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 양파 밭은 끝이 안 보인다.

인삼 밭을 지나면 담배 밭이 나온다고 했다. 담배 밭을 지나면 수박 밭이 나오는데 수박 밭까지 가면 안 된다고 했던가? 그렇다. 수박 밭 못 미처 산 쪽으로 비포장도로가 마치 숨겨놓은 듯이 있으니 잘 살펴봐야 한단다. 그 비포장도로를 따라서 위쪽으로 계속 쭉, 가노라면 오른쪽으로 양파 밭이 보이고, 조금 더 올라가면 좌우 양쪽이 모두 양파 밭이라는 것이다. 밭에서 뒹구는 양파는 모두 다 버린 것이니, 마음에 드는 걸로 아무 것이나 거리낄 것 없이 마구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오직 그 한 가지 그 얘기만 듣고 우리는 길을 나섰다. 마치 무슨 굉장한 미션이라도 수행하러 가는 것 같았다. 땡볕이 자글자글하게 온 몸을 볶아대는 날의 오후 2시 즈음이었다. 웬만한 각오 없이는 길을 나서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날 그 시간, 가장 뜨거운 오후 2시 무렵에 길을 나섰다.

왜? 공짜는 양잿물도 마신다는 비유를 들어볼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바보멍텅구리 같았기 때문이었다. 햇살이 잦아드는 5시 이후에 가도 되고, 오전 일찍 가도 되는 것을, 어째서 하필 오후 2시 무렵에 길을 나섰는지는, 생각을 아무리 하고 또 해봐도 딱히 이렇다 할 이유를 찾아볼 수 없으니 그저 바보멍텅구리였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바보멍텅구리처럼 그날 그 시간 땡볕이 자글자글한 들판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우리가 양파 밭을 찾아서 낯선 산길을 들어서고 있을 때 트럭 한 대가 양파를 잔뜩 싣고 나갔다. 우리는 그때만 해도 그게 양파인 줄은 몰랐다. 그저 트럭이 뭔가 짐을 싣고 나가나 보다 했을 뿐이었다.

 

▲ 트럭을 대놓고 양파를 줍는 사람들

 

좌우사방이 모두 황토였다. 자갈이 깔린 도로 역시 황토였다. 갑자기 푹 파였는가 하면 자갈이 한쪽으로 몰려 있기도 했다. 비가 조금만 내려도 진창이 된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 그 시간에는, 콧김만 조금 불어넣어도 뽀얀 흙먼지가 눈을 멀게 하며 콧잔등 위로 내려앉았다. 수박을 심으면 수박 맛이 좋아지고, 복분자를 심으면 복분자 맛이 일품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무와 고구마를 심으면 그 또한 달달한 맛이 든다고 하는 고창의 저 유명한 황토가 마치 웃통을 훌훌 벗어던진 장정처럼 싯누런 속살을 햇볕에 태우고 있었다.

인삼 밭 주인은 아마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보다. 잡초관리를 하나도 안 해서 인삼은 보이지 않고 잡초만 무성했다. 담배 밭에서는 담뱃잎 수확이 한창이었지만 한 달 이상 계속되는 가뭄과 땡볕에 시들시들 아무 ‘히마리’가 없이 늘어져 있었다. 비가림 하우스 안에서 지하수를 먹고 자란 수박은 넝쿨이 무성하고, 이른바 ‘다마살이’ 해서 따내 버린 수박 작은 것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우리가 마침내 양파 밭을 찾아냈을 때 밭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양파를 줍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양파를 줍는다기보다 마대 자루에 양파를 쓸어 담고 있는 모습이었다. 양파는 어디에나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우리는 그 많은 양파들이 버림 받은 것이라고는 차마 믿을 수 없었다.

“많으면 많이 주워서 언니들한테도 좀 보낼까?”

내 옆의 그녀는 뭔가 설레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즉각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투덜거렸다. 버려진 양파를 주워다가 누구에게 선물로 보낸다는 게 영 마땅찮아서였다. 버려진 양파가 아무리 많다 해도, 버림받은 것이라면 보나마나 하자가 있는 것일 텐데 그런 것을 어디로 보낸다 말인가 하는 뭐 그런 심사였다. 어쨌든 우리는 차를 밭두렁에 세워놓고 밭으로 들어갔다.

