적권 등 강력한 감리 수단을 확보해 상장사 회계실태를 상시 모니터링하겠다는 게 금융당국의 의지다.

회계 부정에 대한 처벌원칙도 강화했다. 회계부정을 일으킨 회사는 분식 금액의 20%를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감사인도 감사보수의 5배 이상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보다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내부통제 미비 시 내부 감사위원에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현행 5~7년인 형벌도 징역 10년 이하로 늘리고 분식 규모가 큰 경우 5년 이상 징역 등 가중처벌할 예정이다.

재계에선 대기업집단 소속이거나 금융업종인 상장사들이 일차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분식회계 우려가 높은 업종도 마찬가지로 긴장하는 분위기다. 분식회계에 취약한 회사에 대해 도입하기로 한 ‘선택지정제’는 일정 기간 이상 동일한 회계법인의 외부감사를 받아 왔던 상장사가 새로운 희망 회계법인 3개를 제시하면, 증권선물위원회가 그 중 한 곳을 지정해주는 방식이다.

분식회계에 취약할 수 있는 회사로는 소유․경영이 미분리되거나 최대주주 변경이 잦은 회사, 소액공모나 최대주주 등에 대한 자금대여, 자산양수도가 잦은 기업, 투자주의 환기종목, 감사전 재무제표 제출 지연이나 감사시간이 적은 회사, 회계투명성 유의업종에 속하는 상장사 등이 거론됐다.
 

“투자자들만 뒤늦은 분통”

금융위 관계자는 “회사가 업종 특성을 잘 알고 감사 능력도 충분한 감사인을 추천해 지정받기 때문에 감사인 변경 뒤 첫 감사의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회계법인의 금지 업무로는 감사 대상 기업의 매수 목적 자산실사 및 가치평가, 자금조달․투자 관련 알선 및 중개업무, 자회사에 대한 비감사용역 등을 추가했다.

금융당국은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회계부정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자 지난해 8월 회계제도개혁 태스크포스를 꾸려 투명성과 신뢰성 제고를 위한 종합대책을 논의했다.

선택지정 대상의 경우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이고 해외 주요 거래소에 상장하지 않은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SK, LG, 롯데 등 대규모기업집단 200여곳과 하나금융, 미래에셋대우 등 금융사 60곳가량이 포함돼 대상 기업들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그 동안 회계부정사건의 대부분은 회계법인들이 기업들의 눈치를 보며 묵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로 인해 허위 처리된 회계장부만 보고 투자한 투자자들만 뒤늦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현행 자유선임제에 따라 기업이 마음대로 외부감사인을 선임하다보니 갑을 관계가 뒤바뀔 수밖에 없었다. 업계에선 그 동안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방조됐던 회계 부정 사건이 이번 대책으로 근절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신정경유착 논란으로 재계가 긴장하는 가운데 새롭게 시행될 회계제도 수술이 어떻게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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