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이라 가즈에 지음/ 앨리스

 

부엌은 참 희한한 공간이다. 그곳에 발을 들인 사람과는 부쩍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고, 또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처럼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둔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오기도 한다. 평소에는 선뜻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이라 아마도 그곳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마음의 빗장을 조금 푸는 건지도 모른다. '그 남자, 그 여자의 부엌'은 그런 마음의 빗장을 열고 오래 묵혀 숙성되었거나, 이제 막 시작하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테마로 부엌을 그렸다. 지은이의 생활감 넘치는 칼럼이 책으로 묶인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지난여름 국내에서도 '도쿄의 부엌'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소개되어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책에서는 이전보다 더 깊어진 사랑과 짙게 풍기는 사람냄새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작가 시게마츠 기요시는 이 책의 지은이 오다이라 가즈에에게 “부엌에서 행복론을 발견한 콜럼버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의 말처럼 2013년 1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아사히신문』 웹진 ‘&w’에 도쿄에서 생활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부엌을 찾아가 생활감 가득한 풍경과 일상의 이야기를 연재해온 지은이는 익숙한 곳을 낯설게 보게 하고, 숨어 있는 행복의 힌트를 찾아내어 일상을 조금 더 풍성하게 바라보는 데 일가견이 있다. 첫 번째 책이 ‘평범한 사람들의 부엌’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그 남자, 그 여자의 부엌’이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사랑’이라는 테마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그들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부엌을 배경으로 이야기한다.

거리를 걷다 옛 연인과 나란히 걷거나 앉았던 장소를 맞닥뜨리면 순간적으로 가슴이 꽉 조여올 때가 있다. 끝났다고 믿었던 사랑의 상처가 미세하게 벌어져버리는 탓이다. 사람들의 부엌도 그런 장소와 닮은 구석이 있다. 부엌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건 연인과 지나던 거리를 걸을 때와 비슷한 경험인지도 모른다. ‘기억 저편에 두고 온 자신과의 재회’ 오다이라 가즈에는 부엌이야말로 순식간에 과거와 현재, 또 앞으로의 시간을 연결 짓는 마법과도 같은 공간이라고 역설한다.

비록 눈에 잘 띄지도, 쉽게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손때 묻은 주방도구와 그릇 등 저마다의 사랑 이야기를 잔뜩 품은 부엌에서 오다이라 가즈에가 찾아낸 행복의 실마리를 발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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