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바람도 뜨거운 이 여름날에

옆 동네 농부 한 분이 고추 밭에서 고추 따기 작업 중에 쓰러져 고창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얘기가 들리더니, 다음 날은 더 큰 병원을 찾아 전주로 갔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컴퓨터를 켰다가 노회찬 의원의 투신 관련 기사가 떠있는 것을 발견했다.

투신? 투신이라니. 이게 뭐냐. 이게, 이게, 이게, 오 맙소사. 앞이 안 보인다. 눈물을 찍어내도 그것은 자꾸 뜨겁게 쏟아져 나온다. 내 몸이 바야흐로 뜨거운 열수탕이라도 돼버린 것 같다. 더 이상은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구름이 그립다. 구름을 본 지가 열흘도 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라는 문장이 예전에는 과장되게 느껴지고, 때로는 지나치게 상투적이라는 느낌도 있었지만 요즘은 아니다. 그렇게도 명실이 상부하고, 그렇게도 실감나게 느껴질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중얼거린다.

“이야, 진짜로 구름 한 점이 없구나. 이렇게도 하늘이 완전한 하늘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거, 이거야말로 이변이요 재앙이 아닐까? 무릇 세상이란 이것과 저것이 섞여졌을 때 매혹적인 무엇인가가 탄생하는 것이거늘, 이렇게도 하늘이 하늘로만 존재한다면 저기서 무슨 매혹이 나오겠는가 말이다.”

하늘이 하늘로만 존재하는 세상이 되고 보니, 비를 바라는 마음은 이제 사치가 되었다. 시원한 소나기 한 줄기는 상상만으로도 시원해서 내 몸이 물고기처럼 펄떡펄떡 뛰어댈 것 같지만, 그런 호화판 살이는 담장도 높고 집도 크고 정원도 널따란 도시의 부잣집에서나 가능할 것만 같고, 이글이글한 햇볕에 땅은 타 들어가고 나무들은 늘어지는 이런 시골에서는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비가 없으니 바람도 없는 것인가, 아니면 바람이 없어서 비가 없는 것인가. 바람은 그래도 비와는 달라서 가끔 불어오기는 한다. 그런데 바람도 바람 같지가 않다. 바람 중에 으뜸은 산들바람이라 했지만 요즘은 그것도 옛말이다. 요즘의 산들바람은 알 수도 없는 저기 어디 멀리 불난 집에서 불구경이나 실컷 하다가 열기를 담뿍 묻혀온 것만 같으니, 이건 뭐 바람이 아니라 무더위를 부채질하는 온풍기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구름도 없고, 비도 없고, 바람도 바람 같지 않으니 아침 안개만 홀로 살판이 났다. 밤새 어디서 무엇이 그렇게도 많은 안개를 만들어내는지, 아침마다 자욱한 안개가 마당 가득 넘실거린다.

마치 바닷물이 육지로 올라와서 길을 못 찾고 헤매는 것만 같은 이런 자욱한 안개나마 자욱한 그대로 하루를 마감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지만, 태양은 인간의 소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태양은 그저, 시간이 되면 안개를 쓱쓱 걷어내며 그 찬란한, 그 뜨거운 얼굴을 내놓고 태양 자신의 막강한 힘을 과시할 뿐이다.

태양은 무적의 제왕이다. 적이 없다는 것은 충분히 쓸쓸하고, 무료한 일이기도 하지만, 태양은 태양인 까닭으로 무료함과 쓸쓸함을 모른다. 어쩌면 알았는데 초월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무료함도 모르고 쓸쓸함도 모르는 태양은 한 그루의 나무를 살려 놓기도 하고, 죽여 놓기도 한다.

나는 태양이 살려 놓은 한 그루의 나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고, 생각에 잠겨 있다 보면 금방 한 편의 서정시라도 쓸 것만 같아진다. 오늘은 안 됐지만 내일은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내일 다시 가서 보면, 나무는 그새 죽어 있다.

“아유 이런!”

내 입이 짜증 가득한 소리를 낸다. 다른 그 누구의 살도 아니고, 내 살이 내 살에 닿았을 뿐인데도 나는 그렇게 비명을 지른다. 내가 지른 비명 소리를 내가 듣고 난 직후에는 내가 이렇게도 허약한 동물이구나 싶어 살짝 부끄럽기도 하지만, 반성의 시간은 짧다.

 

 

땀이 삐질삐질 솟아나는 목덜미와 가슴팍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는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겨드랑이가 더 큰 문제라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이놈의 겨드랑이, 너는 어째 그렇게도 딱 붙어서 더위를 가중시키고만 있느냐. 그러고 보니 사타구니도 있다. 없었으면 좋겠다 싶은 부위가 내 몸에는 너무 많다. 그런데 이 모든 부위들을 하나씩 둘씩 떼어내고 나면,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자신의 신체 부위를 귀찮아하기는 고양이도 별 다름이 없어 보인다. 앞다리 뒷다리 구별이 없이 공통으로 높이 쳐들고 나자빠져 있는 고양이의 자세가 꼭 나와 같다. 사람 기척만 나면 달려와서 만져달라고 머리를 들이밀며 칭얼대던 고양이는 어디로 가버렸는가.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퍼질러 누워서 꼼짝을 안 하는 고양이 녀석을 보고 있노라니 내 안의 뭉클한 뭔가가 꿈틀거린다. 멀리 뒤안 쪽 대숲에서 쥐의 흔적을 찾아 열심을 팔다가도 방문 여는 소리만 들리면 부리나케 달려오며 잉, 잉, 소리를 내던 녀석이, 내가 바로 옆에서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가는데도 꼼짝을 안 하고 있으니, 동병상련이랄까, 동지의식이랄까, 하여튼 어떻게든 아는 체를 해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한 번 슬쩍 건드려 보았지만, 녀석은 나 죽었거든, 하는 듯이 꼼짝도 안 한다. 요 녀석 좀 봐라, 하고 손가락 하나로 귀를 두 번 톡톡, 노크라도 하듯이 건드리니 그제야 반응을 보이긴 하는데 그 양상이 맹랑하다. 파리라도 쫓아내듯이 귀를 쫑긋 세워서 푸륵, 그렇게 한 번 떨어보고는 그대로 끝, 해버린다.

