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 전라도닷컴 남인희·남신희 기자
  • 승인 2018.02.0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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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시계가 있는 풍경

1976년, 양 9.1일 음 8.25일

‘벽시계 1976년, 양 9.1일 음 8.25일 윤 8월 공달’. 괘종시계 안에 끼워 둔 쪽지에 적힌 기록이다.

“내가 뭐이든 간직하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 기록을 안해놨으문 요 날짜도 폴쎄 다 잊아불었겄제.”

남다른 기록벽으로 생애를 한 자 한 자 새기듯 쌓아올려온 김오동(80·강진 성전면 명산리 오산마을) 할아버지.

지난 1975년부터 40여 년간 일기 쓰기를 그치지 않아왔다. 그의 남다른 기록벽은 집안 곳곳 살림살이들에도 이어졌으니, 제각각 이 집에 흘러들어와 살게 된 내력을 이름표처럼 붙이고 있다.

큰딸이 사준 괘종시계는 이 집에 온 지 자그마치 40여 년.

“아즉도 썽썽해. 시방도 잘 가. 근디 그 전에는 열두 시를 치드니 인자 열한 시까지만 쳐. 열두 시를 못 쳐. 고것 말고는 암시랑토 안해.”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딸이 열여섯 살 무렵에 사준 시계다.

“우리 큰딸이 국민학교 졸업 타고 서울로 일하러 갔어. 집은 가난하고 아래로 동생들이 줄줄이 있응께 학교를 더 못 갤쳤어. 니그 오빠 갤칠란께 학교 못 보내겄다 그런께 그 애린 나이로 서울로 돈 벌러 갔제.”

그 딸이 월급을 모아서 사준 시계다.

“강진읍내 시계방에 가서 만오백원을 주고 같이 샀어.”

그 역시 가족사의 기억할 만한 장면일 것. 시계 테두리를 따라 노란 테이프가 짱짱하게 둘러져있다.

“시계가 밥을 주문 이리 밀려가고 저리 밀려가고 근께 움직거리지 말라고 감았어.”

애틋하야, 소중하게 간직해오고 있다. 어린 나이로 어엿한 어른 몫을 해내야 했던, 동생을 위해 오빠를 위해 학교 대신 돈 벌러 집을 떠나야 했던 그 시절의 모오든 딸들의 청춘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시계다.

 

 

곱게 접은 신문지 모자

곡성 입면 서봉리 김옥남(78) 할매네 뻐꾸기시계는 곱게 접은 신문지 모자를 둘러쓰고 있다.

성정이 깔끔하여 ‘문지(먼지) 앉는 꼴’을 당최 못보는 까닭이고, 한번 내 손에 든 물건은 끝까지 중하게 간직한다는 그 마음이기도 하다.

‘새로 가지게 된 것에 얼마 동안 사랑을 쏟는 일’을 ‘사랑땜’이라고 한다. 사랑땜의 기간이 너무나 짧은 것이 지금 시절의 부박한 풍습이니, 흔하디 흔한 한낱 벽시계를 애지중지하는 할매의 마음자리가 물큰하다.

소쿠리 하나라도 빗자루 하나라도 사그랑이가 되도록 곁에 두고 어루만지는 만남. 사랑땜 시절을 진즉 넘기고도, 다른 데 눈돌리지 않고, 변치 않고, 지치지 않고 지키는 사랑이 있어 할매의 집안엔 애장품들이 가득하다.

“우리 큰아들 세옥이가 어릴 적 배운 대로 시방은 날 갈쳐. ‘어머니, 어머니가 질(길) 간 사람 물 한 모금만 떠줘도 다 우리들한테 공이 오요, 어머니 베풀고 사씨요’ 만날 그래.”

스치는 인연일망정 귀히 여기고 물건이든 사람이든 생애를 두고 지키는 그 마음이 오롯이 빛나는 자리. 김옥남 할매의 뻐꾸기시계다.

 

 

애잔하게 붙들고 있는 그 시절

신소남 할매네(순창 적성면 석산리 강경마을) 집을 들여다 볼작시면 생활사박물관이 따로 없다. 그 중 우뚝 눈에 띄는 것은 방문보다 키가 높은 시계거울, 혹은 거울시계. 얼핏 괘종시계의 형태를 닮았지만 사실 테두리에 자개를 두른 고급거울 위에 시계를 걸어 하나처럼 보이는 것.

“우리집에 오만 것이 다 있어. 양은 밥상도 있고 또가리도 있고.”

이제는 효용을 잃은 곳간 쇠때조차도 소중하게 간수하고 있는 할매.

“오만 것이 다 식구들 속에서 정든 것이라 버리들 못해.”

할매가 그토록 애잔하게 붙들고 있는 것은 어쩌면 지나온 그 시절 그 시간들인 것임을.

 

 

맞지 않아도 정이 들어 소중한 것

“시계가 안 맞아. 고장나불었어. 지 맘대로 가.”

보성 벌교읍 장암리 대룡마을 오채현(83)·정옥순(80) 부부.

“그래도 항시 이 자리 있던 거라 못 베래.”

해로한 부부의 삶도 어쩌면 그런 것이리라. 안 맞고 고장나고 지 맘대로 가도 그 자리를 지키는 서로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것.

고장난 시계 위로는 김소월 시인의 ‘못잊어’를 담은 시화 액자가 걸려 있다.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고, 당신을 잊을 그 먼 훗날은 아직 멀었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

“인자 두 내외배끼여. 쌀농사는 야답 마지기여. 전부 애기들(3남2녀) 나놔줘. 시방은 무시 뽑으러 가는 참이여.”

어디 재미난 나들이라도 가는 양 할배는 활짝 웃음.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의 느긋한 삶을 살아온 이라야 내어놓을 수 있는 그런 웃음이다.

바로 그때 마나님이 먼저 대문을 나서다가 “아이 뭣허욧!”채근하는 소리가 날아들고 할배는 서둘러 장화를 꿰어신는다. 맞지 않아도 정이 들어 소중한 것이 시계뿐이겠느냐.

<…무량수전의 눈으로 본다면/ 사람의 평생이란 눈 깜빡할 사이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우리도 무량수전 앞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반짝하다 지는 초저녁별이어요… >(정일근,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중)

당신도 나도 이곳에 와서 반짝 피었다 지는 꽃인 것을.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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