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지금여기> 채성욱 선생의 ‘학교’

지난달 방학 숙제의 예를 들어 아이들을 좀 가만히 두자는 글을 썼었는데 바로 뒤이어 방학 숙제 때문에 부모에게 혼난 11살 초등학생이 아파트 10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뉴스가 들려왔다. 우리나라 나이로 11살이라면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이다. 4학년. 당신은 4학년이 10층이나 되는 높은 곳에서 스스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상상이나 되는가? 내가 있는 교실에서 바로 한 층만 내려가면 보이는 그 작고 귀여운 것들이 4학년인데 이 아이들 중 단 한 명이라도 그런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상상도 못하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어린 아이가 자신의 목숨을 끊는 극단적 행동을 했음에도 우리 사회는 아무런 논의나 반성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아이들의 자살 뉴스가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것인지 아니면 죽음이라는 마지막 종착역에 다다른 것을 숙제도 하지 않은 아이의 탓으로 생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뭐가 되었든 이토록 어린 아이가 죽음을 선택하였는데도 아무런 논의나 반성이 없다는 것은 분명히 무엇인가 심각하게 잘못된 일이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 이번에는 학원만 6개를 다니며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6학년 남자 아이가 엄마 체크카드를 훔쳐서 가출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당돌하게 집을 나가 버린 이 아이의 이후 행적은 앞서 자살을 선택한 아이만큼이나 마음이 아프다. 훔친 카드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PC방도 가고, 친구들과 여기저기 놀러갈 만도 하건만 이 아이는 단지 가족과 행복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부산으로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영특하다고는 하지만 어른도 처음 가는 길이라면 긴장할 수밖에 없는 그 먼 길을 아이는 오로지 좋았던 추억만 떠올리며 걸음을 내딛었다. 이 아이가 바란 것은 그저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 뉴스에서도 아이보다도 더 주목을 받은 것은 정지된 카드를 사용하려다 경찰서에 들어온 아이에게 부산의 명물인 ‘돼지국밥’을 사 먹이고 집으로 돌려보내준 경찰들이었다. 13살 아이가 카드 한 장 들고 추억을 더듬어 집을 떠날 만큼 힘들고 여리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것도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는 그저 흔한 일 중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 특위에 따르면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노무현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1,2차 기본 계획에 따라 2006년부터 2015년에 걸쳐 퍼부은 돈은 무려 80조 2000억 원이었다. 그리고 3차 계획 기간인 2016년부터 오는 2020년까지 저출산 명목으로만 무려 108조 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액수도 액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천문학적 돈을 퍼부어도 저출산이 해결될 별다른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그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로 분석한 자료는 여기저기 많으니 미천한 내가 더 언급하지는 않겠다. 나는 그저 교사로서 한 가지만 묻고 싶다. 여러분들 주위에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는가? 그냥 어리고 작은 아이들 말고 정말 아이다운 아이, 행복한 아이 말이다. 그런 아이들이 주변에 얼마나 있는가? 이것저것 따지기 싫다면 아이들에게 한번 물어 보기라도 하자. ‘넌 지금 행복하니?’ 라고.

11살이라는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아이는 돈이 없지도 않았고, 집안이 망한 것도 아니었고, 취업이 잘 안 된 것도 아니었고, 너무나 사랑했던 연인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물론 이런 까닭이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어른들에 비하면 자살을 할 만한 요인이 그다지 크지도, 많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무엇을 바란 것이었을까? 어쩌면 이 아이는 그저 마음껏 놀고 싶었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제도권 교사로서 학교라는 공간이 아이들을 결코 행복하게 해 주는 곳이 아님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마 이 아이는 지긋지긋한 학교를 잠시라도 쉴 수 있는 방학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리라. 드디어 기다리던 방학. 여느 아이들처럼 방학에도 숙제라는 것이 주어지긴 했지만 아무런 계획 없이 마음 한구석에 짐 덩어리를 간직한 채 그저 놀고 싶었을 것이다. 놀고 싶었을 뿐이었다. 11살의 아이는 그저 놀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이 얼마나 당연한 욕구인가? 아이가 논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그러게 해야 할 게 있으면 그거부터 하고 놀지. 왜 무작정 놀고 부모 가슴에 못 박아?’ 라고 욕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그러는 당신은 얼마나 계획적으로 할 거 다 하고 사시는지? 그리고 그 할 거라는 게 그냥 마구, 때론 감당하지도 못할 만큼 주어지면 당신은 어떨지?’ 되묻고 싶다.