 

▲ 응 너냐, 저리 가라.

 

세상에, 내가 저한테 관심을 보였거늘, 이렇게도 무관심하게 눈도 한 번 안 떠보고 그냥 밀어내 버린단 말인가. 이렇게 되면 나도 그냥 물러설 수는 없어서, 손가락 세 개를 세워서 목덜미를 살살 간질이니, 마침내 녀석의 눈꺼풀이 벌어진다. 이제 됐다. 내가 이겼지? 내심 그런 생각을 하는 참인데 녀석의 벌어지던 눈꺼풀이 도로 닫힌다. 이른바 실눈을 하고, 자기를 건드리는 자가 누구인지 확인이나 겨우 하고는 뭐 이놈이네, 하고는 그냥 자던 잠을 계속 자버리고 있는 것이니, 나로서도 더 이상은 어찌해 볼 바가 없다.

“바다 가요, 바다.”

내 옆의 그녀는 바다를 그리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내 생각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금년에는 바다가 좋아진 것인지, 사나흘에 한 번은 바다 얘기를 한다.

여름날의 바다에 뭐가 있나? 모래와 바닷물과 사람 그리고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무섭다. 가면 시원할 것 같지만 뭐 그리 시원하지도 않다는 걸 내가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한 번은 가 봐야지 않겠는가 싶어 가 보기로 했다.

바다를 가자고 마당으로 나오는데 뭔가 시커먼 것이 느껴진다. 그래, 느낌이 먼저였다. 눈으로 확인한 것은 나중이었다. 열흘도 넘게 구름 한 점 없었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생겼으니, 눈으로 보기도 전에 몸이 먼저 느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 집 마당 위쪽 하늘은 햇볕이 아직 쨍쨍한 날이기도 했다.

아무튼 고창 읍내 쪽 하늘에 시커먼 구름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바람도 제법 불고 있었고, 바람 속의 선선한 수분도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건 소나기구름이다. 가슴이 설레었다. 없던 희망이 갑자기 생겨난 듯도 했다.

 

▲ 고양이는 이렇게도 한다.

 

바다를 가자고 마당으로 나섰던 우리는 비설거지를 시작했다. 여기저기 열린 문도 죄다 닫고, 말린 고사리에 곰팡이가 피지 말라고 내놓았던 것들도 죄다 걷어 들이고, 아직 마르지 않은 빨래도 당연히 걷어서 방에 널고, 그리고 하늘을 보니 시커먼 구름은 부안 쪽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고창에서 한 줄기 소나기를 뿌리고, 아니 어쩌면 뿌리면서 이동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해리면 우리 집까지 오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였다.

“더도 덜도 말고 십 밀리만 쏟아졌으면 좋겠다.”

날마다 마당의 화초에 물주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렇게 부푼 가슴을 안고, 우리는 바다로 갔다. 가다 보니 뭔가가 이상했다. 집에서 나올 때는 바싹 말라 있던 도로가 축축해져 있었다. 조금 더 가니 도로 가에 물도 제법 고여 있다.

“어? 여긴 어느새 소나기가 지나갔었나 보네?”

설마하니 누군가가 물을 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을 뿌린다 해도 그 많은 도로를 적셔놓을 수는 없다. 게다가 물이 고이기까지 했다. 조금 더 가니 자동차 바퀴가 분수를 뿜어낼 정도로 많은 물이 도로에 아직 고여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집을 나선 직후에 소나기가 쏟아졌던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 집 화초도 이제 물을 흠뻑 머금었겠지?

 

▲ 사람인 나도 이렇게 눕는다.

 

우리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미심쩍어서, 하늘을 보고 또 보았다. 시커먼 구름은 선운산을 넘어서 심원면 근처 어디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도로 위쪽 하늘은 손수건만한 구름 한 조각도 없이 그저 맑기만 했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우리가 바다에 도착할 무렵쯤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점차 숫자가 많아지고, 우리가 차에서 내릴 무렵에는 바야흐로 소나기가 돼 있었다.

“와, 엄청나다 엄청나. 이 정도면 우리 집 마당에도 쏟아졌겠지?”

그야말로 소나기였다. 우박 같은 소나기가 바닷물 위로 마구 내리 꽂히고 있었다. 하늘에 구름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굉장한 소나기가 있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이 정도의 강력한 소나기라면, 우리가 비록 비설거지는 하고 나왔다 해도 뭔가 빈틈이 있어서 다 젖어버렸을 것만 같았다.

소심한 우리는 바다고 뭐고 뒤로 미루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면서도 뭔가 미심쩍어 고개를 갸웃갸웃 해 보기는 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도 완벽하게 바닷가 쪽으로만 소나기가 쏟아질 수 있단 말인가.

그랬다. 집으로 가는 길은, 바닷가 쪽으로만 도로가 흠뻑 물에 잠겨 있었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도로가에 고인 물은 적어지고, 우리 집이 이제 2킬로미터도 채 안 남은 지점부터는 계란이라도 구워 먹을 듯이 화끈화끈 달아오른 아스팔트가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집에 들어왔을 때는, 우리가 그렇게도 서둘러서 비설거지를 해놓았던 것들이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어서, 우리는 그저 피식피식 허탈한 웃음이나 지을 수밖에 없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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