 

▲ 왜 버렸는지 알 수가 없는 양파들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밖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장면이어서 우리는 새롭게 놀랐다. 밖에서 볼 때는 그저 버림 받은 양파가 많구나 싶었을 뿐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대충 한 바퀴 둘러보는 순간 뭔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는 느낌이어서 말문이 막혔다.

“세상에, 이게 다 뭔 일이람?”넋이라도 나간 듯이 멍한 기분으로 중얼거리며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한 걸음만 움직이려 해도 발에 밟힐 정도로 많은 양파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짓밟혀서 으깨지고 속살이 드러난 채로 뒹구는 양파들 때문만도 아니었다. 도대체가 버려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이는, 멀쩡해도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양파들의 외양이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살다 살다 이런 꼴은 또 처음이었다. 시골 살림을 시작한 뒤로 버림받은 농산물을 참 많이도 주워다 먹었더랬다. 수박 철에는 수박을, 무 철에는 무를, 고구마 철에는 고구마를 주워다 먹었고, 심지어는 벼 베기가 끝난 들판에서 벼이삭을 주워다가 오리들 먹이로 삼기도 했었다.

수박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수박을 버리는 이유는 매우 간명했다. 크기가 중간 상인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못 미치면 버린다. 버려야만 한다. 무는 경우가 약간 달라서, 너무 작아도 버리고 너무 커도 버린다. 또한 생김새가 매끄럽지 못하고 울퉁불퉁 제멋대로인 경우에도 버린다. 고구마나 인삼 같은 작물은 밭주인이나 상인이 의도적으로 버리는 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실수로 버려진다.

어쨌든 모든 작물은 버려짐의 이유가 분명하게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앞에 펼쳐진 양파들은 뭔가. 너무 커서 버렸을 리는 없고, 너무 작아서 버렸다고 보기에는 큰 것이 너무 많다. 게다가 생김새도 단단하고 똘똘하다.

“이렇게 잘생긴 걸 왜 버렸지? 왜 버린 거야 도대체?”

 

▲ 자동차 바퀴에 으깨진 양파들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기들 나름의 어떤 기준에 못 미쳐서 버렸겠거니, 하면서도 그 기준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고, 답답하다 보니 한 가지 일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양파 줍는 재미에 취해서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맹세컨대 처음 들어갈 때는 먹을 만큼 주어서 돌아가자는 생각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견물생심이란 말이 그렇게도 실감날 수가 없다. 줍다 보니 더 줍고 싶고, 이것을 줍고 나면 저것도 줍고 싶어져서, 줍고, 줍고, 또 주워 담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양파를 줍고 있는데 갑자기 트럭 소리가 들린다.

아까 우리가 산길을 들어올 때 나갔던 그 트럭이다. 그 트럭이 양파 밭을 가로 질러 쓍쓍 들어가더니 아주머니 한 분이 양파를 줍고 있는 근처에서 멈춘다. 그 동안에 그 아주머니는 스무 개도 넘는 자루에 양파를 그득그득 채워놓고 있었다. 트럭 운전기사는 아주머니가 주워놓은 양파를 트럭에 싣는 게 아니라 자기도 새롭게 줍기 시작했다. 자루를 한 아름 안고 양파 밭 여기저기 도처에 하나씩 던져놓고, 날렵하게 뛰어다니면서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너무나도 순진하고, 어리석었다. 백 미터도 넘는 거리의 밭두렁에 차를 세워놓고, 밭으로 들어와서 버려진 양파를 한 알, 두 알 자루에 주워 담아서 그것을 다시 어깨에 메고 자동차 있는 곳까지 가야 하니, 트럭을 몰고 밭으로 들어온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한심도 그런 한심이 없을 것이다.

“이야 참, 진짜로 과감하다. 어떻게 저렇게도 멀쩡한 양파를 짓이기면서 들어갈 수 있지?”

