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 ‘혼자 떠난 제주도 배낭여행’ 마지막회 / 김혜영

오늘은 혼자 여행하는 제주의 마지막 날이다. 여행 작가로부터 추천을 받고 아껴두었던 여행지, 저지마을을 꺼냈다. 저지마을은 흔히 ‘저지문화예술인마을’로 알려진 곳으로, 예술인이 생활하는 집과 갤러리가 모인 마을이다. 마을을 산책하다 곳곳에 숨어있는 야외전시물을 볼 수도 있고, 전시회장을 방문해서 본격적으로 감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파주의 헤이리 예술마을과 비슷한 느낌인데, 아는 사람만 아는 한적한 마을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갖는다.

 

 

여행 내내 그랬듯 어김없이 큰 배낭을 메고 낑낑 거리며 버스에 올랐다. 운전면허가 없다보니 여행의 반이 버스에서 보낸 시간이었는데, 서울의 버스와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승차할 때 내릴 정류장을 미리 말해서 요금을 정해야하고, 내리기 한참 전에 문 앞으로 나와서 이제 내릴 것이라는 어필을 강력하게 해야 했다. 벨만 누르고 얌전하게 앉아있으면 내려야하는 정류장을 빠른 속도로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버스 이용객의 입장에서 다소 위험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졌지만, 제주는 버스의 수가 많지 않으면서 이곳저곳에 위치한 관광지들을 섭렵해야하는 고충이 있었다. 그래서 내릴 곳을 지나치면 먼 거리를 되돌아가야한다는 불안감과 가속으로 인한 공포를 창밖의 푸른 풍경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리면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처음 보는 마을을 멍하니 둘러보게 되는데, 저지마을도 역시 ‘여기가 관광지라고?’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곳이었다. 우선 정류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운 좋게 길 건너편에 있는 버스 표지판을 발견했다면,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바로 반대편 버스 정류장이다. 의자는커녕 표지판 하나 없어도 그게 정류장인 것이다. 서울은 배차간격도 짧고 버스의 도착 시간과 혼잡도까지 알 수 있는데, 제주에서는 길에 서서 가끔씩 지나가는 버스의 번호를 확인하다 짧으면 10분, 길게는 몇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했다. 그러다보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나 행동은 빨라지는데, 마음은 느긋해져서 성실하면서도 여유로운, 어딘가 아이러니한 느낌의 일상을 보내게 됐다.

 

 

버스와 두 발로 여행하는 것의 좋은 점은 어딘가로 이동해서 도착하는 행위 자체에 큰 의미 부여가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동차로만 여행을 하다 보니 도로에서의 시간은 낭비처럼 느껴지고, 특정 여행지에서만 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혼자 길을 찾으면서 걷는 여행을 하다 보니 그 여정 자체가 곧 여행이 되었다. 모든 순간이 여행이 되는 것이다. 기분 좋은 햇살과 바람의 정도, 새의 지저귐, 마을의 공기와 분위기, 사람들의 인상, 길가에 핀 꽃 등 모든 사소한 것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그렇게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원하던 장소에 도착하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을 느낀다. 이곳에 꼭 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걷고 또 걸어서 마침내 다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훗날 여행의 기억이 흐려져도, 홀로 모르는 길과 동네를 지나 난생 처음 보는 곳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만큼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저지마을의 첫인상은 고요함이었다. 전혀 다른 시공간에 도착한 것처럼, 정신없는 버스와 달리 그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조형물을 지나 입구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갔더니, 영화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의 코다마처럼 생긴 돌들이 있었다. 코다마는 나무의 정령인데, 일본어로 나무의 정(精)과 메아리라는 뜻이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숲에 들어가면 물소리와 새소리를 제외하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코다마들이 ‘따각따각’하는 소리를 내면서 숲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곤 한다. 정말 코다마를 형상화한 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지마을과 잘 어울리는 조형이었다. 조용한 마을에 수많은 생명과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니.

 

 

바로 옆에 위치한 제주 현대 미술관에서는 지역네트워크교류전으로 ‘또 다른 시선’이 열리고 있었다. 세 예술가 중 박종호의 작품과 세계관이 가장 와 닿았는데, 사회 시스템에서 무심하게 잊히는 존재, 실재에 관한 고민을 담았다고 적혀있었다. 반복된 이미지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를테면 세월호 사건을 지겹다고 말하던 목소리가 생각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타인의 아픔에 덤덤해지고 지겨워지기까지 하던 일상적인 이기심은 이타심의 층위가 아니라 공감과 소통의 부재가 야기한 것이 아니었던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문구가 적힌 그림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놓치고 잃어버린 것들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소녀상’이라는 작품이 잊히지 않았다. 소녀상 뒤 현수막에는 일제강점의 치욕스러움과 분노가 담겨있었는데, 날짜가 지워진 것으로 보아 경술국치가 특정한 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는 뜻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얌전하게 앉아있는 단발머리의 소녀 옆에 주먹을 굳게 쥔 인물상을 보면서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현재에도 진행되는 ‘치욕적인 날’ 때문에 할머니는 소녀로 상징되어 머물러야하는 것일까. 유독 위안부 문제에 꽃, 나비, 평화, 소녀를 배치할 때마다, ‘여배우는 꽃’이라던가 전시 상황에서의 강간 문제, 위안부 문제와의 연결성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제 막 활짝 핀 아름다운 꽃이 꺾이고 더럽혀진 문제가 아니라, 인권이 처참하게 짓밟힌 사건이다. 꽃이 아닌, 소녀가 아닌, 사람의 문제다.

 

 

그 후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 전시를 관람했다. 신학에서 물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의 영이 물 위에 운행하고 있었다는 표현과,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기고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 하늘과 땅, 바다가 만들어졌다고 되어있다. 당대 사람들은 강 근처에 모여 살면서 문명권을 형성했는데, 강이 범람할 때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토지의 비옥함과 생명의 창조를 경험했다. 아마도 그들에게 물은 자연, 신, 생명과 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물은 삶에서 뗄 수 없는 것이며 ‘태초’와 연관되어 있는 존재다.

이번 전시도 물에 관한 사유를 테마로 했는데, 10명의 작가가 김혜순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여러 방법으로 표현해냈다. LED화면으로 역동적인 폭포를 표현하기도 하고, 물에 잠긴 사물을 관찰하기도 한다. 김창열은 회귀, 통일, 투쟁, 화해 등의 다양한 이야기에 물의 속성을 담아냈는데, ‘어디에나 존재하여 배경과 합일된 다채로운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물방울’을 그렸다. 작품을 보면서 나의 근원과 태초, 그리고 관계해온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유를 할 수 있었다. 그동안 했던 고민들이 작게만 느껴지고,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거대한 세계관 안에서 무엇을 그리고 행해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 여행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허무함과 아쉬움, 그리고 일상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제주 여행이 끝이 났다. 후에 서울에서 날아온 애인과 산방산의 정취와 온천을 즐기고 비자림을 거닐기도 했지만, 사실상 저지마을에서 ‘여행’은 막을 내렸다. 홀로 부딪히고 느끼고 경험하는 시간동안 여러 종류의 계단을 하나씩 오른 것 같은 성취감을 느꼈고, 나 자신과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아마 나는 또 이렇게 훌쩍 여행을 떠날 것이다. 공간을 이동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모든 것을 멈춰야할 것 같은 때가 올 때, ‘나’와 대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회색빛 서울에서 살아볼 것이다.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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