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논어』는 역시 성인이 지은 고전입니다. 전 세계에서 『성서』와 『논어』를 가장 많은 사람이 즐겨 읽는다고 했으니 『논어』의 가치는 쉽게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얼마나 『논어』가 재미있는 책이었으면 송(宋)나라의 정자(程子)가 했던 말이 절실하게 여겨질까요. “논어를 다 읽은 뒤에는 곧장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는 춤을 추고, 발로는 무용을 하는 사람도 있다(有讀了後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라고 말하여 『논어』의 재미가 얼마나 컸으면 모르는 사이에 손발로 춤을 추고 뜀질을 하게 되었을까요. 재미가 뭉게뭉게 솟아나 저절로 춤추는 사람이 있다는 내용에서 논어의 진미를 알게 해주는 풀이입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은시(恩始)장에 “덕으로 원수를 갚는다(報怨以德)”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치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말씀처럼 원수를 덕으로 갚으라는 뜻이니, 다산은 “노자의 도(道)는 자애로움을 주(主)된 목표로 여기기 때문에 덕으로 원한을 갚으라고 말한다(老子之道 以慈爲主 故以德報怨)”라고 말했는데, 다산은 공자나 주자의 생각을 따른 것입니다.

어느 날 누군가가 공자에게 묻습니다. “어떤 사람(老子)이 원한을 덕으로 갚아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무엇으로 은혜로운 덕을 갚을 것인가? 곧고 정직함으로 원한을 갚고, 덕은 덕으로써 갚아야 하느니라(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라는 진리의 답변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다산은 자신의 깊은 생각을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야박하게 대해야 할 것을 후하게 대하며, 후하게 대해야 할 일에는 보답할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는 뜻에서 후하게 대할 곳에는 덕으로, 야박하게 대해야 할 일에는 ‘직(直)’이라는 참으로 공평한 논리를 찾아냈다는 주장으로 공자의 생각이 가장 옳은 논리라는 것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바르고 정직함(直)이란 속이지 않음(不岡)이다”라고 풀이하고, “인간으로서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속이거나 기망하지 않는 것으로 갚아주면 충분하다고 여겨야 한다”라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런 해석은 주자의 “이른바 직(直)이란 지공(至公)무사(無私)이다”라는 해석과 일치하는 것으로, 원한이 있거나 원수와 같은 사람에게도 모든 일에 지공무사, 지극히 공정하고 사심이 없게만 대해주면 모든 일은 원만하게 해결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대형 교회의 장로 신분으로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를 하나님에게 봉헌하겠다는 말까지 하여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뜻을 실현한다고 믿었던 전직 대통령은 가훈까지 ‘정직(正直)’이라고 했다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사랑이나 은혜는 높다 해도 정직이나 곧고 바름은 그래도 노력해야 할 일인데, 끝까지 속이고 기망하는 일만 했다고 보도되는 뉴스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해주고 있습니다. 노자나 예수는 멀리 있지만 공자의 직(直)은 조금 가까이 있는데, 직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던 우리의 전직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검찰은 직(直)보다는 사익(私益)만을 취했다고 하는데, 구속 직전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구치소로 향하는 그분의 마음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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