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 다시보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4년)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포스터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포스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숨을 죽여야 했다. 두 남녀 사이의 드러나지 않은 미묘한 감정이 보는 이를 긴장하게 한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 작품을 보고 영감 받아 소설을 쓴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 영화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4년 개봉)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콜린 퍼스)가 아닌 그림 속 주인공 그리트(스칼렛 요한슨)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리트는 요하네스 베르메르 집의 하녀로 일하게 된다. 작업실을 청소하던 중 그의 작품을 본다. 그리고 둘은 그 작품을 통해 교감한다. 단순히 예술적인 감정을 넘어 사랑으로까지 발전한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다. 베르메르에겐 이미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둘만의 미묘한 감정을 아슬아슬하게 이어갈 뿐이다.

두 주연배우의 연기가 돋보인다. 특히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가 뛰어나다. 대부분 침묵과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절제돼서 인상 깊다.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가장 그녀를 매혹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콜린 퍼스와도 묘하게 잘 어울린다.

콜린 퍼스는 영화 <킹스맨>에서 영국 신사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번엔 달랐다. ‘이게 콜린 퍼스라고?’ 싶을 정도였다.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 지나서야 그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긴 머리에 부드러운 분위기, 여자들에게 휘둘릴 정도로 나약한 모습. 하지만 콜린 퍼스 특유의 절제된 연기가 중심을 잡아준다.

이런 미묘한 심리는 남자보단 여자가 잘 표현해낸다. 아무래도 소설을 쓴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나 싶다. 감독인 피터 웨버가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도 곳곳에서 엿보인다. 둘이 주고받는 눈빛 그리고 대화, 별다른 신체접촉이 없는데도 화면을 지배하는 야릇한 분위기가 보는 이를 빨아들인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스틸컷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스틸컷

장면 하나하나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작품들처럼 아름답다. 그의 작품과 최대한 흡사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색감, 사물, 빛의 양까지 섬세한 감각이 느껴진다. 마치 전시회장에 와있는 느낌이다. 원작에 비해 뒤처질 수 있는 부분을 뛰어난 감각으로 채워준다.

드라마틱한 복선은 없다. 이런 분위기의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잔잔한 분위기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할 것이다. 조용하면서도 숨 막히게 매혹적이다. 특히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리트의 귀를 뚫어주는 장면은 압권이다. 단지 귀를 뚫어주는 것이지만 어떠한 신체 접촉보다 더 많은 감정들이 교차하게 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 장면을 손에 꼽는 이유다. ‘노출이 없지만 숨죽이고 보게 될 정도로 야릇한 분위기였다’ ‘두고두고 기억날 관능적 장면’ 등. 잔잔하고 매혹적인 영화에 푹 빠져보고 싶다면 꼭 찾아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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