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날은 흐려도 모든 것이 진했던
[신간] 날은 흐려도 모든 것이 진했던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8.12.31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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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언 지음/ 달

 

힘들거나 슬플 때, 행복하거나 기쁠 때 우리는 그날을 기록으로 남긴다. 서랍 안쪽 혹은 책장 한구석에서 우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 해묵은 일기장이 펼쳐져 읽히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이라면 일기장 위에 적혔을 글들은, 요즈음에는 SNS 채널에서 한 장의 사진과 짧은 글로 그 감정을 대신한다. 어찌됐든 그날의 감정이 빼곡히 담긴 그 이야기들은 대개 시간이 아주 흐른 뒤에 다시 읽히곤 한다. 다시 읽힐 즈음에는 그날의 감정이 어느 정도 희석되었을 테지만, 그 당시의 날것의 감정을 품은 채 일기장 너머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건다. 나는 이때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었어, 지금 너는 어때? ‘지금 너는 어떠냐’는 물음에 어떤 대답이 적절한지는 알 길이 없다. 저마다의 사연이 다른 만큼 각자가 서로 다른 일기의 흉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 '날은 흐려도 모든 것이 진했던'에는 저자가 신문사 기자에서 방송사 PD로, 그리고 그 속에서도 직종 전환을 하며 살아온 10년간의 한 시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과 길을 걷다 스치듯 지나가는 익명의 타인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그려진다.

이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소리의 세계’는 저자가 라디오PD로 일하며 경험한 일들이 담겨 있다. 처음 라디오PD로 시작해 ‘들려오는 것’들에 대해 좀더 섬세하게 체감하게 되며, 라디오 음악 선곡을 하며 모르는 노래가 나올 때 “아, 국영수만 하지 말고 음악도 좀 할걸”하며 후회하는 모습, DJ의 팬들이 보내온 문자를 보며 어릴 적 본인의 팬클럽 활동 시절을 생각하는 모습은 공감과 함께 웃음을 자아낸다. 2부 ‘혼자서 말 걸기’에는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하며 맞지 않는 자리에서 진짜로 하고 싶은 일들 혹은 자기 자리를 조금씩 찾아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갈피를 못 잡던 시절,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싶었던 내밀한 마음들을 편지를 보내듯 건네고, 각자의 자리에서 담담하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발견하게 된다. 3부 ‘멈추어 듣다’에서는 길을 가다가 만난 사람들과 그 속에서 발견한 삶의 표정들을 담았고, 마지막으로 어릴 적 살았던 복도식 아파트, 가족과 학창 시절의 추억 등을 회고하는 4부 ‘안녕 나의 세계’로 이어진다.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흐리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지만 돌아보면 무엇보다 진했던 한때, 이렇듯 추억은 다시 기억되기 때문에 찬란한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시간들을 거쳐 '푸른 밤 종현입니다', '음악의 숲 정승환입니다', 'FM영화음악 한예리입니다' 등을 연출한 라디오PD로 살아가고 있다. 

그가 언제나 있고 싶었던 곳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조곤조곤 들려오는 ‘소리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저자는 어디서든 눈으로 보기보다 귀를 먼저 기울이며 거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위에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덧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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