아이가 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이가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바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2월 초 가슴을 울린 이 두 사건에서 보듯이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당연한 것들이 철저하게 차단되고 무시되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고생길이 훤한, 그 고생길을 죽을 각오로 헤치고 지나가면서 옆에 있는 수많은 친구들을 제거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앞날이 깜깜한 어린 전사가 있을 뿐이지 아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고생하며 자라온 기억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저장되고 이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종족 번식의 본능에도 자신과 비슷할, 어쩌면 더 처절하게 살아남아야 할지도 모를 또 다른 전사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런 상황이라면 아이를 낳지 않아야 맞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정부의 저출산 대책을 보면 분노를 넘어 말문이 막힌다. 만 9세 이하 어린 아이의 한 달 육아비용이 평균 107만 원에 이르고 아이 한 명당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들어가는 양육비용은 무려 3억 원이 넘는 것이 현실임에도 셋째를 낳으면 겨우 몇십만 원의 돈을 주는 그 천박하고도 더러운 아이디어를 보았을 때는 마치 많은 노예를 얻기 위해 번식을 강요하고 말 잘 들은 노예에게는 푼돈 얼마 쥐어주는 것 같은 모욕감마저 느꼈다. 완전한 지배자로서의 어설픈 온정, 그 따위 것은 이제 필요 없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잡힌 세상.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다.

외국에 살고 있는 같은 인간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하는 미친 경쟁구조, 놀아야 할 시기에 놀지도 못하고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배양기 속의 인간처럼 오로지 필요한 것을 생산하기 위해 모든 감각을 통제 당한 채 주입되는 대로만 살아가야 하는 철저한 비인간성, 인간이기에 고귀하다고 가르쳤으면서 돈 없고 권력 없는 인간들은 개, 돼지라고 부르거나 때론 그것만도 못하게 대하는 것들, 포퓰리즘이라는 궤변으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채 오직 개인의 탓만 늘어놓는 복지제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과를 공부하고 가장 오래 학교에 머물면서 공부라는 것을 하건만 그것도 부족해서 개인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더 지불해야만 버틸 수 있는 제도권 교육과 사교육,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나날이 심해지고 굳어져만 가는 계급사회. 이것이 부모와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출산을 하는 것이 정상인가? 피임을 하는 것이 정상인가?

저출산이 걱정되는가? 그렇다면 제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라. 놀고 싶으면 놀 수 있게 해 주고 가정에서 행복감으로 충만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행동하라. 학교교육의 근본부터 갈아엎고 제발 진지하고 진실되게 고민하고 행동하라. 지금의 저출산 대책은 고장난 신호등은 그대로 둔 채 횡단보도만 자꾸 덧칠하는 것과 같다. 문제는 번식을 하지 않는 여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양육이 너무 힘들기 때문도 아니다. 돈이 없기 때문도 아니다. 부모와 아이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이 더럽고 치사한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자유롭고 행복한 아이다운 아이.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보람 있고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안전한 가정. 108조의 예산은 이러한 구조와 질서를 새롭게 만드는 데 쓰여야만 한다.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놀고 싶고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지극히 당연한 것들마저 채워지지 못해 일어난 이 비참한 일들. 이런 뉴스가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세상이 되길 108조라는 돈에라도 기대어 바라본다.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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