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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그들을, 그들은 한국을 기억한다

24일 스톡홀름서 스웨덴 야전병원 부산 도착 기념행사 이석원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09.2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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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스웨덴 한국 대사관 이정규 대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주스웨덴 한국대사관)


한국전쟁 속 인술 펼친 스웨덴의 남녀 베테랑들 참석

구순을 바라보는, 아니 이미 구순을 훌쩍 넘긴 노년의 신사와 숙녀들이 강당으로 모여든다. 휠체어를 탄 이도 있고, 지팡이나 보행기에 의지해 겨우 몸을 움직이는 이들도 있다. 몸도 마음도 힘겨워 보이는 이들이지만, 어쩐 지 두 눈에는 깊은 회한이 서려있기도 했고, 알 수 없는 기대감 같은 것도 슬쩍 비친다.

대부분 혼자 힘으로는 걷는 것도 편치 않아 보이는 이들은 스웨덴에서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한국과의 인연이 오래됐다. 1950년, 기억조차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긴 시간의 끝에 이 노년의 신사와 숙녀들은 대한민국에 있었다. 68년 전 9월 23일 전쟁의 포화로 한반도가 짙은 연기 속일 때 이들이 부산에 발을 디딘 것이다.

68주년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 부산 도착기념 행사가 지난 24일 스톡홀름 중심에 있는 시티 컨퍼런스 센터에서 열렸다. 이 날은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한 스웨덴의 의료부대가 부산항에 입항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 이날 행사를 실무 주관했던 무관부 김기호 무관이 스웨덴 베테랑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주스웨덴 한국대사관)

 

주스웨덴 한국 대사관(대사 이정규)은 당시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스웨덴의 참전 용사들(Veteran. 이하 베테랑)을 초청해 기념행사를 연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사람을 살려내는 일을 위해 8000km가 넘는 바닷길을 내달려온 그날의 그 ‘베테랑’들을 대한민국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사는 양국의 국가 연주와 먼저 세상을 떠난 베테랑들을 위한 묵념으로 시작했다. 이정규 대사는 인사말에서 “주스웨덴 한국 대사로 임명되기 전에 국방정책 실무회의를 위해 스톡홀름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스웨덴 베테랑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면서 “이들의 정성어린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은 경제적 번영과 민주주의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침 오늘은 한국에서는 추석이라는 큰 명절이고, 이 명절에 한국 사람들은 어른들께 큰절을 한다”며 “베테랑들께 깊은 감사를 큰절로 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 스웨덴 의료지원단의 부산 입항과 대민 활동 등을 기록한 다큐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사진 제공 = 주스웨덴 한국대사관)

 

이날 행사의 실무책임자인 무관부 김기호 국방무관은 “한-스 베테랑 협회가 더욱 더 활성화 돼 베테랑뿐 아니라 그 분들의 2세, 3세들이 이 협회를 계속 이끌어 주길 부탁한다”며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베테랑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날 행사에는 그날의 기억을 소환하는 뜻 깊은 순서도 있었다. 스웨덴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인 피에테르 노드스트룀 씨가 제작한 기록 영화의 편집본을 상영했다. 스웨덴 의료지원부태가 부산항에 입항한 모습부터 야전병원을 운영하던 모습, 부산의 피난민을 위한 대민 봉사를 하는 모습 등이 생생히 보여졌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이날 참석한 베테랑들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기도 했고, 어떤 여성 베테랑은 눈물을 그렁거리기도 했다. 또 부모와 조부모의 당시 모습을 본 베테랑들의 자녀들도 깊은 감동을 받은 표정이 역력했다.

 

▲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 한 베테랑들과 그의 가족들이 행사 중간에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기념식 후 만찬에서는 한국과 관련한 이야기꽃이 피었다. 한 베테랑은 “최근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봤다”며 “70여 년 전에는 그렇게 참혹하게 전쟁을 했던 당사자들이 이제는 통일을 위해,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에 감동받고 있다”고 얘기했다.

이날 참석자 중 당시 스웨덴 야전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비비 블롬베리 씨의 자녀인 피아 블롬베리 씨는 “한국의 국가보훈처에서 운영하는 ‘UN 참전용사 재방문 초청’을 통해 한국을 방문했었다”며 어머니를 통한 한국과의 인연을 밝혔다. 그는 국가보훈처로부터 어머니를 대신해 ‘평화의 사도 메달’을 수여 받기도 했다.

베테랑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한껏 흐뭇해진 이정규 대사는 “우리가 힘들고 어려웠을 때 이 분들은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한 인도주의적 마음으로 우리 땅을 찾아왔다”며 “다친 사람들 치료해주고. 한국 최초의 현대적 병원 설립에까지 도움을 준 참전 용사 한 사람 한 사람을 볼 때마다 진심어린 감사가 우러나온다. 정말 감격스럽다”고 이날 행사의 소감을 밝혔다.

 

▲ 이정규 대사가 한국 전쟁 당시 간호보조사로 근무한 잉가 브리트 예그룬드 씨와 함께 했다. (사진 제공 = 주스웨덴 한국대사관)

 

김기호 무관은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그 동안 찾지 못했던 베테랑들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한국에 파병된 스웨덴의 베테랑은 모두 1146명이다. 그리고 현재 약 40여 명이 생존해 있다”며 “지난 1년 동안 무관부에서 이 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생존 여부를 확인하고, 또 이 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된 것은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무관은 “한-스웨덴 수교 60주년인 내년에는 더 많은 베테랑들을 찾아서 더 크게 기념행사를 열어 그 분들의 헌신과 노고에 한국이 얼마나 고마워하는 지를 꼭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는 15명의 생존 베테랑, 베테랑들의 가족과 더불어 스웨덴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스웨덴군 국제센터,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등 여러 국방 관계자들, 그리고 한-스웨덴협회 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스톡홀름=이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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