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지난해 겨울, 온 국민의 염원으로 밝혔던 촛불의 힘으로 묻혀 있거나 감추어져 있고, 숨겨져 있던 패악한 부정·비리가 들춰지면서 수사를 받고 재판도 받지만, 감옥에 갇히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그들 적폐 세력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 온갖 속임수와 거짓으로 국민을 속여먹었지만 영원한 권력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영원히 묻히고 숨겨질 줄 알았던 위계와 거짓이 탄로되고 말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기왕의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늘어놓고만 있습니다.

다산은 귀양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불성실한 아들을 꾸짖으며 성실한 마음, 진실하고 속임 없는 마음, 거짓 없는 마음과 행위를 권장하면서
“이 뒤로는 반드시 착한 마음을 불러일으켜 『대학』의 「성의장(誠意章)」과 『중용』의 「성신장(誠身章)」을 벽에 써 붙이고 성의공부에 힘써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권하고,
“성의공부는 모름지기 먼저 남을 속이는 말(거짓말)을 하지 않는 일부터 힘써야 한다. 한마디 거짓말하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큰 죄’가 되는 것으로 여겨야 하니 이것이 성의공부로 들어가는 최초의 길목임을 명심하거라(誠意之工 須先從不謊說著力 視作一句謊說 爲世間極惡大罪 此誠意之工最初入頭處:「寄二兒」)”라고 말했습니다.

다산은 분명 『대학』의 ‘성의’를 명백히 이해하고 『중용』의 ‘성신’의 뜻도 분명하게 알아내서 했던 말입니다. 『대학』의 ‘성의’는 ‘스스로 속이지 않음(毋自欺)’의 뜻이라고 했으니 거짓이나 허위, 근거 없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중용』의 ‘성신’ 또한 “성(誠)이란 진실무망(眞實無妄)이다”라고 설명했으니 진실한 말로 남을 기망하지 않는 행위가 바로 ‘성신’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양심이란 애초에 자신을 속여서는 안되고, 또 남을 속여서도 안됩니다. 그런데 요즘 검찰에 불려가고 법정에 서는 사람치고 더욱 지위가 높고 권력을 크게 휘둘렀던 사람일수록 입만 열면 거짓말이요, 속임수를 부리기만 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면서 항용 사용하는 말은 ‘소설(小說)’을 쓰고 있다고, 진실을 말하는 쪽을 무조건 매도하고 있으니 어떻게 된 일일까요. ‘소설’이란 이제 거짓말로 바뀌고 있으니, 소설 작가들은 왜 그냥 보고만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진실무망’한 양심으로 대응하여 사실을 밝히면 될 일인데 진실은 무조건 ‘소설’이라고 치부하여 철저하게 남을 속이려고만 마음먹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진실이 밝혀질까요.

권력을 영구히 누리면서 거짓과 속임이 절대로 밝혀지지 않으리라고 믿었겠지만 세상에 그러한 법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고 거짓은 절대로 거짓으로 밝혀지기 마련입니다. 한마디의 거짓말, 한마디의 속임수가 ‘극악대죄(極惡大罪)’라는 다산의 경고를 마음에 새겨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이 살아나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죄를 지었다면 ’이실직고(以實直告)하고 용서받는 일’이 가장 최상의 일이라는 범죄경험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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