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한문에서
다시 대한문에서
  • 장영식
  • 승인 2018.07.0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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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 2013년 7월의 대한문 모습. ⓒ장영식

 

딱 5년 전입니다. 2013년 7월의 대한문 모습입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잇단 자결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하였고, 분노하게 하였습니다. 대한문 앞에 설치하려던 분향소는 경찰 병력 앞에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이 슬프고도 초라한 분향소에 누군가가 매일 빵을 두고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배고픈 것이 어떤 것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사자들이 배고파 울면서 구천을 떠돌지 말라고 따뜻한 빵을 갖다 놓은 것입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철탑에 올라 농성도 했고, 단식도 하고, 인도 원정까지 했습니다. 대한문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도 했습니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 눈물젖은 소로보 빵은 벼랑 끝으로 밀려난 노동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었다. ⓒ장영식

 

또 한 사람의 해고자가 자결했습니다. 서른 번째 희생자입니다. 그를 보내는 해고 노동자들의 눈에는 눈물보다 더 슬픈 분노가 맺혔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다시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렸습니다. 그러나 태극기행동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대한문은 태극기 집회의 성지”라며 철거를 요구하고 나서 밤새 대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폭력으로 부상자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인 것입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10년은 절망의 10년이었습니다. 이들은 범죄자가 되었고, 폭력집단으로 낙인 찍혔습니다. 부당한 정리해고와 사법살인이 부른 서른 번째 희생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정리해고를 겪으며 내가 사는 세상을 봤다. 2009년 8월 5일의 옥상을 조용히 감당하며 살았다. 북받치면 뛰쳐나가 소리 질렀다. 이렇게 살아 뭐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진압, 구속 뒤 10년 동안 실제 세계에 눈을 떴다. 시간이 갈수록 이 세상이 점점 빠듯해질 것을 안다. 내 아이들이 불쌍하다.”

 

▲ 2015년 1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대한문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 행진을 하였으나,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경찰병력에 막혀 밤을 새워야 했다. 쌍용자동차 해고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 서른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이 슬픈 노동의 희생은 '사람이 먼저'인 문재인 정부에서 끝내야 한다. ⓒ장영식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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