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11조원 투입도 ‘역부족’

끝없는 암흑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 중순 경기도에서 열린 취업박람회 자리. 20대 청년이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부지런히 이력서를 채우고 있었다. 수도권 4년제 대학 졸업에 어학 연수까지 다녀왔다는 그는 “청년인턴제도도 해 봤지만 그걸로 끝이었다”면서 “기성세대는 고생하기 싫어서 그런다고 하지만 정말 실정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 경제의 최대 고민 중 하나인 청년 실업률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지구촌 경제가 전체적으로 상승 중임을 감안하면 더욱 곤혹스럽다.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를 살펴봤다.

 

 

“대학 다니는 동안 빌린 학자금만 2000만원이 넘어요. 그런데 졸업하고 3년째 이력서만 쓰려니 자신감도 사라지고 집에 가도 부모님 볼 면목이 없네요. 추석 때 공부한다는 핑계로 그냥 서울에 있으려구요”

박람회장에서 만난 한 청년의 말이었다. 30대 초반인 A씨는 아예 진로를 바꾸었다. 한 때 대형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을만큼 좋을 때도 있었지만 중간 건강 문제로 쉬었던 게 탈이 됐다. 예전 같은 대우를 받는 곳은 이력서를 수차례 넣어봤지만 소식 조차 없었다. 그 동안 모은 돈도 사라져 A씨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수도권 인근의 한 공장에 취업했다.

“3교대 근무라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어쩌다가 이렇게 됐나 하는 생각에 술도 많이 먹었죠.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나마 돈을 벌 수 있어서 감사해요. 추석 때 집에 용돈도 드릴 수 있고. 과거 공부했던 것들은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다시 돌아가긴 힘들 것 같아요.”

한국 청년 실업률이 4년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청년층 실업률 평균이 6년 연속 하락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최근 OECD에 따르면 한국의 15~24세 청년층 실업률은 2011년 9.5%에서 2012년 9.0%로 떨어진 뒤 2013년 9.3%로 상승했다. 2014년엔 10.0%로 두 자릿수대를 돌파했고 2015년 10.5%, 2016년 10.7%로 4년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IMF 시절에 ‘근접’

전체 실업률은 2014년부터 3년 연속 상승했다. 결국 청년층의 취업 문제가 먼저 시작됐고 취업 시장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OECD 회원국 중 4년 연속 청년층 실업률이 증가한 곳은 한국, 오스트리아, 터키 등 3개국이었다.

이에 반해 전체 OECD 회원국의 청년층 실업률은 금융위기 때 최악이었다가 점차 회복세를 보이는 모습이다. 2010년 16.7%를 기록했던 OECD 청년층 실업률 평균은 매년 줄면서 지난해 13.0%까지 떨어졌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청년층 실업률은 10.4%로 2000년(9.3%) 이후 1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일본도 가파르게 감소세를 보였다. 2003년 10.1%로 지금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5.2%를 기록, 거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유럽연합(EU)의 청년층 실업률 역시 지난해 18.7%로 2008년(15.6%) 이후 가장 낮았다.

이에 반해 한국 청년들의 자화상은 점차 어두워지고 있다. 금융위기 시절보다 더 상황이 안 좋다. 지난해 청년층 실업률은 2009년과 2010년의 9.8%보다 0.9% 더 높은 수준이다. IMF 여파가 남아 있던 2000년의 10.8%에 가까워지고 있다.

올 들어서도 청년층 실업률은 심각하다. 지난해 4분기 9.9%에서 올해 1분기엔 10.0%로 오르더니 2분기엔 10.8%로 상승폭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적인 문제라 해결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당장 일자리보다 구직을 준비중인 청년층이 더 많은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창출 5년 로드맵 등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역대 정부의 사례로 볼 때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할 지는 미지수다.
 

북한․중국 여파 ‘여전’

실제로 11조원에 이르는 ‘일자리 추경’의 효과는 미미하다. 설상가상으로 청년 실업률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문재인 정부도 긴장하고 있다. 정부는 예산 집행 방식을 효율화하고 하반기 민간 채용 시기에 맞춰 집중적으로 청년 취업 지원 사업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김용진 2차관 주재로 제9차 재정관리점검회의를 열어 추가경정예산 집행 실적 등을 점검했다. 점검 결과 지난 9월 20일까지 추경 예산이 7조원 집행돼 추석 전 집행 목표(70%)를 초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추경 전체 예산 11조1,000억원 가운데 중앙 정부가 관리하는 9조6,000억원의 73.2%를 집행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추경 집행에도 청년 일자리 문제는 여전히 난맥에 빠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청년실업률은 9.4%로 1년 전보다 0.1%포인트 올랐다. 실업자에 구직단념자, 취업준비생 등까지 계산한 청년 체감실업률은 22.5%로 1%나 높아졌다.

정부는 9월 이후 민간 채용 시기에 맞춰 취업성공패키지, 고용창출장려금,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청년 취업 지원 사업을 집중 집행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일자리 사업의 제도 개선을 통해 효율적인 취업 지원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이와 관련 “추경 예산 집행의 효과를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특히 청년 실업 문제 해소를 위한 재정 역할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당장 국내 경기의 침체기가 길어지고 있다. 정부 스스로도 최근 2개월 연속 생산 및 내수가 ‘견고하지 못하다’는 진단을 내놓을 정도다.

1분기 1.1%를 기록한 국내 경제성장률(GDP)은 2분기 0.6%로 추락했다. 3분기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추경에 따른 0.2%의 추가 성장률 제고효과나 올해 성장률 3% 달성은 이미 부도수표가 될 위기에 처했다. 한국은행은 이미 3% 성장률은 어렵다는 관측을 내놓았을 정도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맞물려 건설업계의 침체를 이유로 꼽는 전문가들도 있다. 6개월 연속 10만명 이상의 취업자수 증가폭을 기록했던 건설업은 지난 8월 단 3만여명 증가에 그쳤다. 북한리스크와 중국의 사드보복 등도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한 대학 관계자는 “실제 취업한 학생들을 봐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면서 “실제 느껴지는 청년 실업률은 20%대를 훨씬 웃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청년의 미래는 대한민국의 미래다. 날로 악화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가 한가위 바람을 타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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