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금융 노예’

청년실업률이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신용도 바닥을 향해 가고 있다. 한창 삶의 청사진을 그려야 하지만 학자금 대출을 시작으로 눈더미처럼 불어나고 있는 빚의 굴레는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들고 있다. 처음 은행권에서 시작된 ‘대출 인생’은 신용카드를 거쳐 대부업계로 확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인회생이나 파산은 더 이상 중년층 이상의 단어가 아니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젊은층의 빚더미 악순환을 살펴봤다.

 

 

“앞이 보이지 않아요. 주말마다 로또를 사며 큰 꿈을 꾸지만 언제나 그렇죠.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이미 너무 온 것 같아요.”

사당동에서 만난 한 30대 중반 남성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도 한 때는 버젓한 직장에서 일을 했지만 학자금 대출부터 시작된 빚을 갚는 게 너무나 벅찼다고 한다. 여자친구도 있었지만 결혼을 할 형편이 안 돼 결국 헤어져야만 했다.

그는 “처음엔 직장을 구하면 학자금 대출도 쉽게 갚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하지만 자취를 하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다 보면 날이 갈수록 상황은 악화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출을 돌려막다 신용도에 경보음이 울린 이들은 적지 않다. 한창 꿈을 실현해야 할 나이에 빚더미에 눌려 ‘신종 노예’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월급날이 돼도 행복하지 않아요. 절반 이상이 대출금을 갚는데 빠져나가면 또 한달을 빠듯하게 살아가야 해요. 친구들과 술자리를 해도 이제는 서로 눈치만 보게 돼요. 이런 신세가 한심해서 요즘엔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피해요.”

 

젊은층의 ‘파산 신청’

최근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결정하는 법원엔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과거엔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거나 노후에 자금이 끊겨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엔 20, 30대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법원 관계자는 “학자금 대출로 시작했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해 돌려막다 신용이 바닥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는 개인 사업을 준비없이 시작했다 악순환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청년실업 문제가 자연스럽게 대출로 이어지고 이는 무리한 욕심을 부른다. 최악의 경우 중 하나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도박으로 빠지는 사례다.

도박중독치료 관계자는 “예전엔 경마나 고전적인 카드 놀이 등으로 찾는 중년층이 많았지만 최근엔 젊은층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프로토, 토토 등 스포츠 복권에 제약이 가해지면서 불법 인터넷 사이트가 판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박중독 치료 기관엔 젊은층과 그들의 부모들이 적지 않게 찾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미 신용불량 상태다. 심한 경우엔 억대를 넘는 사례도 있다.

“직장을 갖고 있으면 은행권에서 얼마, 신용카드에서 얼마, 저축은행에서 얼마, 대부업계에서 얼마 이렇게 10여군데에 이르는 대출을 연이어 할 수 있다. 그러면 한꺼번에 터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젊은층이 신용등급에 문제가 생기면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신용등급이 낮아질수록 이들의 대출 금리는 높아지고 갚을 수 있는 여건은 악화되기 일쑤다. 그나마 직장인들은 ‘개인회생’이나 ‘워크아웃’ 등의 제도를 신청할 수 있지만 일자리가 없으면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저신용의 악순환’은 삶에 대한 의욕까지 저하시키고 이들의 상당수는 자연스럽게 도박과 같은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도박은 시스템 속성상 결국은 질 수 밖에 없는 게임이다.

 

막막한 ‘인생 청사진’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투 잡’을 뛰며 바둥바둥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낮에는 회사생활을 하고 밤에는 주유소나 편의점 등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긴 밤을 보낸다. 주요 유흥단지에서 대리운전 등을 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서울 강남에서 만난 20대 후반 남성은 “어머니가 만성질환으로 아프셔서 상당한 병원비가 필요하다”며 “처음에는 대출로 근근히 막았는데 이제는 그것도 힘들어 두 가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은행들의 대출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높은 금리가 망설여지지만 당장 신용불량이 되는 건 피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직장이 없는 경우는 이마저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미 대출한 자금을 갚지 못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신용불량 대상이 될 경우 취업은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관계자는 “은행 대출이 카드론이나 저축은행으로 넘어만 가도 이미 빨간불이 켜진 것”이라며 “최고 금리 24%에 달하는 대부업체까지 갈 경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 현실상 돈을 갚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몇 달은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돌려막기는 결국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5년에 걸쳐 개인회생 절차를 겨우 끝낸 40대 남성 A씨는 “신용등급이 어느 정도 오를줄 알았는데 여전히 바닥”이라며 “개인회생을 마친지 2년 정도 됐는데 신용카드도 발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당장 생계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예전처럼 대출인생은 살고 싶지 않아 한달 한달 이를 악물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20, 30대 인생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절대 빚은 빚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의 굴레는 결국 삶의 목을 조를 수 밖에 없어요.”

금융업계에 따르면 젊은층의 평균 신용등급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2014년 자료에 따르면 20대의 평균 신용등급은 5.62로 낮았다.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신용등급이 오르지만 청년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이마저도 사각지대가 생겨났다.

20대의 부채규모 증가도 주목할 만하다. 통계청의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30세 미만 청년 가구주의 부채는 지난해 평균 2385만원으로 전년 대비 41.5% 증가했다. 저마다 머리위에 수천만원의 빚을 이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전체 가구 부채에서 차지하는 20대 비중도 34.0%에 이른다.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 논란을 부른 양극화 문제도 청년층의 부채 증가와 일정 부분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젊은층 부채 문제가 청년실업 완화와 함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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