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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거기 딱 그 자리에 서있다, 지금 우린…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무장읍성에서 김수복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1.0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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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희끗거릴 때 하늘을 보면 상투적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쓸쓸한가 하면 설레고, 외로운가 하면 그립고, 감미로운가 하면 으스스 한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밖에서는 고양이가 펄펄 휘날리는 눈꽃을 낚아채고자 헛된 공중제비를 돌고, 개들은 훨훨 날리며 꿈틀거리는 눈송이가 대체 뭔 귀신인지 알 수 없다는 듯이 컹컹 짖어대며 앞발을 쳐들었다 내렸다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런 날, 그런 풍경이 창에 비치는 방구석에 남녀 한 쌍씩 두 쌍, 네 명이 둘러앉아 건빵을 안주(?)로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대통령을 둘이나 배출한 박씨 가문에서 일어난 오촌 살인 사건이 잠시 화제로 올랐고, 다스의 실소유자가 누구인지 다 알고 있는 세상에서 다스가 누구 거냐고 물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는 둥의 한탄에 이어 중국 공안은 왜 한국 기자들을 두들겨 팼을까 하는 주제로 잠시 목청을 높이다가 시나브로 조용해져 갔다.

 

▲ 겨울날의 대화

 

“얼큰한 짬뽕 국물이 생각나네?”

내 옆의 그녀가 꿈을 꾸듯이 중얼거렸다. 그날의 짧은 기행은 아마 그렇게 시작됐을 것이다. 맞은편에 앉은 후배가 한 마디 맞장구를 치면서 부추기지 않았다면 물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짬뽕 국물에 쇠주 한 잔, 카아.”

후배의 그 목소리와, 그 표정이 소주를 떠올리게 했다.

“숭어회가 그리워.”

내 앞의 그녀는 한 번 더 꿈꾸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찻잔을 기울이던 후배의 아내는 벙긋벙긋 웃고나 있을 뿐 말이 없었다.“아이 참, 떡볶이도 먹고 싶네?”

내 앞의 그녀는 이제 초등학생의 표정으로 얼른 나가자, 나가자, 하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보채는 투의 그 목소리가 마치 안 나가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경고처럼 들렸다. 하긴 눈발이 희끗거리는 날 방구석에 앉아서 차나 마셔대며 달리 무슨 특별한 정보도 없는 정치판 얘기나 늘어놓고 있어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길을 나섰다.

메뉴는 짬뽕. 떡볶이와 숭어회는 배제한다는 언급도 없이 그냥 자동으로 배제돼 버렸다. 장소는 무장의 123. 그러고 보면 그 집은 간판이 참 쉽다. 쉽고도 발칙하고, 재기발랄하게 경제적이다. 123이 전부인 간판. 이런 간판을 다른 어디서 본 적이 있었나? 없다. 마치 공공의 자산을 개인이 편취했다는 느낌조차 있다. 그렇다고 저놈 나쁜 놈, 하는 심사 같은 건 전혀 없고, 뭔가 예쁘다는, 귀엽다는 느낌까지 있으니 이걸 어쩔 것인가. 게다가 123 집의 짬뽕은 맛도 썩 괜찮다.

후배는 자기 집 앞이라서 익히 알고 있었다지만, 우리로서는 우연히 발견한 집이었다. 어느 하루 짬뽕이 먹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에 따라 집을 나섰더랬다. 목적한 가게는 해리면 소재지에 있는 짜짜루. 그런데 가서 보니 짜짜루가 정기휴일이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더니 어쩌지? 약간의 고민 끝에 가끔 다니는 대성식당의 막창전골로 메뉴를 돌렸다.

 

▲ 무장읍성 남쪽 옹성

 

그런데 가서 보니 대성식당은 외출 중이란 표찰을 걸어놓고 있었다. 야 이게 뭐냐?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서로 눈이나 쳐다보며 쭈뼛거리던 우리는 무장면 소재지의 진무루를 생각해 냈다. 그리하여 차를 몰고 무장면으로 달려갔지만, 진무루도 해리의 짜짜루처럼 정기휴일이란 표찰을 걸어놓고 있었다.

“그 참 희한하고 요상한 일이네?”

이쯤 되고 보니 배가 고프다거나 뭔가 먹고 싶다는 욕망은 사라지고, 그 어떤 결기랄까 오기 같은 것이 작동되고 있었다. 시장통 내의 문을 연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새롭게 메뉴를 발견하면 될 것을, 우리는 그날 뭔가가 마비돼 버렸던 것인지 한 번이라도 가본 식당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멀리 공음 오거리 식당을 지목하고 달려갔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정기휴일도 아니고 잠시 외출중이라는 표찰도 걸려 있지 않은데 오거리 식당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제는 희한하다는 말도 안 나오고, 요상하다는 말도 안 나왔다. 뭔가 한 방 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고, 세상이 온통 담합해서 우리 두 사람을 골리고 있다는 엉뚱한 생각조차 들었다. 어쨌든 집으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젠 아무 식당이나 영업하는 데를 찾아서 들어가자, 하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내 옆의 그녀가 마치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외쳤다.

