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지음 / 돌베개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늘 처음을 맞이한다. 어젯밤 덮고 잔 이불 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이한다. 매일 매일이 언제나 새봄, 새날, 새아침이다. 우리의 일생은 처음과 함께 시작하고 처음과 함께 끝을 맺는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그렇다면 신영복 선생이 이야기하는 ‘처음처럼’은 무엇인가? 내 삶의 자리를 끊임없이 반성하고 살펴보겠다는 다짐이다. 수많은 처음을 살펴보고 만들어내는 까닭은 바로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될 무수한 역경을 꿋꿋이 견뎌내기 위해서이다.

선생의 글은 늘 내 삶으로 들어와 내 방식대로 해석된다. 이는 선생의 글과 그림이 삶의 현장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주 말씀하신 서삼독(書三讀), 즉 ‘책은 반드시 세 번 읽어야 한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필자를 읽고, 마지막으로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한다’는 뜻과도 같이…. 수많은 처음을 시작하며 힘들고 어려울 때 선생의 글을 읽노라면, 어느새 나를 위로하는 글이 되고 또 나를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굳세게 지금의 ‘처음’을 잘 버티고 이겨 나가라고 어깨를 다독이며 든든한 당부의 말을 남긴다.

선생이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감옥에서 쓴 옥중 서간의 귀퉁이에서부터였다. 이 편지를 읽을 어깨너머의 독자들, 유용이 주용이 화용이 민용이 두용이, 어린 조카들에게 편지 한 모퉁이에 예쁜 그림을 선물로 그려주던 것이 신영복 그림의 시작이다. 이후 『나무야 나무야』와 『더불어숲』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선생이 그림을 그린 까닭은 언어의 관념성과 경직성 때문이었다. 선생이 그린 그림으로 인해 선생의 글은 쉽고 구체적이며 정감적으로 다가온다. 선생이 생전에 이야기한, 문사철의 좁은 그릇을 뛰어넘어 시서화의 자유로움으로 사유할 수 있는 방편인 셈이다.

『처음처럼』은 신영복 선생이 쓰고 그린 글과 그림 가운데 그 고갱이들을 가려 모은 잠언집이다. 선생의 평생의 사상이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제 ‘신영복의 언약’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신영복 선생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言]과 약속[約]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저자는 이 세상에 없지만 새로운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하며, 저자는 책과 함께 독자들의 삶에 동행인이 될 터이다. 선생은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무기수의 옥중 서간이라면, 이 책『처음처럼』은 다시 쓰고 싶은 편지라고 하였다.

이 책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심어린 성찰’이 담겨 있다. 관계론을 바탕에 둔 신영복의 철학이 담겨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사색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큰 울림의 언어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처음 선보이는 책은 아니다. ‘신영복 서화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서 지난 2007년에 초판이 출간되어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근 10년 만에 새로이 펴내는 ‘개정신판’ 『처음처럼-신영복의 언약』은 바뀐 부제만큼이나 내용과 구성에서 많은 변화를 꾀했다. 2015년 11월에 새로 선생께서 추리신 ‘처음처럼’ 원고가 편집자 손에 전해졌다. 초판본에 실리지 않은 새로운 글과 그림을 대폭 추가해 주셨다. 그 당시 이미 선생의 병환이 위중해서 더 이상 집필이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선생은 병환 중에도 이 원고를 놓지 않고 몸이 허락하는 한 문장을 다듬고 그림을 모아 주었다. 이 책은 생전의 선생이 마지막까지 손수 정리한 유작인 셈이다.

새로이 편집하면서 마치 저자의 처음의 자리를 마주하는 듯했다.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나 글’이라는 뜻대로 선생의 아포리즘은 참되고, 직접 그린 그림은 정겹고, 글씨는 다정하였다. 비록 선생은 돌아가셨지만 선생의 ‘언약’은 새롭게 출간되는 이 책과 더불어 새로운 독자의 탄생을 기다린다. 생전의 선생이 즐겨 읊은 구절,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처럼 선생의 전언은 수많은 독자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강물처럼 흐르고, 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