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 이 사회에서 재벌의 힘은 여전하다.

▲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풀려났지 않은가. 이것은 단적으로 사법부를 비롯한 소위 적폐세력과 다양한 권력기관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 기득권의 핵심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청와대가 국민 앞에서 단호하게 입장을 표명했어야 했다. 그런데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죄 값을 단죄하지 못했다. 개혁적 인사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여러 가지 경제, 재벌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재벌들이 2차, 3차, 4차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주머니에 빨대를 꽂고 빨아가는 구조에 있다. 인건비를 재벌들이 독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청업체에 정상적으로 돈이 흐르게 해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격차를 없애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걸 하지 않고 있다. 재벌들은 여전히 노동착취를 통해 기업 확장을 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 정부가 눈 감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만일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과연 현 정부가 지난 정부와 다른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정부가 지나치게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와 서민의 주머니에 몇 푼 더 넣어주는 것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다. 재벌들은 여전히 기술혁신에 의한 경쟁력이 아니고 비정규직을 포함해 외주와 하청을 통한 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할 뿐이다. 여기에 동의한 국회의원이 262명이다. 지금의 계급전쟁은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형국이다. 가진 자들의 성지인 국회가 이 문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개헌 논의조차 흐지부지 된 상태이다. 청와대는 선거제도를 바꾸겠다고 했지만 일부 야당만 찬성하고 정작 집권여당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다. 서민들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개혁입법에 토지공개념도 나오고 종합부동산세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에서 무슨 눈치를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한국사회 만큼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심각한 나라는 없다.

 

- 최저임금 문제도 여러 가지 진통을 겪고 있다.

▲ 개혁을 하는 데는 분명히 아픔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이 여론에 너무 민감해하고 여론에만 의지해 정책을 집행하다 보니까 개혁이 점점 후퇴하고 있는 모양새다. 적폐청산은 미진하고 개혁은 후퇴하는 상황이다. 그러면 왜 계급전쟁이 가장 치열한 것인가를 들여다봐야 한다.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은 최고임금이고 우리 사회의 가장 열악한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임금이다. 이들에게 임금을 더 주자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최저임금을 통해서 보호하려는 것이다. 무슨 대단한 혜택을 보려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삭감하는 법을 국회가 통과시켰다. 300명 국회의원 중에 24명이 반대했고 14명이 기권했다. 합해서 38명을 뺀 나머지 262명이 찬성했다. 최저임금 문제에 여야 경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

 

- 개혁타이밍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 촛불정부의 최대과제가 재벌개혁이다. 노무현 정권 때도 재벌은 이미 권력 위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었나. 그들은 권력을 장악해왔고 그것을 깨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촛불혁명에 나섰던 시민들의 힘을 믿고 개혁을 밀어 붙였어야 했지만 전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계다. 여기에 재벌들이 박근혜와 정경유착이라는 죄를 저질러서 국민 앞에 옛날처럼 얼굴을 들고 자기주장을 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결국 지금이 재벌개혁을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그럼에도 이렇게 더딘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독점재벌을 중심으로 한 독재정치가 낳은 폐해들 때문이다. 그런 적폐들을 해결하는 것이 지금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성장률에 대한 집착과 재벌 눈치 보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에 들어가면 정부가 임금지원을 해주는 식의 단기처방이 아니라, 확실한 재벌개혁을 통해서 재벌기업 노동자와 차별이 없는 노동임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들을 대기업에게 받아내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 일을 하지 않고 연일 변죽만 울리고 있다. 이런 종합적인 문제들이 정리되고 나면 어느 공장에서 일하든 직업의 귀천이 없어지게 된다. 지금은 직업의 호불호가 너무 갈라져있다.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다. 노동자가 존중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존중세상이 그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런 세상을 위해서 힘을 결집해야 한다. ‘위클리서울’에서도 그 문제에 대해 집중조명과 심층취재를 해주기 바란다.

