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오 슈스케 지음/ 문학동네

 

2004년 데뷔 후 '까마귀의 엄지' '광매화' 등의 작품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석권하며 왕성하게 활동중인 작가 미치오 슈스케. 미스터리로 시작해 진중한 본격문학과 트렌디한 연애소설까지 장르의 틀을 넘어 대중성과 문학성을 고루 인정받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초등학생 소년을 주인공으로 누구나 공감할 법한 모험담을 담아낸 성장소설을 선보인다. 일본 출간 당시 스티븐 킹의 '스탠 바이 미'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과 함께 여러 TV 프로그램과 잡지에서 ‘어른을 위한 최고의 성장소설’로 꼽혔다.

2011년 제144회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달과 게'를 비롯해,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에는 어린이와 청소년 주인공이 곧잘 등장한다. 전 세계가 숨죽여 귀를 기울인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교신 내용으로 시작하는 '빛'에서도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 리이치와 그 친구들의 일상 속 크고 작은 모험담이 펼쳐진다. 읽는 이의 공감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탁월한 묘사, 미스터리 장르에서 먼저 진가를 인정받은 흡인력 있는 문체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교외 택지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전, 백화점이나 오락실에 가려면 전철을 타고 한참 나가야 하는 시골 마을. 막 여름방학을 맞은 리이치와 친구들에게는 동네 산과 호숫가가 최고의 놀이터다. 호기심 덩어리에 장난치기 좋아하는 단짝친구 신지, 정신연령 낮은 동생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주는 신지의 누나 에쓰코,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단둘이 허름한 집에 사는 기요타카, 툭하면 부자 아빠를 자랑하며 잘난 척해서 눈총을 받는 히로키. 집안 환경, 장래희망, 성적 모두 제각각인 아이들도 새롭게 발견한 놀거리 앞에서는 모두 한마음이 된다. 평소 어울려 놀던 들개가 갑자기 사라진 후 강물이 붉게 물든 사진이 찍히자 진상을 찾아 나서고, 교감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들려준 거대한 잉어 전설을 확인하기 위해 통행이 금지된 호숫가로 어른들 몰래 탐험을 떠나고, 공사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암모나이트를 이용해 얄미운 친구를 골려줄 셈으로 지점토 모조품을 만들어내고, 병원 입원으로 고대하던 불꽃놀이 대회를 구경할 수 없는 친구의 할머니를 위해 때 이른 반딧불이 애벌레를 잡아 모은다. 바깥세상과 이성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싹트기 전, 사춘기의 문 앞에 선 소년의 눈으로 그려낸 일상과 비일상의 접점은 이윽고 복잡한 현실 문제로 이어지며 작지 않은 모험을 불러온다. 컴컴한 동굴 안에 도사린 어른들의 악의와 분노, 절망을 목격한 그날 이후, 언제까지나 계속될 듯하던 아이들의 일상에도 피할 수 없는 변화가 찾아온다. 

'빛'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떠올리며 자전적인 소설을 써보기로 결심한 리이치의 시점으로 서술되고, 각 장마다 현시점에서 쓰인 짧은 일기 같은 에필로그가 덧붙어 소설의 내용이 이미 어른이 된 주인공의 회상임을 알려준다. 계절이 한 바퀴 도는 동안 나와 친구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아폴로 11호의 교신 내용 테이프를 들으며 우주여행을 상상하고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던 시절에는 미처 눈에 보이지 않던 변화가 어른이 되어 돌이켜보는 지금은 생생히 드러난다. 마지막에 가서야 독자들이 깨닫게 되는 일종의 서술트릭에서는 미스터리 작품들로 먼저 이름을 알린 작가의 장기를 엿볼 수 있다. 보편적인 동심을 자극하면서 장르적 재미도 놓치지 않는 필력은 일본을 대표하는 대중작가로서 점점 영역을 넓혀가는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세계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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