우리는 다함께 혀를 내둘렀다. 트럭 바퀴에 치인 양파들의 짓이겨지는 소리가 귀에 그냥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건 그렇고, 저 사람들은 대체 뭐에 쓰려고 저렇게도 많은 양파를 쓸어 담고 있는 것일까. 아까 한 트럭 실어간 사람들이, 또 한 트럭을 채우고 있으니 문득 그 용도가 궁금해졌다. 가서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슬쩍 들기는 했지만 그만두고 상상이나 해보기로 했다.

 

▲ 양파는 더 이상 애달파 안 해요.

 

건강원 같은 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중화요리 전문 식당? 그것도 아니면 시장에 내놓고 싸게 팔려고?

그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니 문득 우스워졌다. 그 사람들이야 양파를 얼마나 주웠든 말든, 우리가 주워서 차에 실어놓은 것만도 벌써 여섯 자루나 되는 것이었다. 세상에, 겨우 두 시간여 동안 여섯 자루나 양파를 그냥 주웠으니, 우리가 지금 뭔 짓을 했는가 싶어져서 어리둥절한 것이었다.

그 많은 양파를 우리가 다 먹을 수는 당연히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주운 것을 누구에게 보내주랴 했지만, 줍고 나서 보니 상품 가치로도 손색이 하나도 없겠다 싶어져서, 여기저기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내 옆의 그녀는 언니들에게 전화를 해서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새로운 사태에 직면해야 했다.

“내가 양파를 억수로 많이 주워 왔는디, 좀 줄 거나?”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물었더니, 동생 왈 “얻어먹을 여유가 없어요”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구사하는 문장이야 쌔고도 쌨다지만, 얻어먹을 여유가 없다는 말은 글쎄 대체 무슨 뜻인지 영 해석이 안 된다. 한참을 눈이나 깜빡깜빡 하면서 멍청해 있다가 다시 물어보았다.

왕년에 함께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었던 이를테면 동지가 있는데 그 동지가 금년에 양파 농사를 많이 지었단다. 그런데 양파가 지천이라서 판로를 찾지 못해 울상이라는 것, 그래서 그 양파를 조금이라도 팔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짜로 주워온 양파를 얻어먹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내가 버려진 양파를 주워 왔으니, 어쨌든 나는 양파를 안 사 먹어도 된다. 그리고 그만큼 시장에서의 양파 판매는 감소한다. 나는 약간의 수고로움만으로 양파를 손에 넣었지만, 양파 농사에 생계를 걸었던 사람은 엄청난 수고를 들이고도 손해를 봐야 하니, 이 손익계산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이다.

 

▲ 우리들의 양파 줍는 자세

 

말문이 막혀서 일단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머릿속에 콩 볶는 소리가 난다. 어지럽다. 어지러운 상태로 몇 시간을 보낸 뒤에서야 겨우 하나의 답을, 변명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그 많은 양파를 하나도 줍지 않고 밭에서 그냥 썩어가게 둔다면, 그것은 또 사람이 할 일인가?

그 정도로 대충 마무리 하고자 했지만, 역시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머릿속은 계속 시끄러웠다. 아, 고민이 깊어져 가는구나, 하는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

그리고 이틀 뒤에, 양파 밭주인 김기수씨를 만나서 소감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날은 마침 김기수씨가 보리타작을 하는 날이었다. 어린 시절 보리타작 때문에 몸서리를 쳤던 기억이 남아 있는 나로서는 현대의 보리타작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이고, 농사가 다 그렇지요 뭐.”

간단하다. 자기는 벌써 다 잊었단다. 양파를 생각하고 있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단다. 보리타작도 해야 하고, 밀도 거둬들여야 하고, 그 일이 끝나면 콩을 심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빠개질 지경이어서, 양파 농사의 손익계산 따위는 해볼 여유도 없단다.

“그래도 나는, 아주 망한 것은 아니에요. 저 아래 무안 사람들은 죄다 갈아 뭉갰는데요 뭘.”

표정은 우울하고 슬프지만, 목소리는 차분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그는 한 마디 덧붙였다.

“지나간 손해를 돌아보면 농사 일 못 해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그러니까 어제의 슬픔 따위는 어서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는 저 유명한 문장 한 줄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있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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