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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들, 개성과 취향에 맞는 행복 추구하도록 역동적 복지국가 만들어야”

<심층인터뷰>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2회 한성욱 선임기자lse3399@hanmail.netl승인2017.11.3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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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에서 이어집니다>

▲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 의료보험이 군사정권의 체제 안정용 제도였다는 것인가.

▲ 산업화의 결실은 중산층이 가져갔고, 농촌을 떠난 젊은이들은 도시로 몰려와 도시빈민이 되었다. 이들은 유신체제의 잠재적 불안요인이었다. 야당과 재야 민주진영의 민주주의 요구와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생존권 요구는 체제불안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통성이 없는 유신정권의 위기가 서서히 다가왔다. 이를 무마하기 위한 책략으로 돈이 거의 들지 않으면서도 상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했다. 도입배경엔 북한과의 체제경쟁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은 군사력과 복지가 남한보다 월등했다. 특히 북한의 무상의료제도는 더 했다. 이에 따라 1979년 1월에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 의료보험이 실시됐고, 그 가족과 266만 명이 혜택을 보게 됐다. 직장의료보험도 300인 이상으로 적용하면서 612개 조합으로 늘어났다.

 

- 노태우 정권 때 의료보험이 전 국민으로 확대됐다.

▲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군사정권은 지역의료보험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의료보험혜택을 둘러싼 논란과 의료보장 사각지대 등 사회적 갈등도 심해졌다. 여기에 연평균 7~10% 고도성장을 이루는 가운데 국민의 사회참여의식이 점차 커진 것도 한 원인이었다. 결국 노태우 정권은 1988년 1월에 의료보험 전 국민 확대를 실시했고, 138개 의료보험조합을 통해 826만 명의 농어촌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이듬해인 1989년 7월에는 117개 조합원인 1100만 명의 도시주민들에게도 의보혜택이 적용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977년 직장의료보험을 시작한지 12년 만에 전 인구를 포괄하는 의료보험시대가 열렸다.

 

-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은 어땠나.

▲ 이명박 정권은 집권초기부터 신자유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작은 정부’ 노선을 걸었다. 그러면서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과 감세, 규제완화, 의료민영화에 ‘올인’했다. 박근혜 정권도 공약했던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파기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끝까지 고집하면서 이를 둘러싼 여야정쟁으로 아까운 세월만 까먹었다. 이런 기조에 누군가 결연히 맞서야 했다. 그래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조직해 어려운 난국을 정면 돌파하기로 결정했다. 2008년 첫해는 잘 넘겼다. 몰락한 야당도 전열을 정비했다. 진보언론들도 복지국가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대선공약마저 거짓으로 뭉갠 기만적 야합정치에 국민 불신은 가중됐고, 복지국가 퇴조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우리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건강보험강화 국민행동’ 단체도 결성했다. 낡은 정치제도와 선거시스템만으로는 복지국가를 만들 수 없다는 절박함을 같이하는 단체들과 ‘비례민주주의 연대’ 시민정치운동도 전개했다.

 

-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와 복지를 ‘성장-분배’의 이분법으로 보고 있다.

▲ 복지에 많은 돈을 투입하면 복지 병을 유발하고, 경제성장이 저해된다는 게 보수진영 논리다. 이를 근거로 성장만능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복지를 최소화하는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체제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시장만능’ ‘작은 정부’ 논리는 경제와 산업, 노동시장의 양극화, 고용불안을 심화시켰다. 또한 낙수효과 부재와 민생불안, 사회적 배제 심화로 이미 파산했다. 우리가 원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는 이 모든 문제를 극복하려는 민주정부의 조정시장(調整市場) 경제체제와 선별적 복지를 넘어 보편적-적극적 복지로의 통합이다. 이를 위해 경제사회적 규제나 누진적-연대적 조세, 적극적 재정 등 진보 개혁적 정책수단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는 유능하고 책임성 강한 민주정부가 필요하다. 이러한 민주정부가 곧 ‘역동적 복지국가’다.

 

- 우리 사회 여건에서 ‘보편적 복지’ 가능할까.