 

- 국가권력의 노동탄압 상징인 쌍용차 문제, 10여년 만에 해고노동자들이 복직할 수 있게 됐다. 쌍용차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감회가 색다를 것 같다.

▲ 근 10년 동안 쌓였던 아픈 상처와 온갖 사연들을 풀어내야 하는 과정들이 사실 녹록치 않았다. 하루하루 생과 사의 문턱을 넘나드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상황을 볼 때, 지금 국가폭력이라는 사회적 심판이 내려졌고, 119명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이 성사되어 참으로 기쁘다.

 

- 결국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인가 보다.

▲ 얼마 전 MBC의 ‘스트레이트’라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쌍용차 국가폭력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지난 2009년도 쌍용차 사태는 사실상 당시 조현오 경기경찰청장이 설계한 살인진압이었다. 그 살인진압 인가를 이명박 대통령이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음이 9년 만에 밝혀졌다. 우리는 그것을 국가폭력으로 규정한다. 이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우리와 함께 같이 하자고 외쳤던 억울한 노동자와 그들을 위해 연대했던 모든 사람들을 폭도 패거리로 매도했다. 말 그대로 야만의 세월이었다. 그런 야만의 세월들을 박근혜나 이명박, 조현오 세력들은 영원할 거라 생각했을 거다. 나 역시도 진상이 이렇게 빨리 밝혀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 그럼에도 너무 많은 상처가 남았다.

▲ 동서고금을 통해 자신이 독재자이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주범이라고 말한 독재자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민중의 심판대에 올려졌고 단죄를 피하지 못했다. 그렇게 역사는 한 걸음씩 진보해왔다. 우리나라의 독재정권들도 마찬가지다. 9년 전 국가가 쌍용차 노동자를 폭압적으로 진압했던 사건이 있었다. 경찰청 인권침해진상조사위원회도 쌍용차노조 강경진압사건을 국가폭력으로 규정했다. 그런데도 경찰청장은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 없다. 분향소에 와서 먼저 간 분들에게 책임통감을 이야기했어야 하고, 대통령도 찾아왔어야 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아픈 상처를 대통령이 어루만져 주고, 과거 정권의 국가폭력을 사죄하고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겠다고 말해줘야 한다. 평택공장에 와서 ‘이제는 치유합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남겨야 맞다. 이는 한국사회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불안감 속에 살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할 것 없이 모두 그렇다. 10년 동안 국가폭력에 의해 정리해고 된 노동자들이 죽어 나갔다. 상처가 얼마나 깊고 컸는가. 이것을 대통령이 어루만져 주지 않는다면 누가 감히 치유할 수 있겠나.

 

- 쌍용차 외에 다른 노동현장의 문제들도 산적해있지 않은가.

▲ 쌍용차 문제는 국민 여러분의 관심 덕분에 노사합의에 이르렀지만, 전국 곳곳에 또 다른 쌍용차와 같은 수많은 현장들이 있다. 파인텍과 유성기업, 콜트-콜텍, 아사히글라스, 전교조 등은 새 정부 들어서도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노동자의 아픔이 서린 현장이 한두 곳이 아니다. 부디 이들 모두의 소박한 바람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쌍용차 노사합의는 단순히 하나의 현안 해결을 넘어, 이명박 정권 이후 고착화된 쌍용차 식 노조탄압에 대한 조종(弔鐘)이 돼야 한다. 일방적 정리해고에서 폭력진압→징계해고→업무방해죄 형사처벌→손배가압류 청구→어용 복수노조설립→민주노조말살로 이어지는 이른바 ‘쌍용차 노조파괴 모델’은 정리해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전국곳곳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고 노조파괴 매뉴얼이 돼버렸다. 이를 중단하고 상식적인 노사관계, 노정관계가 보장되도록 하고, 억울하게 입은 피해를 모두 되돌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쌍용차 사태의 해결이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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