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비채

영미권, 유럽어권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까지 사로잡은 글로벌 베스트셀러 작가 존 버든. 우연히 펼쳐든 편지 속 숫자 게임에서 시작된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데뷔작 '658, 우연히'에서 천재적인 추리력을 선보인 바 있는 데이브 거니는 후속작 '악녀를 위한 밤'에서 결혼식 중 신부의 목을 자르고 자취를 감춘 범인의 뒤를 쫓는다. 지난 사건이 남긴 마음의 상흔에 고뇌할 줄 아는 지적이고 치밀한 형사 데이브 거니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악녀를 위한 밤'으로부터 6개월 후를 그린 세 번째 작품 '기꺼이 죽이다'는 존 버든을 퍼즐 미스터리의 거장으로 각인시켰다.

2000년 3월 22일, 연달아 일어난 두 건의 총격 사건으로 충격에 빠진 뉴욕 주. ‘착한 양치기’ 이름의 발신자가 뉴욕 경찰국에 보낸 우편물이 미국 전역을 발칵 뒤집는다. ‘돈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부자를 죽이는 것으로 정의를 이룩할 수 있다. 내가 부유한 자를 죽일 것이다’. 범인의 선언문에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범행 정보가 상세히 기재되어 있었으며, 이후 네 명의 희생자가 추가로 발생한다. 오직 부자들만을 죽인다는 범인은 로빈 후드에 비견되며 화제의 중심에 서지만 경찰은 10년이 지나도록 검거는커녕 단서조차 잡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은퇴 형사 데이브 거니는 ‘착한 양치기 살인사건' 다큐멘터리의 자문을 맡는다. 다큐멘터리는 방영 즉시 인기를 얻지만 인터뷰에 응한 유가족들이 차례로 살해되는데…

과연 ‘살인’이 정의 실현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착한 양치기 살인사건’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그들은 범인의 잔혹함에 분노하면서도 로빈 후드처럼 부유한 자를 응징하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낀다. 이는 범죄를 볼거리로만 소비하며 자극적이고 과장된 편집으로 광고 수익을 내기에만 급급하는 등 옐로우 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준다. 유가족이 살해되는 와중에도 방송을 강행하는 행태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겹쳐지며 미디어의 공익성을 의심하게 한다.

존 버든은 주인공 데이브 거니의 천재적인 수사력만을 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내적 갈등을 끈질기게 파고들면서 마음속의 어둠을 보여준다. 거니가 맞닥뜨리는 살인사건은 얼핏 영영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보인다. 섬세하고 끈질긴, 고뇌하는 형사로서의 거니의 장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작가 인터뷰에서 존 버든은 거니의 내성적이고 사색적이며 끊임없이 분석하는 습관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상처를 안고 사는 영웅, 그리고 악의 본성을 파헤치는 존 버든의 작품은 이 세상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다만 포기하지 않고 선을 선택할 뿐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