▲ 신자유주의 정치체제는 시장만능 경제주의를 만들었다. 또한 이에 따른 선별적 복지체제도 같이 태동했다.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의 결합이 전 지구적 민생불안과 불평등의 원흉이다. 그러면서 국가는 경제파탄의 모든 책임을 국민개인과 시장경제에 넘겼고 책임을 회피했다. 경제는 시장만능주의 체제에서 불공정하게 작동했고, 노동시장과 일자리는 극단적 양극화를 야기했다. 모든 국민을 위한 보편적 복지는 찾기가 어렵다. 보편적 복지는 부자나 빈자 모두에게 똑같이 혜택을 주는 것이다. 유럽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한국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공적사회복지 지출이 10%에 불과하다. OECD평균 21%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선진복지국가의 25~30% 수준에 비하면 3분의 1정도로 복지후진국이다. 국민들은 지금 경제민주화와 공정한 경제, 선별적 복지체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원하고 있다. 이것이 ‘역동적 복지국가’다. 이런 틀에서 사회전체의 행복수준을 높일 수 있고, 모든 ‘나’들이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 ‘역동적 복지국가’는 무엇인가.

▲ 우리 단체가 추구하는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은 ‘존엄-연대-정의’ 세 가지다. 여기에 4개의 기둥인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가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네 가지 원칙들은 서로 상호작용 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뺄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깨지면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의미가 없다. 보편적 복지는 공정한 경제토대 위에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이 중요하다. 또한 보편적 복지가 없는 적극적 복지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 공정한 경제 없이 혁신적 경제가 불가능한 것과 같다.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 정부가 대표적 사례다. 보편적 복지 없이 단순히 적극적 복지에만 함몰되는 바람에 오히려 사회주의 국가라는 정치적 수사(修辭)로 폄훼됐다. 성공하기 어렵고 실제로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를 받았다.

 

- 보건의료선진화에 산파역을 담당했다.

▲ 1988년 5월 시민사회단체가 나를 새정치국민회의에서 보건의료정책 전문위원으로 일하도록 파견했다. 나는 주어진 책무와 소명을 완수하기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전문위원직으로서 일하기에는 더 없이 좋았지만, 직장으로서는 형편이 없었다. 예방의학 전문의인 내가 그 정도의 월급과 처우를 받는 문제를 따지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이 많은 전문위원으로서 받는 박봉과 저열한 처우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경희대 겸임교수 이름으로 시간강사도 했다. 그럼에도 공익을 위한 일은 매우 긴장되고 행복한 일이었다. 내가 이 일을 감당하는데 큰 도움을 줬던 분은 정책위원회 의장이었던 김원길 국회의원이다. 김 의원은 50년 만에 집권한 여당이 행정부를 잘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 간 군사정권에 의해 오랜 타성이 붙어버린 정부 관료들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수준 높은 정책성과를 내기 위해 정책 활동을 지원했고 전문위원들의 사기를 높여주었다. 그때 ‘보건의료 효율화 및 선진화 정책기획단’을 만들었고 김 의장의 승인을 받았다. 6개월 동안 집중적인 활동 끝에 정책보고서를 발간했다. 후일 이 보고서는 김대중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방향을 잡아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 ‘단골의사제도’를 추진하기도 했다.

▲ 지금도 일반인이 대학병원 가는 일이 번거롭지만, 가벼운 질환으로 멀리 대학병원까지 가는 것은 더 그렇다. 때문에 동네의원이나 병원이 국민의 신뢰와 매력을 잃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증환자라도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 대신에 동네의원을 이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동네의원이 획기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동네의원의 매력과 신뢰를 높이려면 ‘의사-환자’ 관계를 재구성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이것이 동네의원이 수행해야 할 ‘1차 의료 정상화’다. 전문위원 당시에 나는 동네의원 ‘주치의등록제’(단골의사제도)를 추진했다. 국민들은 평소에 잘 알고 친숙한 의사를 만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이를 제도화하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이런 단골의사제도가 없기 때문에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고 ‘의사 장보기’를 하면서 의료와 약물을 남용하고 있다. 이는 1차 의료 만족도를 낮추고 국민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킨다. 이 제도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정부도 도입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의료계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정부가 단골의사제도를 통해 동네의원 통제를 강화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동네의원의 반발이 심했다고 들었는데.

▲ 그 당시 가정의학회 진영은 단골의사제도를 지지했다. 하지만 동네의사들은 반대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들 대부분이 단과전문의 위주여서 제도시행의 걸림돌이 되었다. 현재 전체 의사의 90%가 단과 전문의다. 원래 주치의는 특정 전문 의료지식보다는 포괄적 의료지식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동네의원은 의사는 많아도 특정분야 과목만 진료하는 시스템이다. 대부분 내과 전문의가 많다. 이들을 설득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의료선진화를 위해서는 이런 악조건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사회적 공론화를 위해 노력했다. 국민들은 제도의 장점을 아직 잘 모른다.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야 함에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고달프지만 이것이 시민사회의 보건의료운동이고 운동가들에게 주어진 임무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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