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딸의 연말연시, 왜 이리 바쁜 거지?
아홉살 딸의 연말연시, 왜 이리 바쁜 거지?
  • 류승연 기자
  • 승인 2017.12.30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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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우리 집에서 연말연시를 가장 바쁘게 보내고 있는 사람을 뽑으라면 단연코 딸이다.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가 뭐 그리 파티도 많고 행사도 많은지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엄마도 눈코 뜰 새가 없다.

먼저 피아노 학원에서 연락이 온다. 파티가 있으니 드레스 코드를 맞춰서 학원에 보내란다. 크리스마스의 상징과도 같은 빨강과 초록, 흰색이 섞인 옷이나 소품을 준비하란다.

빨간 옷도 없고 초록색 옷도 없다. 2학년쯤 되면 그런 원색의 옷은 입기 싫어한다. 흰색 옷은 한 벌 있지만 안 예뻐서 입기가 싫단다. 하는 수 없이 올림머리를 해주고 루돌프 뿔 모양의 핀을 꽂아주는 것으로 파티 분위기를 내서 학원에 보냈다.

 

 

다음 날은 친구들과의 파티다. 같은 반 엄마들끼리 키즈카페를 대관해 아이들을 놀게 했다.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대관 완료. 치킨과 피자, 떡볶이와 튀김, 김밥과 과일, 케이크와 음료수 등 아이들을 위한 상이 차려졌다.

엄마들을 위한 상에는 맥주가 올랐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과 열 명이 넘는 아이들로 키즈카페는 북적북적. 아이들은 먹으라는 음식도 안 먹고 열심히 뛰어다닌다. 1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학교 밖에서 모였으니 밥 먹을 시간도 아깝다.

남녀 무리를 지어 놀기도 하고, 모두가 한 데 섞여 격투기를 벌이기도 한다. 보온이 잘 되지도 않는 곳인데도 아이들마다 머리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아들도 누나 친구들 사이에 껴서 혼자 잘 논다. 또래들이 북적대는 곳에 가니 함께 놀진 못해도 마냥 즐거운 것이다. 나는 눈으로는 아들을 쫓으면서 입으로는 엄마들과 수다를 떤다.

다음 날은 태권도 학원에서의 합숙이다. 크리스마스 기념행사로 눈썰매장을 갈 것인지 도장에서 하룻밤 합숙을 할 것인지 엄마들의 투표가 이뤄졌는데 90% 이상이 태권도 합숙을 선택했다. 하룻밤이라도 아이와 떨어져 자유 시간을 누리려는 엄마들의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덕분에 친구들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 딸은 마음이 들떠 있다. 이불과 베개, 세면도구를 챙겨 도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관장님이 여성이라 사범님도 여성이 많다. 또 사내아이들은 맨 바닥에 요를 깔고 자는데 여자 아이들은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가서 잠을 잔다.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것을 철저히 방지하는 것이다.

관장님이 보내온 사진을 보니 딸의 얼굴이 아주 활짝 펴 있다. 피구 게임도 하고, 보물찾기도 하고, 영화 관람도 하고, 간식도 먹으며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이다.

그 날 밤 새벽 2시에 귀가하던 남편이 태권도장을 보니 불이 환하게 켜진 채 아직도 아이들이 도장 안을 뛰어다니고 있더란다. 다음 날 집에 온 딸은 하루 종일 피곤해 했고 졸려 했다.

하루 쉬고 나니 크리스마스이브다. 엄마아빠에게 가장 좋은 크리스마스란 모름지기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특선 영화를 보는 것인데 딸에겐 어림도 없다.

크리스마스이니 어디든 가야겠다 싶어 어린이박물관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딸이 거부 의사를 밝힌다. 자기는 노는 데 가고 싶단다. 박물관은 재미없단다.

박물관은 무료입장이라서 돈 좀 아낄까 했었는데 어림도 없게 됐다. 어쩌랴. 딸의 크리스마스 소원인데 그거 하나도 못 들어주랴. 롯데몰에 있는 키즈파크에 출동을 했다.

키즈파크 안은 아이들한테 끌려나온 부모들로 가득 차 있다. 놀이기구 하나를 타는 데도 몇 십 분씩 기다린다. 특히 하늘을 나는 열차는 한 시간 넘게 대기를 해야 하는데도 딸은 꼭 타고 말겠단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줄을 서고 그동안 아이들은 남편과 함께 돌아다니며 놀게 했다. 다리도 저리고 하품도 나고 공기는 탁하고 죽을 것 같다. 집에 가서 자고만 싶다. 나처럼 혼자서 줄 서고 있는 다른 부모들도 모두 마찬가지 생각인 듯 눈에 초점이 없다. 다들 멍한 표정으로 간간히 하품을 하며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어쨌든 그렇게 줄 서고 타고 또 줄서고 타고를 반복하며 모든 놀이기구를 섭렵했다. 남편과 나는 곧 쓰러질 듯한 표정인데 아이들은 팔팔하기만 하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다시 태권도장에서 모였다. 이번엔 떡볶이 파티가 마련돼 있단다. 전 날 혹사당한 몸을 쉬게 해주고 싶지만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도장으로 향한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만 보내놓고 집에 가서 쉬는데 나는 장애가 있는 아들을 돌봐야 하기에 도장에 머문다.

