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은 무너지지 않는다
중산층은 무너지지 않는다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8.07.23 11:5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마르크스가 규정한 중산층이란 대체로 일반적인 소시민, 즉 프티 부르주아를 의미한다. 중소 상공업자나 자영농민, 또는 전문적인 소규모 생산을 담당하는 장인 등을 중산층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했다. 고전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현대의 중산층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현대에 와서 중산층은 우선 소득으로 규정한다. ‘중간 정도의 소득을 얻는 자’들에 대한 통칭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산층을 ‘소득의 중간값의 50~150%의 소득계층’이라고 판단한다. 즉 그 사회의 전체 평균 소득을 놓고 봤을 때 중간이 되는 소득의 50% 미만을 빈곤층, 50~150% 사이를 중산층, 그리고 150%가 넘는 사람들을 고소득층으로 분류하는 게 일반적이다.

 

▲ 스웨덴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중산층이 살기 가장 좋은 나라이고, 스웨덴 정부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중산층을 만들기 위한 사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체로 경제적 측면에서는 OECD의 기준을 준용한다. 그러나 얼마 전 한국의 직장인들에게 물은 중산층의 개념은 이 같은 경제적 수치에 더해지는 게 있다. 부채 없는 30평 아파트 소유, 월급 500만 원 이상, 2000cc 자동차 소유, 예금 잔고 1억 원 이상, 연 1회 이상의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중산층이라고 인식한다.

나라마다 조금 씩 중산층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 2016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은 ‘페어플레이를 하고, 자신의 주장과 신념이 있으며, 독선적이지 않고,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겐 맞서며, 불의 불법 불평등에 의연하게 대처할 줄 아는’ 사람을 중산층이라고 표현했다. 다분히 추상적이다. 하지만 이미 중산층이 단지 경제적 개념이 아님을 보여준다.

프랑스는 더 재밌다. ‘최소한 외국어 하나 구사, 스포츠 한 종목을 하고 악기 하나는 다루어야 하며, 일주일에 한 번 가족 외식은 해야 하지만 자기만의 음식 솜씨를 하나는 가지고 있는 것’을 중산층의 조건이라고 했다. 퐁피두 전 대통령의 중산층 규정이다.

중산층의 개념이 워낙 다양하고 주관적이니, 일단은 가장 편하게 OECD의 수익 측면의 중산층 개념으로 국한하자면, 한국의 중산층은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L)은 2008년 58%였던 중산층이 2009년 56.4%로 줄었고, 최근에는 50%에 턱걸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 여가 - 스웨덴의 중산층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쉬면서 자기 삶에 대한 충분한 만족을 최대의 가치로 삼고 산다.

 

반면 극빈층이 점점 더 늘어가고, 고소득층도 늘고 있다. 고소득층이 늘어난다는 것은 나쁘게 볼 수만은 없는 일이지만, 대신 극빈층과 함께 늘어난다는 건 결국 중산층의 몰락을 통한 사회의 양극화가 더 심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스웨덴은 ‘시민의 대부분이 중산층’이라고 평가된다. 2016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스웨덴의 중산층 비율은 86%에 이른다. OECD 기준 고소득층이 11%를 조금 밑돌고, 빈곤층이 3%를 조금 넘는단다. 그나마 빈곤층의 대부분은 2014년 이후 밀려든 난민 중 정부의 보호나 지원 밖에 있는 사람, 그리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경제활동을 포기한 자발적 빈곤층이라고 한다. 그러니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 대부분이 중산층이라는 말이 설득력 있다.

세계에서 중산층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건, 부자를 꿈꾸지 않는 스웨덴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식, 가난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정부의 정책, 중산층이 가장 살기 좋은 경제 구조, 이 3박자가 만들어낸 당위의 결과다.

이 지면을 통해 언급한 바 있지만, 스웨덴 사람들의 사고방식 기저에 깔린 것은 ‘잘난 척 하지 말라’는 ‘안테(Jante)의 법칙’과 ‘적당히, 알맞게’의 ‘라곰(Lagom)’이다. ‘부’는 결국 단순한 자기만족을 넘어선 과시욕이다. 그런데 스웨덴 사람들은 설령 ‘진짜 부자’라고 하더라도 ‘과시’가 없다. 스톡홀름에서 가장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지역인 외스테르말름이나 리딩외 등에 사는 사람 중 겉모습에서, 또는 보이는 집의 모양에서부터 부자는 흔치 않다.

또 역설적으로 스웨덴의 높은 조세부담률은 여가를 포기하고라도 부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키워주지 않는다. 초과 근무로 돈을 더 버는 것보다 수입을 조금 줄이더라도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고, 자기를 위한 시간에 투자하는 것을 더 소중히 생각한다. “돈을 더 벌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스웨덴 사람들은 “내 시간 더 내서 돈을 많이 벌어봐야 세금만 더 내는데?”라고 대답한다.

정부는 절대 가난한 사람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난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난민에게는 분명 정부 예산이 들어간다. 시민들의 세금이다. 스웨덴 정부는 결코 난민들이 시민들의 세금을 낭비하게 하지 않는다. 초기에는 정착 자금이나 주거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무료로 스웨덴어를 배우게 하고, 직업 교육을 철저히 시켜서 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하게 유도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스웨덴 시민들과 똑같은 세금을 걷는다. 인구 1000만 명, 노동력이 절대 부족한 스웨덴에서는 효과적인 ‘사람 투자’로 여기는 여론이 많다.

 

▲ 외스테르말름 - 스톡홀름 최고 부촌이라고 하는 외스테르말름에서 만난 이 평범한 아빠와 딸. 이들이 진짜 부자인지 아닌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회사가 부도가 나고, 정리 해고가 들이닥쳐서 대규모 실업자가 양산돼도 스웨덴 사람들이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다. 실제 그런 일들은 드물지 않게 벌어지지만, 그것 때문에 스웨덴 사람들의 가족이 고통 받고, 사회가 해체되는 일은 없다. ‘복지’가 그들을 가난으로 밀어 넣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세금을 내고 있지만, 결국 그 세금이 그들을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게 잡아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스웨덴 사회의 경제 구조는 중산층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이다. 고소득층은 보다 고율의 세금을 내야하고, 빈곤층은 삶 자체가 정상적이지 못하다. 그러니 스웨덴 사람들은 빈곤층을 만들지 않는 정부의 경제 정책을 통해 안정적으로 중산층에 머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 상황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서, 몇 번의 경제 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 정책의 큰 틀을 무너뜨리지 않고도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중산층은 그 사회를 지탱하는 허리다. 허리가 튼튼하다는 것은 그 사회가 어지간한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웨덴이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중산층의 몰락을 막아야 한다는 것, 빈곤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결국 늘어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소수일 수밖에 없는 고소득층의 자발적, 또는 강제적 희생을 끌어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문재인 정부는 덜 노력하고 있거나, 더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1930년대 스웨덴의 정치인들보다 덜, 또는 더.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Moon 2018-08-03 01:42:51
한국개발연구원은 KDI 입니다.
그리고 이코노미스트 기사 원문 알려주세요. 제가 찾은 OECD 자료에 따르면 상대적 소득 빈곤이 스웨덴은 9%, 한국은 13.8% 이고, 소득 불평등이 스웨덴도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당 수치가 계산되었는지 너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