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극인 우리 부부, 그래도 만나서 다행이다
상극인 우리 부부, 그래도 만나서 다행이다
  • 류승연 기자
  • 승인 2018.02.06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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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결혼기념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결혼 12년차 되는 현실 부부답게 선물 같은 건 생략하기로 한다. 대신 저녁에 외식할 곳이나 찾기로 했다. 뭐를 먹을까?

평소엔 아이들 위주로 메뉴를 정하지만 결혼기념일만큼은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찾는다. 이 날 만큼은 아내이자 엄마인 내가 우선되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남편은 결혼기념일이 아내만을 위한 날이냐며 소심한 반항을 해보지만 어허 원래 결혼기념일은 여자들의 것이다.

어쨌든 벌써 12년….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2년이 지났다. 연애 초기 뽀송뽀송하던 남자의 얼굴엔 이제 주름이 보인다. 턱에는 흰 수염도 드문드문 나 있다. 늙었다. 이 남자도. 그새.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a57@weeklyseoul.net

 

남자가 늙은 만큼 여자도 늙었다. 눈에는 이른 노안이 와서 침침해지기 시작했고, 붓기라 우겨보지만 빠지지 않는 나잇살은 몸 전체에 골고루 붙어 당최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우리의 결혼은 순조롭지 않았다. 친정엄마의 반대가 있었다. 남편의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궁합이 안 좋다는 게 유일한 반대 이유였다.

당시 엄마는 정여사(가명)라는 사기꾼 역술가에게 의지를 하고 있었다. 정여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굿을 하라며 엄마의 돈을 갈취해 갔고, 이 세상에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정여사밖에 없다고 생각한 엄마는 그녀가 하라는 것을 다 했다.

그런 사기꾼이 말을 한다. “궁합이 안 좋아. 용띠(나)와 뱀띠(남편)는 상극으로, 서로 만나면 최악이야. 결혼시키면 안 돼!”

엄마는 깜짝 놀란다. 이 결혼을 허락하면 딸의 인생이 큰일 날 것 같다. 남자친구를 한 번이라도 좋으니 만나만 보라고 설득하는 딸의 말도 듣지 않는다. 누군지, 어떤 놈인지 알고 싶지도 않다. 무조건 안 된다. 결사반대!

그렇게 해서 한 달 동안 엄마와 나는 한 마디 말도 섞지 않고 지냈다. 그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한 집에 살면서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안 건네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낸다는 건.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침묵시위를 이어간 지 한 달이 되던 날 나는 거실에서 한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나서야 결혼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다.

내 투쟁에 의해 이뤄낸 결혼이다. 그런 만큼 잘 살아야 했다. 보란 듯이 더 행복하게 살아야 했다. 그건 나의 의무이기도 했다.

하지만 쌍둥이를 출산하고, 그 중 한 아이에게 장애가 오고, 장애 아이를 키우는 삶에 너무 지친 나머지 부부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정여사의 예언대로, 저주대로, 만나서는 안 될 상극이 만난 것 같았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지옥의 3년’이라 부르는 날들이다.

그래도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변하고, 상황이 변하면 생각도 바뀐다. 그 시기에 헤어지지 않고 버텨서 이겨냈더니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있어야만 한다. 여전히 자주 티격태격하지만 그래도 서로여야 한다. 우리여야만 한다. 그 하나의 믿음은 생겼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보다 빨리 죽게 될 그 언젠가의 미래가 두렵다. 나는 남편이 장애인 아들만 남겨놓고 혼자서 먼저 편해지는 건 용납 못한다고 외친다. 그러면 남편은 자기가 나보다 빨리 죽을 게 100% 확실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라고 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 무조건 내가 먼저 죽을 거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서로가 절실한 부부, 즉 ‘진짜 가족’이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 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큰 것만 보고 가는데, 남편은 사소한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이른 아침 바쁜 출근 시간, 내 목표는 아이들 밥을 먹여 시간에 늦지 않게 등교를 시키는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급하게 밥상을 차리고 허겁지겁 아이들 밥을 먹인다. 싱크대를 보면 요리를 하고 난 온갖 흔적이 요란하게 널려 있다.

