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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도신 앙거서 양푼밥 항꾼에 묵고

<전라도닷컴> 장터의 겨울-나누는 맛 전라도닷컴 남인희·남신희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4.02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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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밥’ 아닌 ‘나란히밥’. 옆자리 짝꿍과 항꾼에 먹는 낮밥이다. 남원 인월장.

낮밥 먹을 때가 되면 아연 부산해지는 곳, 허연 김이 폴폴 날리는 곳, 왁시글 떠들썩해지는 곳.

남원 인월장 ‘흥부상회’다. 이곳에선 뭣 사가시요라는 말이 아니라 “잡숫고 가시요”란 말이 더 흔하다.

 

▲ 추운 뱃속 함께 채우는 온기. 담양장

 

“여그는 놈들 믹이러 장에 나와.”

“동네 사람들을 다 믹여. 오가는 사람들도 끄저서 다 믹여.”

“긍께 흥부란 이름하고 딱 맞는 집이제.”

마침 점심 때 이 집 문턱 넘어서는 바람에 자연스레 밥상 앞에 불러앉혀져 ‘식객’ 혹은 ‘식구’가 된 단골손님들이 한마디씩 보태는 ‘흥부상회’ 예찬이다.

 

▲ “쌀값 밥값 따지문 얼마나 되겄어요?” 솥단지 한가득 밥을 지어 누구나 들락날락 ‘식구’ 되는 인월장 ‘흥부상회’ 밥상. “오가는 사람들도 끄저서 다 믹여”라는 칭송을 듣는 ‘흥부상회’ 김태준 아짐이 무전을 부치는 중.

누구나 들락날락, 식구 되는 ‘흥부상회’

본업인 건어물 장사는 잠시 뒷전. 김태준(64) 아짐은 훈짐 나는 찜통에서 김치국밥을 연신 뜨고 있는 중이고, 남편 오갑수(68)씨는 오가는 이들한테마다 “한입 뜨고 가쇼”라고 연신 권하고 있는 중.

장터의 아짐 할매들도 국밥 한 그릇씩을 이무롭게 받아 간다.

“추우니까 뱃속 조금이라도 뜨시라고 같이 먹는 거여요.”

김태준 아짐은 그 말뿐. “이왕 우리 식구 먹는 거, 쪼금만 더 하문 같이 먹잖아요.”

그럴싸한 생색은 하나도 들러붙지 않는다.

“쌀값 밥값 따지문 얼마나 되겄어요? 여그가 산골이잖아요. 그니까 장에 팔러 나오는 어매들이나 병원 갔다가 장에 오는 어매들이나 아침밥도 한술 못 뜨고 장에 나올 때가 많아요. 추울 때 속이 비문 더 춥잖아요. 그럴 때 한입씩 드시문 따뜻하니 좋잖아요.”

누구나 들락날락, 이 집 밥솥에 밥 있는 만치 아침밥과 점심을 같이 나눈다.

“장날이문 내 몸땡이 한나 나오기도 귀찮한디, 이 각시가 밥만 해주는 거이 아니라 군임석까지 빌것 빌것을 다 해줘. 지지미도 꿔주고 국수도 삶아주고.”

큰 주전자 한가득 생강차도 끓여두고 누구한테나 한잔을 권한다. 시방 프라이팬에서는 무전이 노릿노릿 익어가는 중이다. 사람 하나 새로 들어서면 “한나 부쳐드리까?”가 인사다.

“여그는 겨울에는 무전을 많이 부쳐먹어요. 요새는 또 봄똥 나오잖아요. 봄똥전도 잘 해먹고.”

무를 먼저 살캉하게 익힌 다음 부쳐내는데, 겨울 무의 달큼함이 밀가루와 기름을 만나 낯선 별미로 다가든다.

“흥부상회 덕에 식당밥 안 사묵고 도시락 안 싸와도 되야. 이 각시가 긍께 오래 살아야 혀, 하하.”

그렇게 말하는 할매들이 인월장 말고도 또 있겠다. 김태준 아짐은 임실장, 관촌장, 남원장도 보는데 어느 장터에서든 끼니를 나눈다.

 

▲ 오신도신 양푼밥.

붕어빵 하나도, 두유 하나도 나눠먹는 인정

한 양푼에서 항꾼에 밥숟갈을 나누고, 한 화로에서 여럿여럿 불기를 나누고, 한 무더기 푸성귀 다듬는 일거리를 나누는 장터.

“닷새 만에 한번썩 만난께 서로 귀허고, 오신도신 앙거서 양푼밥도 묵고 괴기도 꿔묵고. 짐장김치에 오만 양님 착착 볼라논 것 이 눈 속에 뜨신 밥에 싸묵어봐. 후후후후 해 감서 하늘 쳐다보고 묵으문 들척지근 더 맛있어.”

‘오신도신 항꾼에 양푼밥’은 구례장에서 ‘장날이문 모태앉아 밥 묵는 짝꿍들’의 흔하고도 귀한 점심밥상 메뉴.

파장 무렵의 장흥장. 장바닥에 조촐한 술판이 벌어졌다.

막걸리 두 병에 안주는 숟가락 여러 개가 담긴 보릿잎된장국 한 그릇.

“장날마다 한잔썩 하제.”

“막걸리는 식당에서 묵으문 2천원, 갖고 나오문 1천500원. 쥔네가 국값은 안 받아. 팽야 아는 사이라 기냥 줘.”

 

▲ “장날마다 한잔썩 하제.” 파장무렵 벌어진 조촐한 술판. 장흥장
▲ 장날이문 모태앉아 밥 먹는 짝꿍들. 무안장

 

이연순(78) 할매는 “다 폴고 가든 못 폴고 가든 퇴근 때 항꾼에 묵는 이 술맛이 꿀맛”이라고 말한다.

“멸치야 일로 와라. 호떡 한나 묵자.”

무안장 어물전 김미심(61) 아짐이 건너편에 앉은 이웃을 불러 호떡을 나눠준다.

“우리는 서로 이름은 몰라. 긍께 파는 것대로 이름을 불러, 하하.”

 

▲ “호떡 묵자.”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또 다른 손으로. 무안장

 

이름은 몰라도 속사정은 아는 사이, 장터의 동료들이다.

나주장 채소전 김복님(72) 할매는 난로에 두유를 뎁히고 있다.

“오오래 되얏어. 긍께 다 찌그러져 불었어.”

‘오오래’라고 한껏 길게 빼는 말에 찜통 난로의 연조가 담긴다.

‘스댕밥그륵’에 담긴 두유에서 김이 난다.

“기냥은 찬께 못 묵어.”

혼자도 못 먹는다. 옆자리 짝꿍인 어물전의 송암떡을 부른다.

“우리는 뭐이든 나놔묵는 추미(취미)가 있어.”

된장국 한 그릇도, 호떡 하나도, 붕어빵 하나도, 두유 하나도 항꾼에 나누는 장터. 나눠먹는 그 훈기와 인정으로 추운 겨울을 건너간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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