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비어드 지음/ 오수원 옮김/ 글항아리

 

이 책의 저자 메리 비어드는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는 종횡무진하는 인물이다. ‘지적인 것은 쿨하다’라는 명제의 주인공이 될 만큼 문화적 아이콘이자 여성들의 롤모델이지만, ‘인기를 추구하지 않을 권리’를 내세우는 진지한 고대 문헌학자이기도 하다. 백발의 60대 할머니로서 염색도 하지 않은 데다 생얼로 TV에 출연하는 건 마치 외모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페미니스트의 전형 같지만, 20대에 자신이 강간당한 경험에 대해서는 “강간은 과거 사건과 그 이후의 내러티브 및 해석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문제”라고 언급함으로써 페미니스트들의 반격을 산 존재이기도 하다. 복잡한 사유와 반성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해 그녀는 간단히 피해가려 하지 않는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이 입양한 딸을 강간한 사건에 대해 비어드는 “영화와 그 인물을 분리해서 사유해야 한다”고 말해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현대적 사안에 대한 이처럼 유연한 해석은 그녀가 ‘여성과 권력’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사유하도록 밀어붙인다. 핵심은 육아, 남녀 동일임금 이런 게 아니다. 사실 권좌에 오른 여성들을 보면 그녀들은 ‘남성적 권력’을 획득한 것일 뿐, 과연 그 권력은 여성을 위한 것이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이 책은 권위라는 이름 하에서 효과적으로 은폐되어온 공적 발언과 권력에 대한 남성의 지배 구조를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고 말한다. 

고전 해석에 있어 독보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녀가 원전을 대할 때 그 사건의 진실보다는 원전 저자의 관점과 맥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책에서 ‘여성과 권력’을 살펴보는 데 있어 중요하다. 관건은 사건을 전하는 저자의 견해와 신념으로서, 기존에 수용된 견해를 의심하고 지적으로 불편한 존재가 되려는 게 그녀의 지향점이다. 

트위터상에서 보수주의자나 악성 댓글러들로부터 피 터지는 공격을 받은 뒤에도 사석에서 그들과 만나 식사를 하고 그 이상한(?) 행위자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려 하는 그녀의 행보는 제대로 된 대화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메건 비치라는 시인이 '나는 자라서 메리 비어드처럼 되고 싶다'를 펴낸 것은 많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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