옷장도 마찬가지. ‘등교’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급하게 아이들 옷을 갈아입히고 밖으로 나선다. 집 안에는 아이들이 벗어던진 실내복과 머리를 빗고 난 빗,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느라 꺼내놓은 옷들이 사방에 늘어져 있다. 내 생각에 이런 것을 치우는 것은 ‘등교’라는 목표를 먼저 이루고 난 뒤 집에 돌아와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다. 요리를 하면서 주변 정리도 같이 하면 좋고, 옷장에서 옷을 꺼내면 안 입는 것은 곧바로 다시 서랍에 넣어둬야 한다. 그래야 정리도 되고 나중에 할 일도 없어진단다.

물론 남편의 방법이 좋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시간이 늦어진다. ‘등교’라는 커다란 목표를 제 시간에 맞춰 이루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1분 1초가 급한 아침, 나는 아들의 옷을 갈아입히며 남편에게 아들이 신을 양말을 갖다 달라고 한다. 남편은 안방으로 가는 길목에 떨어진 수많은 머리카락을 일일이 주우며 천천히 걸어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속이 터진다. “머리카락 따위는 제발 내버려두고 어서 양말이나 가져와!”

해야 할 일은 ‘양말 가져오기’인데 남편은 ‘머리카락 줍기’라는 삼천포에 빠져있다. 목표는 양말이야. 제발 머리카락 따위는 내버려 두라고!

이렇게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부부다 보니 툭하면 부딪히고 언성도 높아진다. 그래도 세월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지 그러는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를 닮아가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한다.

빨래를 널 때 전에는 휙휙 마음 가는대로 털어 널었는데 이제는 나도 남편처럼 옷의 균형이 잘 맞도록 줄을 맞춰서 널게 됐다. 이렇게 하니까 빨래를 걷을 때도 편하고 갤 때도 편하다.

남편은 무심한 듯 대범한 아내 덕에 이젠 사소한 것들은 조금 무시하고 지나가는 법도 배우게 됐다. 나처럼 변한 남편이 좋아서 엉덩이를 때리며 토닥토닥한다. 잘했어. 그래도 돼.

서로가 너무 달라서 마음에 안 들기도 하지만 또 다르기 때문에 살아갈 수도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사람끼리 부부가 된다면 그 가정은 목표지향형이 될 것이고 온갖 사소하고 자잘한 문제들이 해결 안 돼 끙끙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면 남편 같은 사람끼리 부부가 된다면 그 가정은 꼼꼼하고 정확한 대신 가정 내에서 이루어야 할 큰 성취는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 정여사가 틀렸다. 우리는 상극이 맞지만 그래도 만나서 다행이었다. 이런 내 성격을 보듬고 살아줄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고, 또 남편의 성격을 감당하고 살아갈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너무나 다르기에 서로를 보완해주며 함께 살아갈 수가 있었다.

남편의 꿈은 60세가 되면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그동안 벌어둔 돈으로 나와 함께 세계여행을 다니며 남은 생을 즐기는 것이다. 흥! 누가 자기랑 같이 놀아준대? 나는 그 때가 되면 곰국 한 대야 끓여놓고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 다닐 테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남편의 마음은 예쁘다. 아내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그 마음만은 예쁜 것이다.

내일이면 12번째 결혼기념일이다. 무엇을 먹을까, 어디를 갈까 찾고 있으니 보고 있던 딸이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엄마 아빠가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어.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날이잖아. 나랑 동환이는 집에서 김에다 계란비빔밥 먹어도 돼.”

이렇게 예쁜 말을 하는 딸이라니. 남편과 내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은 우리 아이들을 낳은 일이다. 우리 부부 안에 여전히 내재돼 있는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부여서 좋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아이들이다. 남편과 내가 만났기에 이 세상에 태어난 유일한 존재들.

원수 같지만 사랑하고, 예쁘지만 가끔 미운 짓도 하는 남편과 앞으로 40년만 더 함께 살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잘 키워내고 서로의 늙은 손은 보듬어주면서 함께 생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런 축복 하나쯤은 우리 것이 되어보기를 바라본다.

<'아주머니'는 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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