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두 번째 책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이제 가을이 되면 나는 일 년에 두 권의 책을 출간한 부지런한 작가가 된다. 신기한 일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누구 엄마’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두 곳의 출판사에서 두 개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나니 책을 내는 방법과 과정을 문의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사실 나는 얼떨결에 책을 내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은 기회가 쉽게 찾아온 편이다.

하지만 ‘쉽게’라는 말로 그간의 내 노력이 폄하당하는 건 사양하고자 한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이 맞기 때문이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이제 난 어떻게 책을 내게 됐고, 어떤 과정을 거쳐 책이 만들어졌는지 내가 겪은 일을 얘기해 보려 한다. 내 경험이 아마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은 본인이 직접 낼 수도 있고, 출판사에서 내 줄 수도 있다. 나는 후자인 경우다. ‘좋은 콘텐츠’에 목말라 있는 출판사가 많기 때문에 여러 수단을 통해 자신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면 출판사에서 반응이 온다.

나도 비슷한 시기, 두 곳의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내 콘텐츠가 세상에 노출된 지 6개월쯤 지나자 벌어진 일이다. 그렇게 먼저 연락을 해온 출판사의 편집자를 만나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첫 만남에 계약을 했다.

일단 책을 내 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계약서에는 재미없는 말이 작은 글씨로 잔뜩 쓰여 있어 꼼꼼히 읽어 볼 엄두도 안 났다. 게다가 편집자는 인상도 좋고 착해 보였다. 그가 하라는 대로 사인을 하고 집에 오니 다음 날 계약금이 입금돼 있었다.

뭔가 빠르게 내 의지를 떠나 일이 막 진행되는 것 같은데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지나갔다. 지금 와 생각하니 겁이 없었구나 싶다.

첫 번째 책을 낸 A출판사는 좋은 곳이다. 30년 간 의미 있는 책을 만들어 온 출판사인데, 심지어 사람들까지 다 착하고 선하다. 정직하고 원칙을 중시하는 이들이 파주의 출판단지 안에서 좋은 책을 만들어 낸다.

다행이었다. 정직한 출판사를 만났기에 나는 멋모르고 사인을 하고도 작가로서의 내 권리를 모두 찾을 수 있었다. 자칫 나쁜 출판사를 만날 경우 계약서 내의 이런 저런 황당한 조항들 때문에 작가로서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조차 못 찾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계약서에 사인을 할 때는 무조건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렇게 좋은 출판사지만 초보 작가의 저작권료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남편과 나는 ‘코딱지만한 저작권료’라 부른다. 나만 그리 적게 받는 건가 했는데 일반적으로 첫 책의 인세 비율은 모두 똑같다고 한다.

물론 첫 책을 출간한다고 해도 유명 인사가 내는 책이면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유명인사가 아닌 나는 세금마저 다 떼고 나자 상어 모양의 아이스크림은 사 먹을 수 있지만 붕어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사기엔 모자란 수준에서 권당 저작권료가 들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가 이슈를 끌고 다니는 유명인사가 아니라면, 책을 내 돈 방석에 앉겠다는 생각은 일단 접고 시작을 해야 한다. 그건 책이 엄청 많이 팔려서 10만부 정도는 넘어갔을 때의 이야기다. 요즘의 출판시장은 만 권을 넘으면 성공, 삼 만권을 넘으면 베스트셀러, 십만 권을 넘으면 대박을 친 것으로 간주한단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책을 처음 낸 초보 작가들은 남 보기도 민망하고 출판사에도 미안해 일단 만권이라도 넘기 위해 사활을 걸곤 한다. 인터뷰 하자는 데가 있으면 열심히 인터뷰도 하고, 강연이나 북콘서트 요청이 오면 거리가 멀어도 달려가곤 한다.

“나는 작가니까 우아하게 글만 쓰면 돼. 홍보하고 파는 건 출판사 몫이지.” 이런 시대는 지났다. 나도 개인 SNS를 통해 열심히 홍보도 하고, 스토리펀딩도 진행하면서 책을 알리고 홍보하는 데 나름 최선을 다했다.

책이 나오는 과정은 목차를 뽑는 것부터 시작된다. 사실 목차만 정해지면 일이 반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책의 전체 흐름을 결정짓는 목차 구성은 중요한 일이다.

