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의 발트해, 바다 가득 감성을 채우다
백야의 발트해, 바다 가득 감성을 채우다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8.06.04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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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 크루즈 - 바이킹 라인 : 실야 라인과 함께 대표적인 스톡홀름과 핀란드 등을 오가는 초대형 크루즈. 스톡홀름 시내 남쪽 슬루센 항구에서 출발한다.

 

거대한 배가 항구를 미끄러지듯 벗어난다. 발트 해를 향한 뱃머리는 아름다운 대저택들이 즐비한 리딩외(Lidingö) 섬을 왼쪽에 두고 멜라렌 호수를 유영한다. 그러나 이 배는 쉽게 스톡홀름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무려 두 시간 가까이 멜라렌(Mälaren) 호수 여기저기에 흩어진 섬들을 훑는다.

섬과 섬 사이에 난 물길을 천천히 유영하는 거대한 크루즈 주변으로는 크고 작은 배들이 오간다. 그 중에는 자그마한 고깃배도 있고, 입이 쩍 벌어질 만큼 화려한 고급 요트도 있다. 대부분의 섬들은 마을이 형성될 정도로 크지만, 때로는 이 배 보다 작은 섬도 있다. 그렇게 멜라렌 호수의 섬 수백 개를 거쳐 크루즈는 서서히 발트 해로 진입한다.

이 즈음 크루즈의 맨 꼭대기 선 데크에서는 요란한 맥주 파티가 벌어진다. 국적 불문, 인종 불문, 나이 불문. 본인이 즐길 마음만 있다면 파티에 뛰어든다. 짙푸른 발트 해를 가르며 속도를 내기 시작한 배 위에서의 맥주 파티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도 취기가 흥건하다. 선 데크 한편에서는 이런 요란한 파티와 상관없는 이들이 백야의 바다를 즐긴다.

망망대해에서의 진짜 백미는 깊은 밤에 시작된다. 시간은 이미 밤 11시. 하지만 선수에서 뻗어간 바다의 끝 수평선은 이제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그 무렵 바다를 향해 내려오는 태양은 그리 급하지도 않다. 서서히 수평선에 걸린 태양이 긴 하루의 고단함을 잠시 누이고 나면 시간은 밤 11시 30분. 백야의 발트 해는 이성을 뒤로하고 감성으로 바다를 가득 채운다.

 

▲ 크루즈 - 실야 : 스톡홀름 시내 북동쪽에 있는 배르타함넨 항구에서 출발하는 대형 크루즈. 탈린크-실야 라인이 정식 명칭이다.

 

스톡홀름과 인근 다른 나라를 잇는 관광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크루즈 여행. 그 대표적인 노선인 실야 라인(Silja Line)의 초대형 크루즈 ‘실야 심포니(Silja Symphony)’에서 경험하는 한 여름의 낭만이다.

스톡홀름에서는 배를 타고 인근 다른 나라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무척 부러워하는 아이템이다. 스톡홀름에서 발트 해 건너 옆 나라인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조금 더 멀게는 러시아까지 오갈 수 있다.

배의 종류도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앞서 언급한 실야 라인이고, 그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바이킹 라인(Viking Line)이다. 그 밖에 비르캬(Birka) 크루즈도 있는데, 각 라인에도 목적지에 따라 여러 척의 배가 있다.

실야 라인은 핀란드 헬싱키를 비롯해, 핀란드의 옛 수도인 투르쿠, 발틱 3국 중 에스토니아의 탈린과 라트비아의 리가를 오가는 10여 척의 배를 운행한다. 바이킹 라인은 실야 라인이 운행하는 노선 중 라트비아 리가가 없는 대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가는 노선이 있다.

이들 배의 크기는 엄청나다. 보통 배 전체 길이가 200m가 넘고, 작은 것은 건물 8층 높이에서 큰 것은 12층 높이에 이른다. 750개에서 1000개에 이르는 객실에 최고 2800명이 넘는 승객을 실어 나를 수 있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초특급 호텔인 셈이다. 물론 이 배들에는 100여대의 자동차가 실린다. 왕복표를 끊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차를 싣고 다른 나라 도시로 가서 여행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 크루즈 선상 : 실야 라인인 실야 심포니 호가 핀란드에서 스톡홀름으로 돌아오는 풍경이다. 현재 이 시간이 오후 9시다.

