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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마이들 생각해갖고’ 동네 청년들이 지은...

<전라도닷컴> 마을모정 ⑨-곡성 목사동면 죽림마을 모정 전라도닷컴 남인희·남신희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10.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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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가 우리들 방이여”라고 말하는 조정임, 장순임, 최순이 할매(왼쪽부터). 마을 청년들이 ‘할마이들 생각해갖고’ 힘 모아 지은 모정이다.

방 한 칸을 뚝 떼어다 벽을 후르르 털어내고 천연덕스레 길바닥에 앉혀놓은 듯하다. 노란색 비닐장판 깔고 테레비야 선풍기야 냉장고야 그릇장이야 웬만한 살림살이 구색을 거의 갖추었다.

“여가 우리들 방이여.”

할매들의 소개 말씀도 그러하다. 곡성 목사동면 죽정리 죽림마을 모정.

“쫌 앙그시오.”

그렇잖아도 깨깟한 모정 바닥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쓸어내고 다둑다둑 앉기를 청하는 인정의 자리. 마을에 불쑥 들어선 낯선 이를 향해서도 공평하고 이무롭게 열려 있는 자리다.

“언능 욜로 들오랑께.”

땡볕 아래 서 있는 사람을 그늘로 들이는 그 일이 엄니한테는 분초를 다툴 일이다.

“우리는 놈의 자석도 뜨건 볕 아래 서 있으문 짠해. 내 자석맹기로.”

열린 공간, 열린 마음 덕분에 ‘그늘 나눔’이 무시로 행해진다.

 

▲ ‘서기 2007년 8월’이라고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모정의 건립연도가 쓰여져 있는 상량.
▲ 솔 가득한 바구리를 앞에 두고 “니 일 내 일이 딱 안 갈라지는 자리”, 모정은 그러한 곳이다.

 

질로 가찹고 시원한 죽림마을 ‘핫플’

마을 들목도 아니고, 논밭 한가운데도 아니고, 고샅을 지나다 문득 맞닥뜨리는 모정.

최순이(88) 할매는 “쩌어 마을 앞 소래뜰숲에 잘 지서논 좋은 유산각이 있어. 그래도 우리는 못 가. 다리가 아파서 못 가”라고 말한다.

크고 번듯하게 새로 지은 모정이 마을 입구에 있건만 죽림마을의 ‘핫플(핫플레이스)’은 마을 안쪽의 이 모정인 것. 통행량을 부러 잰 것도 아니지만, 마을사람들 오명가명 쉬어 가기 좋은 그 지점에 딱 맞추어 들어섰다.

“사람들 많이 모일 직에는 자리가 없어. 여그가 질로 가찹고 시원한께. 동네 중간에 있응께 누구나 오기가 숼해.”

보행기에 의지하지 않으면 몇 걸음도 떼기 힘든 할매들의 걸음을 아껴주는 기특한 모정이다.

“우리들이 맨나 여그 맨바닥에 앙거서 논께 우리부락 청년들이 이러코 이 자리다 지섰어. 할마이들 생각해갖고, 할마이들 놀아라고 서드라서(서둘러서) 망근 거여.”

“할마이들 생각해갖고.” 모정의 건립 목적은 그렇듯 명료하게 축약된다.

당시 ‘50대 밑으로 욱으로’였다던 그 ‘청년들’에게도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리라. 상량에는 격식을 갖춘 상량문이 아니라 ‘서기 2007년 8월’이라고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모정의 건립연도가 쓰여 있다.

“지슬 돈이 따로 없응께 부락 청년들 야닐곱이 항꾼에 나서서 풀 비는 일을 해갖고 돈을 벌어서 지섰어. 나무도 산에 가서 직접 해갖고 그 무건 놈들을 끄서다가 한여름에 땀을 찍찍 흘림서 지섰제.”

몸공 들여 한땀한땀 지어낸 모정의 역사를 마을 사람들 누구나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다.

