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강변에 사람꽃-부부 해로 ② 입석마을 이중린·강용구

 

오래 전 흑백사진은 구겨지고 찢기고 빛바랬으되, 곱단한 신랑신부의 자태와 혼례상에 차린 댓가지는 여전히 또렷하다.

혼례상에 댓가지 올리는 것은 평생 부부간의 절의를 지키라는 의미.

순창 적성면 석산리 입석마을 이중린(89), 강용구(86) 부부. 한세상 부부의 연을 받들어 왔다.

또 한 장의 사진을 본다. 혼례를 치른 뒤 마당에서 일가친척이 다 모여 찍었다. 사람들 뒤로 초가지붕이 덩실하고, 옷들은 거의 흰저고리와 흰 치마 바지. 백의민족이다. 어찌 그리 조선의 얼굴들인고. 한 장의 사진에 지난 시대가 그대로 들어 있다. 이미 세상을 뜬 이들도 많을 사진 속 그 인물들은 어떤 인생길을 헤쳐 왔으려나.

 

 

“그때는 스무 살이문 노(老)큰애기여. 보통 열일곱 열야답 살에 다 시집을 가제.”

스무 살에 임실 덕치면 장암리서 시집온 강용구(86) 할매.

“6․25때 임실서 피난 나와갖고 순창 놈의 집에서 지내다가 시집가라근께 일로 왔어. 옛날에는 미리미리 혼수 준비를 혀. 히놓고 난리난게로 내 혼수감을 독아지에 너서 땅속에다 아조 지피 묻어붓제. 피난 나올람서 파갖고 나왔어.”

결혼한 지 66년. 아들 다섯을 낳아 키웠다.

“논도 째깨고 겨우 식량할 논만 있었어. 요 꼴착에서 평생 일만 하고 살았어. 까끔 사갖고 알밤나무를 숭궜어. 나중에 뽕나무를 숭궈서 누에도 키왔어. 누에 많이 키왔제. 일고야달매를 했응게.”

고단하고 치열했던 한생애, 어미 아비의 소임을 마치고 이제 고요히 서로의 곁을 지킨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앉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김사인 ‘조용한 일’)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