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미네르바’로 등단한 김경성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가 나왔다. 언어의 촉수를 뻗쳐 시공간으로 침투해 견고한 시적 세계를 이룩한 시들을 엮은 것이다. 들끓는 ‘붉음’과 고여 있던 ‘붉음’의 마찰은 매혹적인 단 하나의 색으로 쏟아진다. 시인은 폐허를 지키는 사람이었다가, 들끓는 마적 떼를 품은 사람이었다가, 동시에 날아오르는 천 마리의 새떼를 지켜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시인이 가진 언어의 변주곡으로 읽어내는 풍경은 생동감 있는 ‘붉음’으로 마침내 도달하게 된다.

시인은, ‘단독의 개별 세계’에서, 무수한 개체들이 뒤섞이고 스며들며 서로 상관하는 ‘관계적이고 총체적인 세계’로의 도약을 가능하게 만드는 신비롭고 충만한 언어의 소유자다. 이를테면, “부리가 둥글어서 한 호흡만으로도 바람을 다 들이킨다//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는 해국/수평선의 소실점에 가닿을 수 있는 것은 향기뿐이라고/부리 속에 향 주머니를 넣어두었다”(「해국」)라며 ‘해국’을 ‘날개가 없는 새’로 환치해 꽃이 필연적으로 짙은 향기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이것이 김경성 시인이 등단 이후 지속적으로 추구한 시작(詩作)의 바탕이자 근본이며, 시인이 집약한 언어의 광휘들이다.
 

어떤 나무는
절구통이 되고
또 다른 나무는 절구공이가 되어
서로 몸을 짓찧으면서 살아간다

몸을 내어주는 밑동이나
몸을 두드리는 우듬지나
제 속의 울림을 듣는 것은 똑같다

몸이 갈라지도록, 제 속이 더 깊게 파이도록
서로의 몸속을 아프게 드나든다
- 「따뜻한 황홀」 부분
 

시인이 보는 것은 “몸이 갈라지도록, 제 속이 더 깊게 파이도록/서로의 몸속을 아프게 드나”드는 ‘나무’라는 한 몸이다. 그것이 비록 사용과 기능에 따라 다른 이름을 부여받았고, 또한 다른 사물로 변용되었지만 애초에 그것들은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절구통’과 ‘절구공이’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나무’와 ‘물고기’, ‘해국’과 ‘날개 없는 새’ 등 시인이 감각할 수 있는 모든 대상에 적용된다.
 

백사장에 흩어져 있는 새들의 말과 책 속에서 흘러나온
말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저릿한 말들이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오! 온몸 가득히 느껴지는 오르가즘
화라락 불붙듯이 한꺼번에 서고를 덮치는 해일
속수무책이다
- 「오래된 서고」 부분
 

김경성 시인은 언어의 촉수에 상당히 민감하다. 그의 반응 속도는 대상의 나타남과 거의 동일한데, 대상의 이름을 통해 내면의 깊이를 가늠하며, 또한 그 이름들이 가진 ‘공통 척도’(랑시에르)를 통해 세계를 재구성한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름들은 시적으로 촘촘하게 얽힌 대상의 본질은 물론 그것들의 상징적 관계와 현실적 나타남의 비가시적 충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매개로 작용하며, 세계를 개별의 집합체가 아닌 전체 혹은 내적 공동체로써 변용시킨다.
 

깨지지 않는
뜯어지지 않는 고요를 둘둘 말아서 입천장에 붙이고
혀로 꾹 눌려놓는다

마음은 시침처럼 느리게
몸은 분침처럼 조금 빠르게
 

김경성 시인은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2011년 ‘미네르바’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와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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