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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모든 것은 천천히 시든다

<연재> 강진수의 '요즘 시 읽기' - 8회 강진수 기자lrkdwlstn96@naver.coml승인2018.10.0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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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나는 화단에 앉아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틀고 그걸 다시 녹음하고 녹음한 걸 다시 틀고 다시 녹음하고 또 틀고 또 다시 녹음하고 이런 식의 과정을 계속해서 거치면 마지막에 남는 건 돌고래 울음소리 같은 어떤 음파뿐이래. 그래 그건 정말 사랑인 것 같다. 그걸로 시를 써야겠다. 그렇게 얘기하며 화단에 앉아 옥수수를 먹었다.

너는 내가 진통할 때 전화를 했다. 나는 죽을 거 같아 전화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너는 내기에서 이겼다고 그럴 줄 알았다고 좋아했다. 도무지 어떤 일도 끼어들 수 없는 비좁은 벽 사이에서. 혼자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며 울었다. 윤은 소파에 앉아 안절부절 핸드폰을 보고. 나는 오늘 유 캔 네버 고 홈 어게인을 다시 읽었다. 그 시가 제일 좋다. 나는 그렇다.

옥수수는 은박지에 싸여 있었다. 김밥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옥수수였고 옥수수를 먹는 일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썩 잘 어울리니까. 그런데 거꾸로, 돌고래 울음을 녹음하고 틀고 녹음하기를 반복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모른다. 모르지만 너무 슬플 것 같다.

오늘은 너랑 소파에 앉아 시간이 길게 길게 늘어지다가 뒤집혀버리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쩔 때는 림보에 갇혀 있는 기분도 든다. 그치만 행복한 무엇이 무형의 뿔처럼 조금씩 자란다. 나는 현상과 감정에 무연해지고 있다. 너도 그렇다고 했다. 그 이후에 무엇을 쓸 수 있을지 생각한다고. 나도 생각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 이후와 이후에 씌어진 시와 그 시의 이후에서부터 다시 씌어진 이후와…… 이것을 무수히 반복한 다음.

바다에서 떠내려온 닳고 반짝이는 유리조각을 주웠다.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다.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백은선, <사랑의 역사>, 《가능세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뭔가 세련된 말투로 이것을 논하고 싶었지만, 항상 논할 때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이란 결코 세련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이런 질문들로 그 세계의 문을 열어 보고자 시도해보는 것이었다. 아주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과 논의 속에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에 대한 그런 뻔뻔한 태도를 바탕으로 하고 백은선의 가능세계의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 세계는 과연 사랑으로 충만한 곳일까. 아니면 고래가 하늘을 날고 사랑하는 사람이 다가와 입을 맞추는, 그런 낭만적인 공간일까.

‘가능세계’라는 제목의 시는 따로 있지만, 굳이 이 시를 선택한 이유는 백은선의 뻔뻔함 때문이었다.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를 부리면서도 이처럼 뻔뻔할 수가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그 뻔뻔함 속에서 난해하고 복잡해 보일 뿐인 그녀의 가능세계를 들여다본다면, 다시 말해 우리가 그토록 상투적으로 내뱉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전혀 다른 사랑을 열쇠로 하는 가능세계는 어떤 모습인지를 상상해본다면, 백은선의 가능세계가 더 뚜렷하게 그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시가 더욱 끌렸고, 끌린다는 것은 곧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이기에, 그것이 바로 백은선만의 세계가 갖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녀의 세계를 전부 그려보는 것은 내게 별로 관심사가 아니다. 어떻게 하나의 세계를 전부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녀 스스로 역시도 불가한 일을 내가 꾀하려 들지는 않는다. 다만 욕망하는 것은 그녀의 세계가 갖는 힘을 느끼는 것이다. 일부든 전부든, 느낄 수 있다면 그 힘을 표현할 수도 있다. 그녀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감히 말하듯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사랑을 감히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결연하게 그것을 부르짖었다는 것도 아니다. 그녀에게 사랑은 외계의 영역이다. 우리 세계의 바깥에 있는 것,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란 분명 우리 세계의 안에 존재하지는 않는다. 오직 바깥에서 우리는 사랑을 발견하고 그것이 가능함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지금 혹은 과거라는 우리 세계의 타임라인 위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뻔뻔하고 일상적인 태도와 삶은 다른 한편으로 외계에 존재하는 사랑을 열망하고 숭배하는 누군가의 의식과도 같다. 현실은 현실처럼 살아야 현실이다. 외계는 외계이고 현실과는 유리되어 있다. 이런 원칙들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것이 백은선의 가능세계다. 가능세계는 현실이라고 불리는 세계와는 경계되어 있는 공간이다. 시대다. 배경이다. 그녀는 그녀의 사랑을 오직 가능세계에서만 나타낼 뿐,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현실에 남아있는 것은 오직 눈물, 옥수수, 돌고래 울음소리 따위뿐이다.

 

▲ 사진=pixabay.com

 

더 두려운 것은 그 유리되어 있는 간격이 흐트러지는 순간이다. 가능세계가 현실세계가 되어버리는 순간. 가능세계가 불가능의 영역으로 점철되는 순간. 그런 순간이 닥쳐오면 누군가는 다시 죽음으로 시를 노래하고, 시로 종말을 선언할 것이다. 다시 이 세계의 모든 시들이 살아있는 것보다 죽어버린 것을 찬양하고 말 것이다. 백은선은 그런 종말의 순간을 경계한다. 가능세계는 늘 가능한 모든 것으로 충만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을 수 있고, 사랑을 말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나는 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을 경험하고 느껴보았다고 생각했음에도 그것은 그런 차원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느낀다. 외계의 사랑이란 그렇다. 내가 선 세계에서는 외계로 가 닿을 수 없지만, 늘 외계인들은 나의 세계를 방문한다. 사랑은 그렇게 치밀한 계획과 노력을 통해 나를 방문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런 것, 오직 가능세계의 것뿐이다. 그 외에는 거짓이다. 사랑은 불가능의 영역으로 들어설 때 그 생명력을 잃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사랑은 불멸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백은선이 살아있는 것을 대하는 태도를 보라. 누군가는 죽을 거 같고, 누군가는 좋아하고, 누군가는 안절부절하며, 누군가는 시를 읽는다. 그리고 다 같이 모여 옥수수를 먹는다. 옥수수는 백은선이 남겨놓은 유일한 삶의 메시지다. 그 모든 누군가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수많은 감정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어떤 이들에게 사랑은 궁극적인 어떤 것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없으면 안 된다. 그것이 없는 순간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가능세계를 잃으니까. 그러면 살아있다는 것은 오직 불가능의 영역에서만 유효한 것이 된다. 종말은 대재앙처럼 순식간에 들이닥치지 않는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천천히 시든다. 불가능에 지치고 괴로워서 시든다. 과감히 삶을 포기할만한 겨를조차 없는 것이다. 사랑과 가능세계, 그리고 외계인의 존재는 그런 종말의 도래를 미루어둔다.

아직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바다가 있고, 가끔씩 반짝이는 유리조각이 떠내려 오곤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딘가에 머물러 있던 것이 고여 있지 않고 떠내려 올 수 있다는 것이. 가능세계에 파도가 친다. 그 소리가 꼭 돌고래 울음소리 같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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