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사회 ‘심야식당2’를 다녀와서

 

▲ 영화 ‘심야식당2’ 포스터

영화 ‘심야식당2’의 첫 장면에서부터 눈에 도드라지는 미장센이 하나 있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심야식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 그리고 상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상복을 입고 심야식당에 온 한 명의 아가씨. 첫 장면, 첫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적으로 상복은 자주 등장한다. 누군가 상을 당하거나, 기일이거나, 옷 입는 취향이거나 여러 가지의 이유로 상복이 계속 등장한다. 상복과 평복이 번갈아 나타나며 이 영화는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 느낌을 분명히 전달한다.

그 메시지는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주 전형적인 일본 드라마처럼 그것은 푸근하고 지극히 평범한 이야깃거리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옴니버스 식으로 나오는 세 가지 에피소드들은 모두 통일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떠남과 만남. 누군가를 새롭게 떠나보내고 새롭게 만나야 하는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들이 심야식당이라는 공간을 통해 벌어지면서, 사람들은 모두 심야식당이라는 오래된 식당의 손님으로서 정체성과 소속감을 갖는다. 오래된 식당의 오래된 단골손님들. 그렇게 오랜 인생을 살아왔기에 사람들은 수많은 떠남과 만남을 겪으면서 단단해질 수 있었다. 또는 새로 단단해진다. 심야식당에 젊은 사람들 역시 찾아오는 이유는 그것에 있다.

심야식당이라는 공간은 참 묘한 공간이다. 모든 이야기들의 시작점이자 전개의 장소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심야식당은 그렇게 중요한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실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는 인생 이야기의 우연한 교차점에 불과한 것이다. 그 우연함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그 우연함이 너무 억지스럽다고 불평할 필요 역시 없다. 오히려 그 우연함이 이 공간의 정체성이니까. 심야식당이라는 작고 낡은 공간은 수많은 우연함이 얽혀져 만들어지는 곳이다. 우연히 사람들이 들러, 우연히 음식 맛보고, 우연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곳. 그런 우연성을 지니고 있어 여전히 묘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런 묘함 속에서 묘하게 움직이고 맞물리는 것이 누군가의 떠남과 만남이다. 얼마나 멀리, 또는 이 세상을 아예 떠나고 말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원래의 장소에서 이탈한다는 것이다. 심야식당을 찾던 사람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거나, 고향으로 돌아갔거나, 또는 고향을 떠나와 심야식당으로 우연히 흘러들어왔거나, 아예 죽고 없는 사람이거나, 진즉에 버려진 누군가를 추억한다거나. 모두 다 원래의 공간에서 도망치고 사라진 경우다. 그 떠남의 연결 고리 속에서 심야식당은 홀로 굳건할 것만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점점 심야식당의 주변 식당들이 문을 닫고 폐업을 한다. 심야식당이라는 공간 역시 그 묘한 자신의 정체성을 언제 이탈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 떠남의 불명확성 속에서도 사람들을 간절하게 만드는 것은 만남이다. 그래서 떠남이라는 하나의 톱니는 다른 만남이라는 톱니를 만나 맞물릴 수 있게 된다. 떠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새로이 만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만남은 정말 우연함에서 비롯된다. 만남은 늘 우연한 것에서의 시작이다. 그 색깔이 꼭 심야식당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색채와 같다. 우연하게 마주치는 사람들과 그런 순간들 속에서 시작되는 만남. 만남을 만난 떠남은 비로소 색채를 띤다. 맛있는 음식들의 다채로운 색깔들처럼 사람들의 인생이라는 것은 비로소 즐거워진다.

 

▲ 영화 ‘심야식당2’ 스틸컷

 

이 영화에서 음식만큼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술이다. 심야식당에 모인 사람들은 사케 한 잔,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나누면서 담소를 나눈다. 피곤한 일상에 절어 있던 사람들이 심야식당에 들어서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기념의 메시지를 담게 된다. 기념과 축하. 무언가 일이 생기면 그 일이 기쁘거나 슬프거나 우리는 기념하고 또는 축하한다. 마음 아파할 일이 있으면 맥주 한 잔을 건네며 무슨 일이냐고 묻고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 다 털어내 버리라고 술을 따라주고, 곧 기쁜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새로운 출발을 축하한다. 술은 그런 의미로서 우리의 삶에 작용하고 이 영화에서의 역할 역시 동일하다.

술은 결국 떠남과 만남이라는 고리의 양쪽 끝을 담당하고 있는 매개체인 것이다. 떠남의 시작도, 만남의 끝도, 또는 그 반대의 경우도, 술은 늘 사람들과 함께 한다. 또 술은 우연의 음료이기도 하다. 술은 마실수록 우연한 일들을 겪게 만드는 음료다. 술에 취해서 벌어지는 일만큼 우연한 일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심야식당의 두 번째 에피소드 역시 그런 술의 속성을 꿰뚫어보고 있다. 드라마틱한 우연함, 어머니가 반대하는 결혼 상대가 실은 어머니의 술동무였다는 그런 무지막지한 우연함이 술로 인해서만 겨우 빚어질 수 있는 것이다. 너무 드라마틱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은 우리 삶은 그것보다도 더 드라마틱하다. 술과 함께, 심야식당과 함께, 맛있는 음식과 함께라면 무슨 드라마틱한 일들이 없을 수 있겠는가.

결국 심야식당이라는 묘한 공간은 다채로운 음식과 술이 함께 그 공간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정체성을 향유하는 것에 불과하다. 공간의 주인이 사람이 되어야할 것만 같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람은 우연이 만들어내는 부수적인 이야깃거리로 그 역할을 다 한다.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음식과 술이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즐기기 위해 그 공간으로 모인다. 모이면서 새로운 만남을 겪고 새로운 떠남을 겪는다.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들이 다채롭고 드라마틱한 이야기인 것 마냥 탈바꿈을 해서 심야식당이라는 묘한 공간을 꾸며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평소에 일본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 나로서는 전형적인 일본 영화로서의 장르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법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세 개의 에피소드를 거쳐 가면서 그것이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는 영화의 내용이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은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또 감동이 있고 카타르시스가 있다. 가끔 이른바 힐링이 필요할 때 우리는 이런 장르의 영화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삶이 지치고 매번 같게 느껴질 때, 일상이 번복되고 그 틀 안에 갇혀 살아가는 것만 같을 때, 그래서 내 삶에 무슨 전환점이 있기를 바랄 때, 우리는 심야식당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마스터가 만드는 돼지 불고기 정식처럼. 힘이 필요한 사람들이 고기를 찾는다는 등장인물의 대사처럼. 그래서 고기를 달라고 마스터에게 웃으며 애교부리는 사랑스런 모습처럼. 가끔 힘이 되어 줄 누군가가 없을 때, 한 편의 영화로 갈음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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