“아, 생각났어요, 생각났어.”

그녀가 생각해낸 식당이 바로 123이었다. 무장에 장이 서는 날 장구경을 몇 번 나왔었는데 나는 발견하지 못한 123식당을 그녀는 발견했고, 그 간판이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123으로 들어가서 마침내 짬뽕을 주문하고, 소주도 한 병 주문하고, 내친 김에 어쩐다고 탕수육도 작은 것으로 하나 주문해서 배를 채웠다.

 

▲ 무장읍성 측면
▲ 성곽 위를 걷는 사람들

 

그때는 그렇게 탕수육까지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지만, 눈발이 희끗거리는 날에는 먹는 것 이상의 뭔가 다른 것을 몸이 요구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각자 한 그릇씩의 짬뽕과 고랑주 한두 잔씩을 비운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고, 술도 취한다는 느낌이어서, 식탁을 사이에 두고 그냥 앉은 채로 잡담이나 하던 중에 누군가가 문득 “읍성이나 갈까?”했고, 그 말을 듣자마자 아 그것이다 하는 투로 우리는 일제히 밖으로 나왔다.

무장면이 과거 조신시대에는 고창과 동급의 현(縣)이었다. 고려 시대에 무송과 장사라는 이름의 큰 고을이 있었던 것을, 이성계의 조선 건국 이후 그 아들 이방원의 태종 시대에 무송의 무와 장사의 장 그렇게 한 글자씩을 따서 무장이라 명명하는 방식의 이를테면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고 성을 쌓았다. 흔히 왜구라고 불리는 일본 해적들의 노략질을 조금이라도 피해보고자 하는 국방력 강화 프로젝트였던 까닭에, 이만여 명에 달하는 청년과 승려들이 동원돼서 만 4개월 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강행군을 했던 것으로 무장 읍지에는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의 읍성들이 대체로 그 연혁이 불분명한 데 반해 무장 읍성은 기록이 확실하게 남아 있어서, 학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그 방면의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기도 하다.

성이라면 어디에나 있는 동헌과 객사 그리고 누각이 무장읍성에도 당연히 있다. 그런데 그 이름이 평이하거나 상투적이지 않아서 한 번 보면 또 보게 되고, 또 보고 나면 이런저런 온갖 생각이, 상상이 꼬리를 잇는다. 중앙에서 왕의 명을 받고 내려오는 고위관리들이 묵어가는 객사의 현판이 우선 그렇다. 무장의 옛 지명 무송의 송과 장사의 사를 따서 송사지관(松沙之館)이라 했으니, 장사를 고향으로 둔 사람과 무송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연고를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다는 추론을 해볼 수 있고, 그 시대 정부 당국자들은 오늘날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처럼 일방적으로 마구 밀어붙이지 않고 이해당사자들의 정서를 최대한 감안해서 절충하는 지혜를 발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명칭은 예루살렘을 서로 자신들의 성지라고 주장하며 팽팽하게 대립하다 못해 살인도 불사하는 오늘날의 중동지역과 관련해서 약간은 시사하는 바가 있기도 하다.

다음은 현감의 집무실 격인 동헌, 이 건물의 현판은 취백당(翠白堂)이라고 돼 있는데 취가 물총새를 뜻하는 글자이다. 그런데 물총새를 뜻하는 현판이 걸린 건물이 또 하나 있다. 연못에 지어진 정자에 붙은 것으로, 뜰읍(挹)자에 물총새 취자를 써서 읍취루다. 그 시절에 아마 물총새가 많았던 모양이다.

 

▲ 송사지관 측면
▲ 겁나게 나이 많은 생명

 

깃털과 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물총새는 그 성질이 고양이와 흡사하다. 고양이가 쥐구멍 앞에 가만히 앉아서 쥐가 나오기를 기다리듯이, 물총새는 물가에 가만히 앉아서 물고기가 물 위로 튀어 오르는 순간을 기다린다.

