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서울로 7017’에 가다

오후 3시. 한여름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 찐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이 마치 아이스크림 녹는 듯하다. 모자라도 쓰고 올 걸…. 정수리 한가운데를 내리찍는 듯한 뜨거운 햇빛. 머리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몇 걸음 떼자 땅이 빙글빙글 돈다. 한여름엔 얼마나 더우려고 벌써부터 날씨가 이러는지, 걱정이다. 서울역이다. 8번 출구로 나간다. 지난 5월 20일 개장한 ‘서울로 7017’을 찾아가는 길이다.

 

 

‘차량길’에서 ‘사람길’로

‘서울로7017’이란, 서울역 고가도로를 ‘차량길’에서 ‘사람길’로 재생하고, 단절된 서울역 일대를 통합, 재생해 지역 활성화와 도심 활력 확산에 기여하는 사람 중심 도시 재생의 시작이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급격한 인구증가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서울역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형태로 설계되어 1970년에 준공된 서울의 상징적 구조물이었다. 서울역을 휘감고 도는 고가도로는 지난 45년 여 동안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추억을 선사해줬다.

 

 

1990년대 말부터 서울역 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는 매년 제기돼 왔다. 서울시는 정기적인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 진단을 통해 매년 보수공사를 진행해왔다. 그러다가 2006년 심각한 안전문제 제기로 차량운행 전면 통제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철거 수순을 밟기까지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철거 검토의 배경에는 교통보다는 안전, 그리고 사람이 1순위인 서울시의 정책이 있었다.

노후된 건축에 대한 획일적인 자세, 철거. 서울은 잠시 멈춤을 선택했다. 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하중 때문이라면, 자동차길에서 사람길로 바꿔보기로 했다.

 

 

서울의 관문이자 통일시대 유라시아 철도의 시발점인 서울역 주변에 활력을 불어넣고, 남대문시장·명동·남산과 서울역 서쪽을 사람길로 연결하는 방안을 시민들과 함께 고민했다. ‘서울로 7017’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관광안내소 및 카페 등 편의시설 설치, 원형화분에 총 50과 228종 2만4085주의 다양한 수목을 심었다. 고가상부엔 원형 식재포트를 설치했고, 식물은 ‘과’의 한국이름에 따라 ‘가나다라’ 순으로 배치했다. 자연지반 구간(만리동, 퇴계로)은 키 큰 나무를 이용 도시숲을 조성하고, 한양 도성길 흔적을 연결했다.

 

 

끊이지 않는 발길

서울역에서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있다. 후끈한 열기가 가득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올라가니 공원 전체의 딱 중심 부분이다. 참 애매하다. 끝부터 끝을 가야 순차적으로 소개가 될 텐데 왔다 갔다 하느라 고생 좀 하겠다.

푹푹 찌는 평일 대낮인데도 서울로를 이용하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처음 반겨주는 건 동그란 화분들. 서울로의 특징이다. 숱하게 놓여있는 화분들이 전부 동그랗게 생겼다. 한편으론 비좁은 공간에 마구잡이로 놓여있는 화분들이 정신없어 보일 수도 있을 터. 하지만 맘에 쏙 든다. 진부하지 않다.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재미도 있다. 거리가 더 활기차고 다양해 보인다.

 

 

먼저 회현역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칙칙칙칙!!” 이게 무슨 소린가. 소리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엥? 저게 뭐지? 둥글고 길쭉한 기둥에서 시원한 스프레이가 뿜어져 나온다. 물이 안개입자로 분사되어 나오는 것 같다. 앞에 가보니 에어컨이 따로 없다. 시원~하다. 아주 미세한 입자라 옷이 쉽게 젖지도 않는다. 공원 중간중간 놓인 거리의 에어컨(?) 덕에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카페가 있다. 그 이름도 정겨운 ‘목련다방’. 카페라고 하기엔 외관이 매우 독특하다. 둥근 원통형의 모양이다. 마치 캡슐 안에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날씨 때문인지 그 작은 공간 안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다.

 

 

길을 따라 더 내려가본다. 도로 중간 중간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다. 좀 높은 곳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있고, 옆 건물로 연결된 다리도 있다. 내려갈수록 신호등이 자주 보인다.

종 별로 심어져 있는 나무를 구경하며 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남대문 시장이 보인다. 서울역 쪽 부터 느긋하게 10분 정도 걸었을 것이다. 서울역에서 이렇게 가까이 있는 남대문 시장을 서울로가 개장되기 전까지는 빙빙 돌아서 다녀야 했다. 이제 ‘서울로 7017’로 인해 남대문 시장에 왕래가 더 많아질 것이다. 시장의 활기찬 모습을 기대해본다. 곧바로 회현역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남산타워도 보인다. 서울로의 끝이다. 원치 않지만, 다시 왔던 길로 발을 돌린다.

 

 

 

발 식힐수 있는 공간도

더위를 너무 먹었다. 그나마 큰 나무 밑에는 그늘이 있다. 공간 활용을 위해 화분 가장자리에 두께를 주어 앉아 쉴 수 있게 했다. 햇빛을 피해 그늘에 앉았다. 그늘에만 와도 선선한 바람이 느껴진다. 나들이 나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마다 핸드폰을 들고 이 나무, 저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으신다. 땀이 좀 식었다. 다시 일어났다.

이제 만리동, 청파동 쪽으로 향한다. 아까 처음 출발했던 서울역 부근에 다시 오니 해가 정면에서 비친다. 눈이 부시다. 가져온 손가방을 머리위에 얹고 걷는다. 손가방도 뜨거워졌다. 아까 타고 올라왔던 에스컬레이터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쭉 갔다 왔다면 이번엔 반대편으로 가는 셈이다. 살짝 길이 좁아진 느낌이다.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왼쪽으로 타임스퀘어가 보인다. 그 앞이 서울역이다. 서울역 광장에는 신발들을 엮어 만든 슈즈트리가 있다. 작품이라지만 살짝 징그러운 느낌도 든다.

 

 

작은 분수가 보인다. 쉼터라고 해서 시원한 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아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발을 담그고 있다. 트램플린도 있다. 작은 꼬마 숙녀 둘이서 방방 뛰어논다. 덥지도 않은가보다. 끝자락에 다다랐다. 여기선 두 갈래로 길이 나눠진다. 한쪽은 만리동 방향, 한쪽은 청파동 방향이다. 그 갈림길 가운데 작은 무대가 설치되어있다. 신인밴드나 가수들이 와서 공연을 하곤 한단다. 벌써 한 시간 반이나 지났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곧장 걸어간다면 삼십분도 안 걸릴 것 같다.

서울 한복판의 고가도로공원. 인적이 드물었던 장소에 발길이 잦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를 이용해 서울의 속살을 더 많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취지도 좋고 활용도도 좋다. 이곳에서 마주친 몇몇 사람은 ‘화분이 너무 정신없다, 딱히 볼게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무미건조하게 쭉 이어진 도로에서 여기저기 화분을 분산시켜 최대한 지루하지 않은 신선한 거리가 되도록 애를 쓴 흔적이다. 통행이 불편해 보이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낮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뻘뻘 난다. 그래도 아직은 아침, 밤으로 선선하니 ‘서울로 7017’을 한 번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서울 정중앙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들어섰다. 낮과 밤의 매력이 또 다르다. 야경을 구경하기에도 제격이다. 시민들이 더 이용하고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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