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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대로를 보라

<오래된 영화 다시 보기> ‘비포 선라이즈’(1995년) 정다은 기자lpanda157@weeklyseoul.netl승인2018.10.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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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비포 선라이즈> 포스터

로맨스 장르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다 비슷한 사랑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특한 소재이거나,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거나, 배경이 아름답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물론 그런 영화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역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지만 기자에게 크게 다가오진 못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1995년 개봉)다.

독립영화계의 대표 감독 중 한 사람인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와 함께 만들었다. <비포 선라이즈〉는 이후 〈비포 선셋〉(2004년 개봉)과 〈비포 미드나잇〉(2013년 개봉)으로 이어지는 연작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25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호응을 얻었다. 이후 ‘비포’ 시리즈는 모두 베를린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그리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시리즈 내내 함께 한다. 영화 속 20대의 제시와 셀린느가 나이를 먹으며 각각 20대에서 중년까지 세대를 대표하는 연인 캐릭터로 변모하는 동안 배우인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도 같이 나이를 먹어갔고 이 부분은 시리즈와 관객의 친밀도를 더 높여주는 계기로 작용한다. 9년 만에 한편씩 18년 동안 같은 감독, 같은 배우가 참여한 독특한 작품이다.

비엔나를 거쳐 파리로 가는 유럽횡단 기차 안. 할머니댁을 방문하고 파리로 향하는 셀린느(줄리 델피)는 독일 부부의 싸움으로 시끄러운 자리를 피해 옮기다가 미국인 청년 제시(에단 호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잠깐의 인사로 시작된 대화는 어느덧 두 남녀의 유년기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둘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제시는 비엔나에서 내려야 한다. 아쉬워하던 제시는 셀린느에게 하루 동안 비엔나를 여행하자고 깜짝 제안을 한다. 뚜렷한 목적지 없이 둘은 비엔나 곳곳을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 마치 연인처럼 데이트를 하며 각자의 유년기, 인생관, 사랑관, 미래에 대한 가치관 등 진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러는 동안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있음을 느낀다. 아침이 되고 다시 비엔나역. 마침내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자 둘은 6개월 뒤에 다시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서로를 떠나보낸다.

 

▲ 영화 <비포 선라이즈> 스틸컷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갑작스럽게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지나칠 정도로 뻔한 스토리. 그렇다고 뛰어나게 아름다운 유럽의 배경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대화가 특별하게 와 닿거나 여운이 남지도 않는다. 지극히 평범함 그 자체다.

그렇다면 그토록 사랑을 받았던 이유가 혹 평범함 그 자체 때문은 아닐까. 어느 남녀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대화, 평범한 데이트, 현실적인 생각과 이별 등등. 그렇다. 보통 로맨스 영화에선 이런 우연적 만남이 인연이 되고, 필연이 되는 전개로 이어지지만 이 영화는 좀 다르다. 일상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기억하게 한다. 20대 두 남녀가 균형 잡힌 시각으로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포인트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만남인 것이다. 그래서 두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그래도 뭔가 색다른 게 있겠지, 인내하며 보다 보면 어느새 영화는 끝나버리고 만다. 놓친 게 무엇일까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문제는 이 영화를 분석하려고만 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 주인공들도, 영화도, 배경도 전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는데 그 안에서 특별한 것만을 찾으려 하니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글을 쓰며 천천히 말을 풀어가다 보니 영화가 말하려는, 이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가 잔잔하면서도 매몰차게 밀려온다. 다른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할 땐 꼭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대로를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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