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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천국에 ‘성소수자’가 없다?

<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이석원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8.0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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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성소수자의 천국이다.

세계적으로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날로 향상돼 가는 추세이면서도 그에 반하는 반동도 적지 않게 몰아치고 있다. 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유교 문화권인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성소수자 인권 향상의 반대급부가 심하다.

하지만 이는 유교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동아시아만의 현상은 아니다. 유럽 사회나 중남미와 같이 기독교의 가치가 사람들의 정서를 지배하는 사회에서도 이들 성소수자들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는 많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사회적 분위기가 개방된 곳에서도 성소수자를 향한 테러도 일어나기도 한다.

 

▲ 스톡홀름 중심가인 바사가탄에 들어선 ‘유로프라이드 2018 스톡홀름’ 퍼레이드 참가자들.

 

그렇지만 스웨덴은 서구 사회 그 어떤 곳보다 성소수자들에 대해 관대하다. 사실 스웨덴에서는 관대하다는 표현도 모욕으로 느낀다. 스웨덴은 그야말로 성소수자들이 전통의 성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사는 사회다.

지난 4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로프라이드 2018 스톡홀름(EuroPride 2018 Stockholm)’ 퍼레이드는 스웨덴이 성소수자들에게 어떤 사회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유로프라이드 2018 스톡홀름’은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일주일 간 다양한 문화 행사와 토론회, 학술 세미나 등으로 꾸며졌다. 대부분의 행사에 스톡홀름 시민들은 물론 관심이 있는 유럽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했다. 매년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유로프라이드’를 통해 전 세계 성소수자 단체와 학계는 늘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정점을 찍은 것이 4일 ‘유로프라이드 2018 스톡홀름’ 퍼레이드다.

이날 오후 1시 스톡홀름 시청 광장에 모인 행진 참가자는 200여 개 단체에서 무려 6만 명에 이른다. 스웨덴 인구가 1000만 명이고, 스톡홀름 인구가 75만 명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스톡홀름 시민 10% 가까이 행진에 참가한 것이다. 서울의 촛불 혁명 때 광화문에 운집한 인원과 비교해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스웨덴 최대 일간지인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Svenska Dagbladet)는 “이날 행진을 지켜보고 함께 환호한 군중은 무려 50만 명에 이른다”며 “첫 단체가 종착지에 도착할 때까지 마지막 단체는 출발하지도 못했다”고 보도했다. 행진이 시작된 스톡홀름 시청 광장에서부터 종착지인 외스테르말름 IP까지 4.3km 구간에는 빈틈없이 군중으로 꽉 찼다. 스톡홀름 시민 뿐 아니라 연중 최대 여행 시즌을 맞아 스톡홀름을 찾은 국내외 여행자들도 적지 않았다.

 

▲ ‘유로프라이드 2018 스톡홀름’은 6만 명 이상의 퍼레이드 참가자와 5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군중들이 한데 어우러진 한바탕 축제의 장이었다.

 

이날 퍼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은 다양하고 다채로운 자기표현 방식으로 LGBT의 정당성을 드러냈다. 그중에는 각 기초자치단체인 코뮌을 비롯해, 의사 단체, 교사 단체, 변호사 단체에 국회의원과 스톡홀름 시의회 의원도 있었다. 또 거리에 빈틈없이 도열한 사람들은 행진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들의 주장과 의지에 대부분 동의했다.

그래서 “스웨덴에는 ‘성소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즉, LGBT는 결코 소수가 아니라는 의미다. 75만 스톡홀름 시민 중 6만이 퍼레이드에 참가했고, 물론 여행자도 포함됐지만 50만이 지지하고 환호했다면 LGBT가 소수자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스웨덴의 LGBT의 인권 운동사는 결코 짧지 않다. 이날 ‘유로프라이드 2018 스톡홀름’을 주최한 스웨덴 성평등협회(RFSL. Riksförbundet för homosexuellas, bisexuellas, transpersoners och queeras rättigheter, formerly Riksförbundet för sexuellt likaberättigande)의 역사는 6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LGBT 인권단체다. RFSL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공식 NGO다

스웨덴은 동성 결혼이 합법이다. RFSL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정부는 1994년부터 동성애자들에게 일반 시민과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했다. 그리고 2009년부터 스웨덴 정부는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현재 동성 결혼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나라는 25개뿐이다.

 

▲ 이번 퍼레이드 행사에는 LGBT 단체 뿐 아니라 의사와 변호사, 교사 단체는 물론 스웨덴 루터교의 성직자들도 참석했다.

 

스웨덴이 다른 나라들과 다른 건, 다소 보수적일 수 있는 교회가 정부보다 먼저 동성 결혼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루터교인 스웨덴 교회(Svenska ktrkan)은 2007년 동성 결혼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게다가 2009년 5월 정부의 동성 결혼 합법화 이후 10월부터는 스웨덴 교회에서의 동성 결혼식 거행도 허락됐다. 스웨덴 교회는 매년 LGBT 축제인 프라이드에 참가한다. 청년들이 주축이기는 하지만, 이번 유로프라이드 2018 스톡홀름에는 목사와 주교도 참가했다.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지만, 스웨덴에는 이른바 ‘성 중립 화장실’이 대세다. 남녀 구분이 없을 뿐 아니라 화장실에 남녀 표시가 중립 성 표시와 함께 한다. 또 얼마 전 스톡홀름 외곽의 순드비베리라는 지역의 공공 수영장에는 중립 성 소유자 전용의 탈의실이 생겼다. 이는 스웨덴 전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또 스웨덴어 3인칭 주격 인칭대명사는 남성을 뜻하는 'Han‘과 여성을 뜻하는 ’Hon‘ 외에도 중립성을 뜻하는 ’Hen‘이 있다. 이는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스웨덴어 사전에 명시된 단어다. 일반적으로 중립 성, 또는 제3의 성이 생활과 법률 뿐 아니라 언어에도 완벽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유로프라이드 2019 스톡홀름’ 행진 열기로 가득 찬 스톡홀름 중앙역 앞 고가도로에서 만난 페르 알베르트손과 미나 알베르트손 부부는 ‘모든 인류 구성원의 천부의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및 평화의 기초’라는 세계인권선언문 첫 문장을 인용하며 “LGBT를 생물학적이고 법적으로 ‘인간’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그냥 우리와 똑같다”며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을 어떻게 인간이 부정할 수 있나?”며 행진하는 그들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러니 스웨덴에는 ‘성소수자’가 없다. 남성과 여성과 중립성, 이성을 사랑하는 사람과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다수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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