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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됐지, 더 뭐가 필요해!”

<김재범의 ‘영화 톺아보기’> ‘덩케르크’ 김재범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08.1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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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극명한 장점을 추종하는 팬이자 마니아로서 한 마디를 하자면 ‘사실에 가까운 허구’와 ‘허구이지만 너무도 사실적인 영화적 체험’의 괴리감이 문제가 될 듯하다. 영화란 매체가 기본적으로 스크린을 통해 느낄 수 있고 체험될 수 있는 일종의 엔터테인먼트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가장 큰 확고한 개념을 신봉하는 필자로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덩케르크’는 앞서 설명한 그 괴리감의 문제가 앞으로도 전무후무한 기준적 잣대로 남게 될 듯하다. 이 영화는 영화이면서도 일반적 상업 영화의 개념은 거의 빠져 있다. 우선 대사가 거의 없다. 인물들은 굳이 대사로 관객들에게 어떤 무엇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것의 매개체가 대사란 것을 거부하는 느낌이다. 대사가 많지 않기에 관객들은 색다른 경험을 ‘대리’할 수 있게 된다. 아니 일부 장면에선 ‘무성’에 가까운 시도조차 한다.

대사가 빠진 곳을 채우는 것은 주변음이다. 탈출을 위해 대기하는 연합군 군인들의 웅성거림, 살기 위해 살고 싶은 생명의 발버둥 소리가 대신한다. 때로는 총소리와 폭발음이 대신한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군인들의 절망적 소리도 있다. 알 수 없는 재깍거리는 시계 소리는 흡사 독일군의 폭격을 예고하는 듯 완벽한 ‘대사’로 변환된다. ‘재깍재깍’ 거리는 소리로 변화되는 연합군 군인들의 표정 변화,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스크린 밖 관객들의 긴장감과 옥죄임.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는 완벽한 체험적 전쟁 영화다. 이건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참상의 지옥이 아니었다. 전쟁은 ‘죽이기 위한’ 것에 방점을 둔다고 생각하는 게 대중들이다. 사실 ‘전쟁의 진짜’는 살기 위한 살인이다. 그것을 ‘덩케르크’는 짚어내고 있었다. 그 어떤 전쟁 영화도 바라보지 않던 지점이다. 그저 죽이기 위한 것이 전쟁의 진짜 얼굴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 영화 ‘존윅’ 스틸 컷

 

‘덩케르크’는 살기 위해 죽음의 땅 바다 그리고 하늘에서 벌어지는 살육의 이면을 바라본다.

2차 대전 초기 1940년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 9일간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프랑스명 케르크)지역에 고립된 영국과 프랑스, 폴란드 등 연합군이 독일군의 압박 속에서 기적적으로 영국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것이 실제 ‘덩케르크 작전’이며, 영화 ‘덩케르크’가 담은 모습이다.

피가 튀고 살이 짓이겨지는 고통스런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떤 고통보다 그 수위는 높다. 흡사 공포의 물질적 수위를 현실화 시킨 이미지적 대화법에 가까울 정도다. 불안한 눈빛, 조여 오는 소리, 탈출을 기다리는 군인들의 감정 파동, 살려야 하는 또 다른 군인들의 간절함. 그것은 연출된 장면과 흐름이 아니었다. 그저 그 모습일 뿐이었다.

사실 이 지점이 더욱 강하게 와 닿는데는 낯선 배우들의 모습도 한몫을 한다. 놀란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 톰하디, 킬리언 머피 등의 유명 배우들도 모습을 비춘다. 하지만 그들 역시 ‘덩케르크’란 하나의 거대한 파도의 흐름일 뿐이란 느낌이 강하다. 이 영화에는 수백 수천의 배우들이 등장한다. CG가 아니다. 놀란 감독의 맹목적 사실주의를 감안한다면 실제 ‘덩케르크’ 작전에 등장했던 수십만 연합군의 숫자를 맞추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올 정도였으니.

일부 유명 배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무명 배우들이다. 덕분에 ‘덩케르크’는 스토리 속 배우들이 아닌 그저 ‘전쟁’과 ‘살기 위함’ 그리고 ‘살고 싶은’ 배우들만 남게 됐다. 완벽하게 의도된 놀란 감독의 연출법이다.

감독은 영화 속 그리고 실제 작전 속 그들의 시선으로 ‘덩케르크’를 이해시키고 싶었다. 너무도 많은 청년들이 사지로 내던져졌다. 그리고 너무 많은 청년들이 죽임을 강요당했다. 또한 많은 청년들이 죽음을 당했고, 그중에는 너무 어린 소년들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놀란 감독의 영화 치고는 비교적 짧은 106분의 러닝타임 동안 ‘덩케르크’는 땅 바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동시다발적 생존의 모습에 집중하고 끝을 맺는다. 영화 말미, 덩케르크 철수를 두고 ‘성공적’이라는 표현이 아닌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다’고 말하는 이 감독의 시선이 분명 다르단 걸 알게 될 것 같다.

“그러면 됐지,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영화 ‘덩케르크’를 본 뒤 가슴 속에 남은 그것이다. 이 영화, 당분간 전쟁 영화의 모든 패러다임을 뒤바꿔 놓을 듯하다.

<영화전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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