자, 현감이 동헌에서 일을 하던 중에 물총새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가 하도 감미로워서 자기도 모르게 밖으로 나온다. 소리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연못이다. 연못가에 물총새가 앉아서 물고기를 기다린다. 소리 못지않게 아름다운 물총새의 자태에 취한 현감은 동헌으로 돌아갈 생각을 잊고 마냥 지켜본다. 마침내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순간, 물총새가 마치 연못으로 꼬나 박히는 듯이 날렵하게 물고기를 낚아챈다. 그런데 그 장면이 어찌나 빠르게 전광석화와도 같은지, 새가 물고기를 잡았다기보다는 그릇으로 물 한 모금을 떠 올렸다는 느낌이다. 이에 크게 감동한 현감은 즉석에서 정자 이름을 읍취루라 짓고, 동헌은 취백당이라 부르기로 한다. 정말로 그랬을까? 물론 나의 상상일 뿐이다.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어느 하루 현감이 일을 너무 많이 한 까닭에 눈앞이 침침해서 머리라도 식힐 겸 연못에 나왔다가 물총새를 발견하고 한참이나 넋을 잃고 바라본다. 깜빡 정신이 돌아와서 연못을 떠나 동헌에 들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멀리 연못에서 들려오는 물총새 소리만이 아득하게 귓전을 맴돌고 있을 뿐 머릿속은 그저 하얗기만 하다. 그리하여 현감은 서둘러 필묵을 갖추고, 동헌은 취백당이요 연못가의 정자는 읍취루라, 그렇게 써 내려간다. 정말일까? 물론 이것도 나의 상상일 뿐이다.

“여그 취백당이 우리 학교 다닐 때 도서관이었소 잉.”

 

▲ 읍취루 전경

 

후배의 한 마디처럼, 무장읍성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흔적을 잃어갔다. 성 안에 학교가 들어서고, 빈자리는 인근 주민들의 논밭으로 활용되던 것을, 현대에 이르러 사적지로 지정되고, 복원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계획을 세워놓고도 예산을 배정받지 못해 뒤로 밀리고 또 밀리다가 겨우 어떻게 첫 삽을 뜨긴 했지만, 역시 그놈의 예산 때문에 하다가 중단하기를 십여 년째 되풀이하는 중이고 보면 언제 끝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따 참말로, 여그서 쩌그까지가 콩밭이었는디. 내가 여그서 콩 농사를 지었더란 말이요.”

후배는 고향도 무장이요 살아온 곳도 무장, 현재 살고 있는 곳 또한 무장인 까닭에 추억이 많다. 추억이 많다 보니 할 말도 많고, 자랑할 것도 많다. 게다가 그는 농민회장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고창에서 농민회 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동학농민혁명이다. 무장기포라는 네 글자로 요약되는 그것.

한밤중에 농민들이 집을 나와서 대나무를 베어 쌓아놓고 창을 만든다. 이른바 죽창이다. 바로 눈앞에서 적과 마주치면 제법 훌륭한 무기 구실을 하지만, 멀리 있는 적들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댓가지일 뿐인 그 무기를 들고 농민들은 한때 승리의 함성을 목청껏 내질렀다. 하지만 이내 무너져 내렸다. 기가 막히게도 관리들은 제 나라 백성들의 소원은 깡그리 싹 무시하고 현대식 장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끌어들였다. 그렇게 통째로 나라를 일본에 넘겨버리고, 저희들만 살아서 농민들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쳤다. 동학란이란 것이 있었는데 그 수괴와 졸개들 모가지를 모두 베어 버렸단다, 너희들은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느니, 하고 말이다.

 

▲ 취백당 뒤편

 

그 시절의 그 동학란이 동학농민혁명이란 명칭을 얻기까지 또 수많은 목숨들이 사라져 갔다. 그리하여 오늘날, 무장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는 축제를 매년 열기로 했다. 그 축제를 실질적으로 주관하고 지원하는 공무원들의 의식 속에 동학이 얼마만한 무게로 들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하마터면 잊혀질 뻔한 동학은 이제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손이 시렵다. 오후가 깊어지면서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간다는 느낌이다. 흩날리던 눈발도 이제는 그쳤다. 시린 손을 주머니에 깊이 찔러 넣고 비탈을 올라 성곽에 이르고 보니 무장면 소재지가 한 눈에 잡히는 것만 같다.

돌을 날라다가 성을 쌓고 망루를 짓던 그 시절에도 오늘날의 방산비리 같은 도둑질은 행해지고 있었을까. 느닷없는 그런 의문 하나가 마치 땅에서 솟아난 비수처럼 목덜미를 훑는다.

빌어도 못 먹고 뒈질 인간들, 주둥이만 열었다 하면 종북, 종북, 종북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성동격서 식으로 국민들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그렇게 깜깜이 세상을 만들어놓은 다음 지들 주머니 채울 궁리로 날밤을 세웠겠지.

바로 그 인간들이 지금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비민주적이고 신적폐라고 목청을 높인다. 필요하다면 간첩도 얼마든지 만들어내는 이 사람들의 적반하장 계략에 우리의 부모 형제, 자매들이 이제는 절대로 안 넘어간다는 보장이 없고 보면, 그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바로 거기, 딱 그 자리에 우리는 지금 서 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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