아들은 거울을 보기도 하고, 잠시 뛰기도 하더니 이내 출입구 쪽에 누워 뻗어 있다. 보다 못한 관장님이 출입구를 막는다며 30kg이 넘는 아들을 번쩍 안고 안쪽으로 옮긴다.

하지만 아들이 누구더냐! 한 번 맘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진격의 발달장애인이다. 떼굴떼굴 애벌레처럼 굴러 다시 출입구를 막는다. 안으로 옮겨 놓으면 또 굴러가고 옮겨놓으면 또 굴러가고.

그러는 동안 딸은 매운 떡볶이, 까르보나라 떡볶이 등을 배터지게 먹으며 친구들과 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다. 아들의 출입구 막기가 계속되면서 결국 남편을 호출해 함께 목욕탕에 보냈다.

나보다도 바쁜 일정의 딸 뒷바라지를 하는 게 여간 손이 가는 게 아니다. 딸만 데리고 다니면 그리 힘들 것도 없지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들도 데리고 다녀야 하기에 몸이 고되다.

그래도 이렇게 바쁘게 사는 딸을 보면서 세상 좋아졌다는 걸 많이 느낀다. 나 어릴 때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는 걸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 @@어린이집을 1년 정도 다녔던 것 같다. 아직도 그 때 배운 노래 하나가 기억난다.

“아이 참 즐거워라 우리 유치원~ 벌써 갈 시간이 다 되었네. 빨리 내일 아침 돌아왔으면~ 우리 유치원에 또 오겠네.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선생님 안녕~ 친구들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삼남매 중 첫째였던 나는 어린이집만 1년 다녔는데 동생 둘은 YMCA 유치원을 다녔다. 남동생은 졸업을 했고, 여동생은 자기가 발로 차서 유치원 유리문을 깬 이후 다시 가지 않았던 게 기억난다.

어쨌든 당시는 그런 시절이었다. 어린이집도 다니다 말고, 유치원은 졸업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파티라고는 엄마가 집에 친구들 불러 차려주는 생일파티가 전부였고 자연농원이나 어린이대공원 등은 연례행사로 가곤 했던 특별한 외출이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갈 데도 많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박물관과 전시회, 공연과 영화 등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도처에 깔려있다. 부모들은 힘들지만 그만큼 아이들의 세상은 한층 더 넓어졌다.

물론 넘쳐나는 많은 것들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주 양육자인 엄마가 부지런하게 챙기며 쫓아다녀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어린이 시절은 후딱 지나간다. 앞으로 딸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일정을 책임질 날도 많이 남진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쯤 되면 엄마 없이 친구들과 함께 버스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며 놀 수도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나도 처음으로 버스를 혼자 탔던 게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이제 딸은 십대에 들어선다. 열 살이라는 나이. 그저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하면 아직도 어려 보이는데 나이가 두 자리 숫자로 넘어가니 감회가 또 남다르다. 아이들의 성장속도는 화살과 같다고 하더니 언제 이리 컸을꼬.

신년이 되어도 딸의 바쁜 일정은 계속된다. 친구들을 우리 집에 불러 파티를 열기로 했으며, 1월에 잡혀 있는 친구의 생일파티만도 두 건이다. 아빠와는 곤충 박람회를 가기로 했고, 개봉하면 보기로 한 영화도 있으며, 주말을 이용해 스케이트장에도 가기로 했다. 피아노 콩쿨대회에 나갈 준비도 해야 한다.

나는 힘닿는 대로 아낌없이 지원해 줄 생각이다. 유년시절은 짧다. 하지만 그 짧은 유년시절 속에 행복했던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자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성인이 되었을 때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를 것 같다.

나는 딸에게 세상이 따뜻한 곳이길 바란다. 엄마의 손을 잡고 놀이동산에 가고, 도장에서 합숙을 하고, 각종 파티에 다녔던 것처럼 그렇게 즐거운 인생을 어른이 되어서도 누렸으면 좋겠다. 바쁜 딸의 이 모든 시간들이 가치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

<주부, '아주머니'는 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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