 

배 안에는 침실이 갖춰진 객실은 물론, 배 안에서 먹고 자고 마시고 놀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있다. 스웨덴 전통의 바이킹 뷔페인 ‘스뫼르고스부드(Smörgåsbord)’를 먹을 수 있는 대형 레스토랑을 비롯해, 수십 개의 다양한 식당과 바(Bar)와 카페가 있다. 밤새 운영하는 가라오케와 펍(Pub)은 물론 나이트클럽과 카지노, 그리고 각종 오락실과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도 갖추고 있다. 또 대형 사우나와 수영장, 그리고 공항에서나 있을 법한 대형 면세점까지.

스웨덴에서 가까운 핀란드령인 올란드(Åland) 제도 노선은 1박 2일 코스로, 오후 5시 무렵 스톡홀름의 항구를 출발하면 다음 날 아침 10시 경 올란드의 마리에함(Mariehamn)에 잠시 정박했다가 오후 4시 경 스톡홀름으로 돌아온다. 편도표를 구매한 승객은 마리에함에서 내리기도 하지만, 왕복표를 구입해 배에서 내리지 않고 스톡홀름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신데렐라 보트(Cinderella Boat)라고 불리는 배는 주로 밤샘 파티를 위해 타는 사람들이 많다.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나 탈린과 리가 노선의 경우는 2박 3일 코스다. 보통 스톡홀름의 항구에서 오후 4~6시 사이 출발한 배는 약 2시간가량 스톡홀름 멜라렌 호수에 있는 수백 개의 섬 사이를 돈다. 저녁을 먹을 시간 쯤 발트 해로 빠져나간 배는 밤새 달려 다음 날 아침 9~10시 경 헬싱키나 탈린, 리가 항구에 도착한다. 그러면 승객들은 배에서 내린다. 그리고 오후 5~6시까지 그 도시를 여행한다. 다시 배에 승선한 후 그 배는 온 길을 되짚어 다음 날 오전 10시 무렵 스톡홀름에 도착한다.

이 크루즈 여행을 다른 유럽 국가가 부러워하는 것은 가격이다. 2박을 배에서 잘 수 있고, 반나절을 다른 나라 다른 도시를 여행할 교통을 제공하는 건데, 성수기 가장 저렴한 객실을 기준으로 약 500크로나, 즉 한국 돈으로 6만원 수준이다. 이 객실은 보통 3~4인 가족 구성으로 돼 있으니 한 사람 당 비용이 아닌 한 가족 당 비용인 것이다.

 

▲ 크루즈 선상에서 본 풍경 : 바이킹 라인이 슬루센 항구를 출발한 직후 볼 수 있는 스톡홀름의 풍경.

 

신데렐라 보트나 비르캬 크루즈 등 1박 2일짜리는 성수기에도 선실 하나 당 100 크로나, 1만 2000원 정도면 탈 수 있다. 만약 3명이 함께 간다면 1인 당 4000원으로 이 호화 유람선을 타고 해외(?)에 다녀올 수 있다. 물론 제일 높은 층 바다를 향해 커다란 창문과 발코니까지 갖춘 최고 5000 크로나, 우리 돈으로 60만원이 넘는 호화로운 객실도 있지만.

스톡홀름의 여름 바다는 밤 11시에도 해가 지지 않는다. 백야의 바다는 물리적인 시간상 한밤중이라고 해도 바다가 환하다. 11월 12월의 겨울이라면 경험할 수 없는 스톡홀름 열도의 아름다움을 6, 7, 8월이라면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스톡홀름 크루즈 여행은, 기왕이면 밤이 일찍 시작되는 가울 겨울 봄 보다 여름에 제격이다.

거대한 배가 항구를 출발해 멜라렌 호수 위 보석처럼 찬란한 섬 사이를 유영하는 동안 스톡홀름의 최대치 행복이 따라온다. 화려한 도시의 풍경을 지나 한적한 크고 작은 섬들의 자연이며, 사람의 흔적이 많지 않은 여름 집들이며, 간혹 고기를 잡는 작은 어선들이 가르는 물살의 수줍은 흐느낌을 보는 것은, 스톡홀름을 그 무엇으로도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스톡홀름의 여름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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