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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방과 자전거 훔쳐 타기 그리고…

<연재> 온갖 역경 딛고 꿈 이룬 가수 김덕희 스토리 김덕희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8.10.0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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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희

이 글은 경기도 안성 당직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시작, 결국 가수로서 꿈을 이룬 김덕희가 쓰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다. 김덕희는 이후 이발소 보조, 양복점 등을 전전하며 오로지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 서울에서 장갑공장 노동자, 양복점 보조 등 어려운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초·중·고 검정고시에 도전, 결실을 이뤘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송창식의 ‘왜불러’,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들으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할 뿐입니다.”

<위클리서울>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연재를 허락한 김덕희가 직접 쓰는 자신의 어려웠던 삶,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얘기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그리고 모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죽산읍내에서 유일하게 친하게 지냈던 내 또래의 중국집 배달 소년은 자전거를 이용했다. 오른손엔 철가방을 들고 왼손으로는 자전거 핸들을 잡은 채 아주 멋드러진 모습으로 죽산읍내를 휘젓고 다녔다. 내가 매일 좁은 이발소 안에서 손님의 머리를 감기느라 양손에 비누와 물이 마르지 않고 있을 때 그 친구는 자전거를 타고 읍내 이곳저곳을 아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난 그런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내가 일하고 있는 이발소 안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졌다. 자전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평일엔 못하더라도 휴일엔 자전거를 탈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자전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발소 주인장의 심부름으로 죽산읍내에 있는 면사무소를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면사무소 건물은 아주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면 나오는 넓은 공터 위에 있었다. 공터에 들어서니 여러 대의 자전거가 눈에 띄였다. 면사무소에 일을 보러 온 사람들이 세워놓은 것들이었다. 그때 나의 뇌리에 번개 같이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매월 3일과, 23일이 내 휴무일이었는데 그날 이곳에 와서 여기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타보면 되겠구나…. 당시만 해도 시골 인심이 그렇게 박하지 않아서였는지 대부분의 자전거를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전거를 세우고 면사무소에서 일을 보는 그 시간동안 자전거를 타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전거 주인 몰래 타야 하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자전거를 배울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들뜬 나는 어서 휴일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D-데이가 다가왔다. 나는 아침 일찍 면사무소 앞으로 갔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아침 9시가 지나니 슬슬 내 목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전거의 크기도 아주 다양했다. 큰 것은 부담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작은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을 눈여겨봤다. 계획은 철두철미하게 진행됐다.

 

▲ 사진=pixabay.com

 

우선 자전거 주인이 자전거를 세운 뒤 면사무소에 들어가서 볼 일을 보고 다시 나오는 시간을 재보기로 했다. 면사무소 언덕 아래에 몸을 숨긴 채 한시간 가량 작업(?)을 진행했다. 대부분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리는 것 같았다.

난 그 시간만큼만 재빠르게 자전거를 타고 다시 제자리에 세워두기로 마음 먹었다. 남의 자전거로 몰래 배우려하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지만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단 한번도 들키지 않고 그날 하루종일 무려 50여대의 자전거가 내 작전에 이용됐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난생 처음 자전거 타기를 배우려 하니 넘어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도 많이 넘어지다보니 나중에 무릎은 깨지고 얼굴은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돼야 했다. 게다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자전거 주인들 눈치까지 봐야 했으니….

이발소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자장면 배달 친구와 마주쳤다. 그 친구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고 물어왔다. 난 하루종일 있었던 일을 얘기해줬다. 그 친구는 배꼽을 잡으며 웃어댔다. 그러면서 다음 휴일에는 자기가 자전거를 가르쳐 줄 테니 함께 가자고 했다.

덕분에 휴일 때마다 나의 자전거 타기는 별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내가 쉬는 날에도 그 친구는 일을 해야 했다. 때문에 배달을 가거나, 조금이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면사무소로 달려와 내가 타는 자전거를 잡아주곤 했다.

여름이 됐다. 날씨가 무더웠다. 하지만 나의 자전거 배우기는 계속됐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훔쳐 타기를 반복한 끝에 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다른 열망이 뇌리를 사무쳤다. 내가 언제까지 이 좁은 면사무소 공터에서만 자전거를 탈 것인가, 이제 좀 더 넓은 곳으로 진출해봐야겠다…. 간덩이가 부은 것이었다. 하지만 열망은 곧 현실이 됐다. 도둑질도 할수록 는다고 했던가. 난 큰 망설임 없이 자전거 한 대를 골라 죽산읍내로 나왔다. 길도 넓고 달릴 수 있는 공간이 훨씬 많았다. 난 신나게 달렸다. 달리다 보니 어느덧 읍내를 벗어나 커다른 신작로로 들어섰다. 도로 양편의 들판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아주 상쾌하게 느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드디어 올게 오고야 말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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