나는 이 과정도 수월하게 지나갔다. 편집자와 의견이 잘 맞았다. 그러다보니 본문을 쓰는 데도 큰 무리가 없었다. 내가 초고를 써서 보내면 편집자는 ‘책’이라는 출판물에 맞는 형식을 갖출 수 있도록 단어 하나까지 꼼꼼히 검열하며 자신의 의견을 적은 수정본을 다시 보내오곤 했다. 이 과정이 총 3~4번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마지막 원고를 탈고하기까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제목과 표지를 정하는 데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착하고 정직한 출판사 편집팀은 책의 제목도 그들 자신처럼 착하고 정직하게 뽑았다. 나는 후보에 오른 두 개의 제목을 보자마자 “헉”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딱 봐도 착하고 지루해 보이잖아. 나는 제목만큼은 강렬해야 한다며 강도 높은 제목을 주문했다. 출판사에서 마케팅 회의도 가졌는데, 이 날 처음 만난 편집장님은 나와 한 시간 동안 회의를 하고 나더니 이전의 제목이 안 맞는 걸 알겠다며 내 캐릭터에 맞춰 더 못된 제목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나오게 된 제목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다. 슬쩍 흘리자면 처음 출판사에서 후보로 낸 제목 중엔 ‘의미 있는 인생입니다’라는 게 있었다. 의미 있는 인생이라니. 아유~ 오글오글거린다.

표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나는 강렬하고, 깔끔하고, 임팩트 있는 한 방을 원했다. 사실 하얀 표지에 제목 외엔 아무것도 없는 책이 나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책은 샤방샤방한 핑크색 표지에 볼록볼록한 귀여운 말풍선도 달렸고, 내 모습의 그림까지 그려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부제와 추천사 등 표지 전면엔 글씨도 많았다.

표지를 처음 받아본 날,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강렬한 한 방은 어디 가고 핑크색이라니, 이런 귀여움이라니. 출판사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들고 손을 다 놔버리고도 싶었다.

그런데 그건 무지에서 비롯된 나의 오만함이었다. 알고 보니 핑크색의 표지와 수많은 글씨 등은 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해 고민 끝에 마련된 방안이었다. 내가 이외수나 공지영 작가 등의 인지도가 있으면 표지에 제목 하나만 뽑은 그런 모습의 책을 세상에 선보여도 된다.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초보 작가일 경우 사람들이 표지만 봤을 때 이게 무슨 책인가 알 수 있을만한 설명이 쓰여야 한단다.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고.

그리고 내가 원했던 것은 서점을 찾은 누구나가 표지를 보고 한 번쯤 열어볼 수 있는 책이었는데 그건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게 열어보지 않는단다. 눈으로 한번 쓱 보고 지나가는 현실이라고.

그러다 보니 ‘누구나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을 목표로 애매모호한 표지를 만드는 것보단, ‘책을 사러 서점에 오는 일부 독자층’을 겨냥, 그들을 통해 책이 팔리고 입소문이 전해질 수 있도록 타깃을 확실히 정해 표지 디자인에 나서는 게 현실성 있는 일이라 한다.

이런 출판시장의 흐름을 모르고 그저 강렬하고 멋진 한 방만 주문하고 울음까지 터트렸으니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어찌되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첫 책이 나왔다. 그리고 첫 책이 나온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엔 인문학 시리즈, 그러니까 총 100권으로 예상된 전집 중 한 권을 맡아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100명의 저자들 가운데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면 그 또한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전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런데 계약서에서 조금 의아한 점이 발견된다. 인세 지급시기에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거 건의해도 괜찮을까?” 말을 할까 말까 5초쯤 망설이다 용기를 내서 물어본 결과, 원하는 대로 인세지급 시기를 변경한 계약서를 새로 작성할 수 있었다.

말해도 되는 거였다. 어차피 계약이라는 것도 사람 사이의 일이니 서로 소통을 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책을 낸다는 건 그런 일이다. 분명 내가 쓴 내 책인데, 이런 내 책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함께 공을 들인다. 책 안의 내용만 내가 쓸 뿐, 따지고 보면 책이란 건 공동의 노력으로 일궈낸 결과물이다. 이런 과정을 알고 나니 이젠 마주하는 책 한 권 한 권이 다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하나의 책, 그 뒤에 있는 사람들까지 생각하게 된다.

책을 낸다는 건 분명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이런 기쁘고 감사한 기회를 또 얻게 됐으니 이제 열심히 쓰기만 하면 된다. 책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소중한 경험, 그 경험이 오래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좋은 책을 만들도록 노력해야겠다.

<'아주머니'는 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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