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 보기]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5회

 

시간에 맞춰 투어버스가 식당 앞으로 도착했다. 10인용도 안될 듯한 작은 승합차가 우리 앞에 선다. 한국인 가이드인 줄 알았는데, 버스에서 현지인이 내린다. 일단 투어를 확인한 뒤 버스에 오른다. 우리가 마지막 탑승순서라 가득 찬 자리. 하는 수없이 친구와 떨어져 조수석에 앉았다. 코타키나발루는 자동차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택시를 탈 때도 항상 뒷좌석에만 앉았던 터라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 친구와 떨어져 앉아 가는 건 아쉬웠지만 앞자리에서 더 많은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불편할까봐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는 현지인 가이드. 알고 보니 가이드가 아니고 운전기사였다. 가면서 기자가 놓칠법한 풍경을 보여줬다. 찻길에 소들이 자연스레 지나가고 한적한 바닷가,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까지.

그렇게 구경을 하며 가는데 메시지가 온다. 뒷자리에 앉은 친구다. 함께 차를 탄 한국인 가족들이 너무 시끄럽단다. 맞다. 솔직히 기자도 친구와 같이 뒷자리에 탈 수 있었으나 자신들의 아이들이 자고 있다는 이유로 옆자리 보조의자를 못 펴게 해 앞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치 차를 전세라도 낸 것 마냥 내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다. 같은 돈을 주고 투어를 하는 건데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것에 친구는 화가 났다. 우리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다른 여행객들도 그 가족들과는 절대 같이 하고 싶지 않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너무 시끄러운데다 자신의 아이들을 챙기느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즐거워야 할 여행길,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가족들이었다. 여행을 다니다가 이런 한국인들을 보면 나라 망신을 시키는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다.

 

약 30∼40분을 달려 일몰이 아름다운 무아라비치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 해변으로 향했다. 모든 시설물은 원주민 ‘바자우족’의 전통방식으로 건축됐다. 한국인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자유로운 체험이 가능했다. 체험을 위해 이동하는데 현지인 가이드가 따라 붙는다. 현지인 가이드 한명이 두 팀의 관광객을 담당하는데 운이 좋아 우리만 따로 가이드가 붙었다. 하나하나씩 꼼꼼히 체험하게 해주고 자세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우리 또래쯤으로 보였다.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매일 일몰을 배경으로 자신이 담당하는 관광객들 사진을 찍어주는데 전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예쁜 하늘을 봐서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정말 드물게 아름다운 날이었단다. 설명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한국인들이라면 저렇듯 열정적이면서 순수하지 못할 텐데…. 하지만 이 젊은 가이드는 자신이 맡은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행복해할 때가 가장 뿌듯하고 자신 역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남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가이드 덕분에 천에 물을 들이는 물감 체험, 헤나 체험, 독침 체험, 공중그네 체험까지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가이드는 서서히 지는 환상적인 일몰을 배경으로 ‘인생샷’까지 찍어줬다. 포즈까지 직접 다 교정해주는 센스. 나중에 한국인 가이드에게 들어보니 우리를 담당했던 가이드가 여기서 가장 사진을 잘 찍는다고 했다. 운이 좋았다.

해변에서의 자유시간이 끝난 뒤 간단한 저녁식사와 함께 불쇼가 펼쳐졌다. 이곳 현지인 가이드들이 직접 하는 것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이 장난감이라도 되는 양 태연하게 묘기를 펼쳤다. 몸에 스치기도, 입에 넣기도, 뿜기도 했다. 멋진 공연을 보고 배부르게 식사도 한 뒤 드디어 투어의 메인 반딧불을 보러 출발했다. 무아라해변 근처 강가에서도 볼 수 있지만 개체수가 많이 줄어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한단다.

 

차를 타고 약 20∼30분가량 이동했다. 숲 속 깊이 들어가느라 어둡고 흔들리는 차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숲 속 깊은 곳에 세대의 차가 멈춰섰다. 숲 사이로 흐르는 강 위로 배를 타고 지난다. 반딧불을 잘 보기 위해서 모든 빛을 차단했다. 그래서 반딧불 체험에서 인증샷을 쉽게 볼 수 없다. 핸드폰을 켤 경우 그 불빛이 너무 환해 반딧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모두 숨죽이며 반딧불을 기다렸다. 약 2∼3분 들어가자 뱃머리에서 가이드가 깜빡이는 손전등을 켰다. 그러자 숲쪽에서 손전등 불빛에 반응해 반딧불이들이 서서히 빛을 낸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같다. 더 깊이 들어갈수록 더 많아진다. 반딧불이 많은 곳에 잠시 배를 세운 뒤 손전등으로 팔을 빙빙 돌리며 크게 원을 그린다. 그러니 숲에 있던 반딧불이들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날아온다. 별이 쏟아져 내린다면 이런 광경이 아닐까. 마치 은하수처럼 반딧불이들이 서서히 다가와 배에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를 날아다닌다. 사람들은 이 황홀한 장면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반딧불이가 놀랄까봐 “우와~” 낮은 탄성을 지르며 손 안에 넣어 지켜보기도 하고 날려 보내기도 한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꿈속에서라도 다시 보고 싶은 황홀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투어가 끝나고 코타키나발루에서 유명한 대형 쇼핑센터에 갔다. 아직 다 사지 못한 기념품을 사가기 위해서다. 마사지숍 예약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각자 사고 싶은 물건을 고른 뒤 입구에서 만났다. 기자는 라면과 지인들에게 나눠줄 간식을 골랐다. 양손 무겁게 짐을 들고 마사지숍으로 향했다. 마사지숍에 도착하자 때마침 여행 내내 온다던 비가 그제서야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우리가 떠날 시간에 맞춰 내려주는구나. 일단 마사지숍으로 들어간다. 투어 하는 동안 흘린 땀을 샤워실에서 씻어냈다. 따로 준비해주는 속옷과 가운을 입고 전용 침대에 엎드렸다. 마사지숍은 굉장히 조용해서 밖에 내리는 빗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천둥소리가 들려오고 번개가 친다. 우리가 받을 건 아로마 마사지. 마사지가 익숙하지 않은 기자를 위해 친구가 강도 높은 타이마사지 대신 아로마 마사지를 받자고 했다. 마사지가 시작됐다. 묵묵히 받고 있는 친구와 달리 미끌미끌한 오일을 발라 마사지를 해주니 기자는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으억!” 친구는 창피하단 듯 웃고 마사지를 해주시던 직원분이 어설픈 한국말로 “간지러워?” 하고 물어온다.

 

간신히 마사지를 마친 뒤 공항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공항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제 새벽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참 동안 천둥, 번개가 치던 하늘이 비행기 이륙간이 되자 잠잠해졌다. 여행 내내 날씨 요정이 도와주는 기분. 다른 여행지에 비해 보고, 먹고, 즐길 거리는 적었지만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다. 잘 쉬다 갑니다, 코타키나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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