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강진수의 ‘서울, 이상을 읽다'-10회

 

드디어 ‘정신분열’이라는 단어를 다룰 때가 되었다. 이상에 대한 원고를 적어 내면서 수도 없이 내뱉고 싶던 단어를 마지막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꺼내게 되었다. 이상 자신만의 판타지는 쪼개지고 쪼개지다 못해 산산이 조각이 나서 시라는 장르의 울타리를 넘어서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그의 시를 읽지 않는다. 그의 시는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의미 부여도 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이상이고 우리는 이상의 몸을 더듬고 있는 것과 같다.

 

▲ 시인 이상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 1 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 2 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 3 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 4 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 5 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 6 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 7 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 8 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 9 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 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 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 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3 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 1 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 2 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 2 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 1 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을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 ‘오감도 시 제 1 호’, 이상.

 

누군가 무서워하거나 무서운 사람이더라도 좋다. 그것은 그 어떤 문제도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질주다. 어떤 골목으로 들어가야 할지, 또는 얼마나 오래 질주해야 할지 그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그 질주에는 누군가, 이를테면 포식자가 뒤쫓아 오는 생존의 질주의 느낌이 있다. 무서운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를 잡아먹거나, 무서워하는 아해가 무서운 아해가 되어버리는. 그 긴장감과 초조함 속에서 우리는 우리 머릿속의 수많은 골목들을 생각한다. 구불구불 길을 잃기 십상인 머릿속의 끊임없는 미로.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그 안에 가두었고, 끝없는 질주만이 유일한 방법이 되어버린 게임 속에서 살고 있다.

시인 이상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던 것이다. 누군가가 그를 죽이려 한다거나, 사상범으로 몰린다거나, 입고 먹는 것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시인은 뱀의 머리가 제 꼬리를 물 듯, 잔혹하게 제 몸을 씹어 먹고 있다. 아직 씹히지 않는 시인의 몸은 부르르 떨며 다음의 순서를 두려워한다. 자신이 자기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가운데, 그의 선택이라곤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한 자신의 머릿속 생각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최후의 선택은 자아의 분열, 끝이 없는 자기 자신의 부정이다. 그는 병에 사로잡혀 버렸다.

 

△*은 나의 AMOUREUSE이다.

  ▽**이여 씨름에서 이겨본 경험은 몇번이나 되느냐.
  ▽이여 보아하니 외투 속에 파묻힌 등덜미밖엔 없고나
  ▽이여 나는 호흡에 부서진 악기로다

  나에게 여하한 고독은 찾아올지라도 나는 XX하지 아니할 것이다. 오직 그러함으로써만. 나의 생애는 원색과 같하여 풍부하도다.
  그런데 나는 캐러밴이라고.
  그런데 나는 캐러밴이라고.

*: 잘 쓰러지지 않는 존재의 의인화로 일상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아내’의 의미
**: 외투깃에 고개를 파묻은 사람의 모습으로 의인화한 것.

- ‘오감도 신경질적으로 비만한 삼각형’, 이상.

 

이상의 시는 철저히 기호화된다. 이제 더 이상 언어를 통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없다. 언어의 힘은 산산조각이 났고, 시인은 언어의 종말을 선고하고자 한다. 주변의 모든 관계와 지인들, 가족들, 심지어 그냥 지나가는 사람일지라도 시인은 언어로 그들을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시라고도 할 수 없는 글. 글이라고 할 수 없는 기호의 집합으로 그의 시는 변화한다.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이상의 울타리에 갇혀버린다. 절대 홀려서는 안 된다. 그는 무슨 미생물처럼 스스로 분열하고 또 분열한다. 오직 부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캐러밴이다. 누가 봐도 그는 캐러밴이다. 캐러밴보다도 더 캐러밴 같은 인간이다. 시인은 떠나야 하고 자신을 잊어야 한다. 적어도 그가 캐러밴만큼 살아갔더라면, 우리는 이상의 생애를 비극적인 눈길로 바라보지 않았을 테다.

그는 캐러밴이 되지 못한 캐러밴. 그렇기에 죽어야만 했던 비극의 가련한 주인공이다. 분열을 걷어내고 들어가면 다시 그의 판타지가 있고 또 분열이 반복되는 기이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이상이라는 미로를 경험하고 마는 것이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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