“짱짱해. 야물게 지섰어.” 뚜덕뚜덕 손 가는 대로 대충 지은 것 같아도 십년 풍상을 잘 버텨내 왔다.

깔끄막진 길바닥 옆에 들어선 모정은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형편 맞춰 원두막처럼 만들어졌다. 나무도 ‘생긴 대로’ 써서 굽고 휘어진 대로 천연스레 제 자리를 찾았다. 지붕이든 기둥이든 매꼬롬하고 번듯한 ‘틀’에서 벗어나 손맛을 품은 것이 볼수록 정답다. 그릇이며 솥단지며 크고작은 살림살이도 이 집 저 집에서 하나둘 갖고 나온 것들로 시나브로 구색을 갖추었다.

 

▲ 니야내야 없이 한줌씩 안겨주고.

“촌에는 뭐든지 함께 달라들어”

그리하여 지어진 내력부터 살림살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마을의 공유재산이고 공동재산인 모정이다.

“소지는 아무나 해. 당번 없어. 몬야 온 사람이 쓸고 따끄고.”

정해지지 않은 ‘아무나’의 힘으로, 모정은 더러울 새가 없다.

“여그 나오문 안 심심해. 오다가다 멈춘께 하루죙일 사람 끊길 때가 없어.”

말하는 중에도 손길 쉬지 않는 장순임(72) 할매는 솔 가득찬 바구리를 들고 모정에 나왔다.

조정임(84) 할매도 바구리 앞에 뽀짝 다가앉는다.

 

▲ 모정의 필수품 부채와 세월에 닳고 나이든 베개.

 

“일바구리 갖고 오문 우리는 다 달라들어. 촌에는 뭐든지 함께 달라들어. 함께 일해갖고 치와뿔고 함께 놀고.”

“니 일 내 일이 딱 안 갈라지는 자리”, 모정은 그러한 곳이다.

“요 모정이 다 존디, 아수운 것이 딱 한나 있어. 작년까장도 쭈욱 전기를 썼는디, 전기 준 집이가 자꼬 차단기가 내려가갖고 인자 전기를 못써. 냉장고도 못 돌려. 냉장고에 다 시언헌 물 너놓고 온 사람 간 사람 다 줬는디. 모른 사람도 첨 본 사람도 물 잡숫고 가라고 불르고 그랬는디.”

그리하여 ‘나놔묵는 그 재미’가 줄어든 것이 할매들의 아쉬움이다.

“여름내 여그서 국시도 삶아묵고 전기밥솥에다 밥도 해묵고. 밥 묵을 때 고물장수라도 오문 함께 밥 묵자고 불르고 그랬는디. 하문, 그냥 보내문 안 되제. 절대 안 되제. 배고픈 사람 밥 준 것이 질로 공 되야. 전에 어른들은 다 그라고 갈찼어.”

학교 문턱은 밟아본 적 없어도 일찍이 ‘사람 되는 학교’를 졸업한 최순이, 김종묘(82), 문연심(78) 할매의 이구동성.

 

▲ 죽림마을 앞 소래뜰숲에 있는 또 다른 모정 풍경. 쑤시고 뻣뻣한 팔다리 삭신이 좀더 보드라와지라고 요가 수업중.

 

“고런 것은 배와서 하는 거이 아니여.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하는 거이제.”

평생 그런 마음 지니고 살았을 할매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있다. 이약이약 하는 판에 최순이 할매에겐 떠오르는 얼굴 있었나 보다.

“여그서 한테 논 할마이들이 그새 둘이나 없어져불었어. 한나는 죽고, 한나는 시설에 가 있고. 생각나. 생전 성제간 같이로 살고 여그서 같이 놀았는디. 서운하고 보고싶제.”

모정에서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집에 사시건만, 할매는 모정으로 행차 못할 어느 날이 걱정이다.

“나는 질로 오고 싶은 디가 여그여. 어느 날 못 올깨비 그것이 질로 꺽정이여.”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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