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법정·효봉·휴정 외 / 책읽는섬

이 책에는 지은이가 알려지지 않은 작자미상의 선시가 15편 실려 있다. 선시는 일반 문학과 달리 지은이가 알려지지 않은 비율이 꽤 높은 편이다. 이 작자미상의 선시들을 읽을 때의 울림이 남다른데, 바람을 종이 삼아 시 한 수 던져놓고는 훌쩍 떠나버린 사람의 뒷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시들은 구름인 양 물결인 양 세상을 떠돌다가 후학들의 깨우침과 조응하면서 그 의미가 확대되기도 하고, 일상과 현실에 젖은 중생들에게 마음의 휴식과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지은이가 따로 없기에 마음껏 가질 수 있고, 또 나누어줄 수도 있다.

법정 스님은 여러 편의 에세이를 통해 시를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법정 스님이 시를 사랑했던 이유는 시가 지니고 있는 미학 때문이기도 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 속에 담겨 있는 소박하고 절제된 삶의 풍경과 사유의 깊이 때문이었다.

평생 무소유와 절제를 생활화했던 법정 스님에게 선시 속의 세계는 자신이 누리고자 했던 이상향이자 도달하고자 한 지향점이었다. 이른 새벽과 늦은 밤 선시를 읊으며, 법정 스님은 그 풍경 속을 거닐고 시를 지은 고승, 시인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다가 깊은 산 속의 외딴 오두막으로 돌아오고는 했을 것이다.

법정 스님은 시 한 줄 읊고 먼 하늘의 달에게 눈길을 던질 줄 아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보다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믿었다. 이 책의 선시들을 통해 팍팍하게 메말라버린 우리의 마음을 잠시나마 축축하게 적셔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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