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18년의 귀양살이 동안 다산은 참으로 많은 시를 지었습니다. 궁액에 빠진 자신의 신세를 한없이 한탄하는 시도 많았지만, 세상을 걱정하고 나라를 염려하면서 불쌍하고 가난한 농민들의 아픔에 무한한 동정과 연민의 정을 토로한 시도 매우 많았습니다. 꼬박 10년의 세월을 보낸 다산초당의 삶에서 뜻깊은 시들을 많이 지었는데 한편으로는 경학(經學)연구에 온 정성을 바치다가도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이면 끝도 없이 시들을 지었습니다.

 

박석무
박석무

「송풍루잡시(松風樓雜詩)」라는 제목의 16편의 시는 다산초당의 곁 동쪽에는 동암(東菴), 서쪽에는 서암(西菴)을 따로 짓고 동암은 자신이 거처하는 집으로 서암은 학생들의 거소로 삼았던 곳인데, 그때의 동암의 다른 이름으로 ‘송풍루’라는 운치 있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송풍루잡시」란 바로 송풍루에 기거하면서 여러 가지 글제로 읊었던 시였습니다. 지금 가보아도 동암의 곁에는 큰 노송이 버티고 서 있는데, 그때도 그런 소나무가 서있고 바람이 불면 솔바람 소리가 또렷이 들려서 송풍루라는 이름을 지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산에 사노라니 일마다 청빈이 몸에 배어

물욕일랑 사라지고 내 몸 하나뿐이라오

타향은 내 땅 아니란 말 못 믿겠고

평지에 지내면서도 신선처럼 산다네

약 찧는 절구 이끼 낄 새 없이 자주 찧으나

차를 자주 못 다려 화로에 먼지 끼네

법희(法喜)를 아내 삼으니 그것도 좋으니

부처 말씀 모두 틀려도 그것은 진리라네

山居無事不淸貧

物累消除只一身

未信他鄕非我土

好從平地作仙人

頻舂藥臼煩無蘚

稀煮茶鑪靜有塵

法喜爲妻洵可樂

佛言皆妄此言眞
 

외롭고 쓸쓸하기 그지없는 귀양살이, 산속의 서러운 독방에서 혼자 살면서 온갖 생각에 괴로움이 없으랴만, 모든 물욕 버리고 타향을 고향으로 여기고 살아간다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내용이 애처롭습니다. 신선세계가 아닌 땅 위에서 지내지만 마음은 신선과 같고, 몸이 아파 약 달이는 날이 없지 않아 약절구야 번질거리지만 차 끓이기는 쉽지 않아 화로에 먼지만 끼인다니 삶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유마경(維摩經)』이라는 불경에 “법희는 아내로 삼고, 자비(慈悲)는 딸로 삼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법을 듣고 희열을 느낀다는 ‘법희’를 아내로 삼는다니 불법이 높은 도승(道僧)이야 당연하지만 속인(俗人)의 한 사람인 다산이 법희를 아내로 삼고 살아간다니 얼마나 곤궁하고 궁색한 이야기인가요. 그렇게 해서라도 외롭고 궁함을 극복하고 그렇게 큰 학문적 업적을 이룩한 다산의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시에서 다산의 불교관이 보이는 점은 따져야 합니다. 다산의 여러 글에는 불교에 대하여 찬성하지 않았던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스님들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경우 “이런 훌륭한 사람이 왜 하필이면 불교에 빠졌는가?”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많은 불경에 대하여 높은 지식을 지녔고, 큰 학승(學僧)들과 아주 가까이 지냈으면서도 불교의 진리에는 견해를 달리했던 다산의 생각을 이런 대목에서 보게 됩니다.

청빈하게 귀양살던 다산의 모습을 이 시 한 편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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