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이 부자인 건 맞지만 스웨덴 사람들이 부자인 건 아니다?
스웨덴이 부자인 건 맞지만 스웨덴 사람들이 부자인 건 아니다?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8.02.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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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스페인 남부 환상적인 지중해의 도시 말라가. ‘태양의 해변’이라는 뜻의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이라고 불리는 유럽 최고의 휴양 도시. 1년 365일 중 320일이 찬란한 태양으로 가득해 특히 북유럽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

어둡고 추운 북유럽에 사는 사람에게 2월의 생소한 태양이 작열하는 피카소 생가 앞 카페는 그 자체만으로 이국적이다. 최고 섭씨 20도가 넘나드는 태양이 다소 뜨겁다고 느껴지면 이미 겨울이라는 계절의 감각은 사라지고 없다.

 

▲ 말라가 시내 피카소 생가 앞의 카페에는 2월임에도 따뜻한 태양으로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이 많다. 그들 중에는 특히 말라가의 태양을 따라 온 스웨덴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카페 여기저기서 매우 익숙한 언어들이 들린다. 스페인어들 속에서 적지 않게 들리는 말은 스웨덴어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면 어딘지 익숙한 모습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스페인 사람들과는 확연히 구분이 되는 북유럽 사람들이다. 말라가의 해변에는 과감히 옷을 벗어던지고 바다에 뛰어드는 스웨덴 젊은이들을 볼 수가 있다. 스웨덴 사람들 사이에서 겨울이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두 달 씩 말라가로 여행을 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스웨덴이 부자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까? 최근 부인과 함께 말라가로 한 달간 골프여행을 다녀온 스웨덴의 평범한 직장인인 리카르드 홀름 씨는 “스웨덴이 부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 사람들이 부자는 아니다”고 말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라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그들에게 말라가의 스웨덴 사람들 이야기를 하면 십중팔구는 “역시 돈 많은 나라의 시민들은 다르다”고 반응한다. 한국보다 훨씬 국민소득이 높은 스웨덴이니 가능한 일이라는 말이다.

스웨덴의 직장인들이 한국의 직장인들에 비해 높은 급여를 받는가 하면 거기에는 조금 다른 해석들이 있다. 평균에서는 맞지만, 개별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다.

 

▲ 스웨덴의 봉급생활자들은 경력이나 나이, 성별과 학벌 등에 따른 임금 격차가 거의 없다. 임금의 차이는 단지 노동 시간으로만 발생한다. 사진은 스웨덴의 대표적인 대기업인 스카니아.

 

한국의 대기업에 근무하다가 스웨덴으로 이직한 많은 사람들은 “스웨덴의 연봉이 낮다”는 말을 한다. 설령 대기업이 아닐지라도 중소기업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으로 스웨덴의 회사에 취업하는 사람들은 한국에 비해서 상당히 낮은 연봉을 받고 힘겨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배가 높은 스웨덴인데?

세계은행(WB)의 2017년 발표에 따르면 스웨덴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5만4590달러, 한국은 2만7600달러다. 즉 스웨덴 사람들은 1년에 약 6000만 원의 수입을, 한국 사람들은 3000만 원의 돈을 번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스웨덴에 오면 연봉이 낮다고 느끼는 걸까? 그것은 단지 한국의 고연봉자에 속한 사람이 스웨덴의 기업에 취업한 경우에나 해당하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국세청의 ‘2017년 국세통계연보’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6000만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봉급생활자의 비율은 18% 정도 된다. 그 중 1억 이상의 연봉을 받는 사람은 3.7%다. 3000만 원 이상 6000만 원 미만이 54%선이고, 연봉이 30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도 28%대에 이른다. 즉 GNI 3000만 원 속에는 편차가 큰 연봉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스웨덴은 봉급생활자의 상당수가 6000만 원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직종이나 경력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2016년 스웨덴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봉급생활자의 70% 이상이 연봉 6000만 원 수준을 받고 있다. 물론 노동 시간에 따른 차이는 있다. 하지만 노동 시간 당 임금을 환산했을 때 하루 8시간 노동 기준으로 보면 70% 이상이 연봉 5000만~60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오히려 6000만 원 이상의 고연봉자는 비율은 10% 미만이고, 3000만~5000만 원 연봉자가 또 20% 수준이다.

가구 당 수입의 형태도 한국과 스웨덴은 다르다. 스웨덴은 거의 대부분의 가구가 부부가 함께 돈을 버는 형태지만, 한국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2017년 기준 한국의 맞벌이 가구 비율은 45% 수준이다. 절반 이하의 가구가 외벌이로 가정 경제를 꾸려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은 85% 이상의 가구가 맞벌이 가구다.

 

 

그러니 1인당 국민소득을 가구당 소득으로 합산하면 한국과 스웨덴은 차이가 발생한다. 즉 맞벌이가 절반 이하인 한국의 가구 절반 이상은 1년에 3000만 원의 수입뿐이다. 그러나 맞벌이가 대부분인 스웨덴은 결국 가구당 1억 2000만원의 연 수입이 발생하는 것으로 환산할 수 있다. 단순히 1인당 GNI만 가지고 계산했을 때.

소득의 양극화가 한국과 스웨덴의 수입 구조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직장인의 경우 오히려 스웨덴의 직장인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그런 비율은 전체 한국의 봉급생활자 중 18% 정도에 그치는 것이다.

스웨덴의 낮은 임금 인상률도 착시 현상에 한 몫 한다. 스웨덴 직장인의 평균 임금 인상률은 연 3% 수준이다. 임금 인상률이 낮다보니 첫 직장에서의 임금과 정년퇴직 때의 임금의 차이가 크지 않다. 즉 앞서 언급한 평균 6000만 원 수준의 연봉이 초임에서 정년까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첫 직장 월급은 스웨덴이 한국보다 훨씬 높고, 정년퇴직할 무렵의 월급은 오히려 한국이 스웨덴보다 높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 스웨덴 사람들은 “스웨덴은 부자지만, 시민은 부자가 아니다”고 말한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실제 그들 중 부자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스웨덴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더 부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한국에서보다 스웨덴에서 봉급생활자로 살기가 더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스페인 말라가 해변에서 2월에 시원하게 벗어던지고 일광욕을 즐기는 스웨덴 사람들은 한결같이 얘기한다. “우리가 부자여서 이곳에 놀러온 것은 아니다”라고. 먹고 사는데 크게 힘에 부치지 않고, 노후에 대한 걱정이 없으며, 아이들이 자라는데 필요한 것은 어차피 국가가 책임져주니 많이 벌지 않아도 멋지게 쓰면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부러워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높은 GNI가 아니라 그들이 삶을 즐기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부자로 살기’보다는 ‘행복하게 살기’에 더 마음 바쁜 그들의 스타일이 더 부러운 일일 것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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