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 다시 보기> ‘킹스 스피치’(2011년 개봉)

▲ 영화 <킹스 스피치> 포스터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특유의 절제되고 세련된 영국식 액센트. 큰 키에 어울리는 깔끔한 정장차림으로 화려한 액션을 보여줬던 콜린 퍼스. 중년미를 물씬 풍기며 여심을 자극했다. 그는 깔끔한 영국 신사를 떠오르게 한다. 항상 부드럽고 완벽한 이미지였던 그가 영화 <싱글맨(2010년 개봉)>에선 동성애자 역을, 이번에 소개할 영화 <킹스 스피치(2011년 개봉)>에선 병약하고 소심한 말더듬이 왕자 조지 6세 역을 맡았다. 그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난 이상한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내 안에 뭔가 괴짜 기질을 숨기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계산 따위는 없다. 그냥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는 건 재미없지 않나?”라고 하기도 했다. <킹스 스피치>가 기대됐던 이유다.

영화는 세기의 스캔들을 일으키며 왕위를 포기한 형 때문에 본의 아니게 왕위에 오른 조지 6세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그는 형인 에드워드 8세가 사랑 때문에 1년 만에 왕위를 버리자 형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다.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과 어릴 적부터 비교대상이었던 완벽한 형 밑에서 정신적 긴장감이 컸던 탓에 유년기부터 유약하고 소심했다. 특히 말을 더듬는 언어 장애가 심했다. 연설에 대한 공포가 있었으며 즉위 후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배우자 엘리자베스 보우스 라이언의 내조와 훌륭한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의 효과적 치료 덕에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반발 직전 영국민을 단결시키는 감동적 연설을 하는데 성공했다.

전형적 고진감래(苦盡甘來) 스토리다. 딱히 재밌을 만한 시나리오를 어거지로 끼워넣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2011년 아카데미 12개 후보에 선정되는 등 최고의 화제를 모았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로는 캐스팅이다. 조지 6세 역에 콜린 퍼스, 라이오넬 로그 역에 제프리 러쉬, 퀸 엘리자베스 역에 헬레나 본햄 카터, 에드워드 8세 역에 가이 피어스, 머틀 로귀 역에 제니퍼 엘, 조지 5세 역에 마이클 갬본, 아치비숍 코스모 랭 역에 데릭 제이코비 등. 화려한 대배우들의 등장이 이목을 끌었다. 이미 연기력은 입증된, 믿고 볼 수 있는 라인업이었다.

두 번째는 이름 값 톡톡히 하는 그들의 연기력. 가장 큰 포인트다. 뻔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게 했다. 완벽한 영국 남자의 이미지는 온데 간데 없고 말 더듬는 찌질한 왕이 된 콜린 퍼스. 그는 이제껏 보여주지 않았던 연기를 시험대에 올렸다. 생전 조지 6세의 연설 테이프를 참고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연설 테이프도 조지 6세의 연설이 어느 정도 유창해진 이후의 기록이었다. 왕이라는 직위 특성상, 직접 그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일 터. 그는 “역할이 운전사였다면 직접 운전하는 사람을 찾아나서지 않았겠나. 그런데 이 역할은 그런 접근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고 했다. 그는 결국 장애에 초점을 두고 조지 6세에 접근했다. ‘영국 말더듬이 협회’를 통해 언어장애의 원인부터 분석해나갔다.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카메라가 꺼져도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돼버렸다. 말을 더듬는 데 너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다 보니 처음엔 유창하게 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감독이 완곡하게 말렸고, 급기야 말더듬증 증상이 마치 내 원래 모습처럼 돼버린 거다.”

 

▲ 영화 <킹스 스피치> 스틸컷

 

라이오넬 로그 역의 제프리 러쉬는 괴짜 같지만 삶의 철학이 있는 스승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 이면에 아주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 어설픈 모습에도 불구하고 치료에 대한 자신감으로 언제든 조지 6세가 마음을 열 수 있게 도와주는 스승의 모습을 세세하게 연기했다.

세 번째는 톰 후퍼 감독이다. 그는 드라마 <엘리자베스1세>, <존 아담스> 등으로 사랑 받았지만 이후 <킹스 스피치>에 이어 <레미제라블(2012년 개봉)>, <대니쉬 걸(2016년 개봉)> 등 영화로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여러 가지 매력 포인트들이 합해져 지루할 법한 스토리를 아주 매력적으로 탈바꿈 시켜 놓았다. 118분이란 결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간다. 콜린 퍼스란 배우를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렇게 귀를 기울이게 된 건 처음이었다. 흡인력이 상당한 마성의 배우다. 그래서 그를 ‘아카데미가 사랑하는 배우’라고 칭하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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