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 톺아보기] ‘조디악’(2007년)

 

영화 '조디악' 포스터
영화 '조디악' 포스터

실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을 거라고 믿기지 않는 끔찍한 사건들. 그런 사건들이 미제로 남아 책으로 영화로 다시 세상에 밝혀진다. 이런 사실들이 서서히 사람들 기억에서 잊히지 않게, 더 넓은 세상에 알려지기 위해서다. 그 중 상영시간 157분, 약 2시간 30분 동안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은 영화가 있다. 경찰을 조롱하는 희대의 살인마 <조디악(2007년 개봉)>이다.

1969년 8월 1일, 샌프란시스코의 3대 신문사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발레호 타임즈 헤럴드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이 편지에는 1968년 12월 20일 허만 호숫가에서 총에 맞아 살해된 연인, 1969년 7월 4일 블루 락 스프링스 골프코스에서 난사 당한 연인 중 남자만 살아남았던 사건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편지에 적힌 단서들은 사건을 조사한 사람 혹은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신문사는 업무가 마비될 정도가 된다.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 이후 언론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신원에 대한 단서를 던지며 경찰을 조롱하는 살인범은 처음이었기 때문. 범인은 함께 동봉한 암호문을 신문에 공개하지 않으면 살인을 계속하겠다고 협박한다. 그리스어, 모스 부호, 날씨 기호, 알파벳, 해군 수신호, 점성술 기호 등 온갖 암호로 뒤범벅된 이 암호문을 풀기 위해 CIA와 FBI, NIA, 해군정보부, 국가안전보장국의 전문가들이 동원되지만 풀리지 않는다. 신문에 게재된 이후 어느 고등학교 교사 부부가 암호를 풀어 범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삽화가이자 암호광인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제이크 질렌할)가 1932년에 만들어진 영화 <가장 위험한 게임(The Most Dangerous Game)>을 참조해 살인의 숨겨진 동기를 해독하게 된다. 경찰은 범인이 자신의 별명을 조디악이라고 밝히자 그를 ‘조디악 킬러’라고 명명하고 수사에 착수한다.

이 사건은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발한 1966년 이후 현재까지 끝내 검거되지 않은 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 실제 영구 미결 사건이다. 70년대 초 당시 7살이었던 데이빗 핀처 감독은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조디악이라고만 알려진 보이지 않는 괴물에게 사로잡혔다. 어린 시절을 온통 조디악에게 사로잡힌 그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스릴러 영화의 교과서로 일컬어지는 <세븐>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조디악 킬러’를 본격적으로 다룬 <조디악>을 찍게 되었다. 영화에 언급된 로버트 그레이스미스 역시 실존 인물이다. 조디악의 초상을 그리고, ‘조디악’이란 책을 쓴 원작자다. 그레이스미스는 핀처가 느낀 것과 동일한 강박관념을 베스트셀러가 된 ‘조디악’과 후기작 ‘조디악 언매스크트’ 두 권의 책으로 풀어냈다.

실제 이야기에 책으로까지 출간되어 영화의 내용은 탄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연출하느냐가 문제였다. 길고 지루한 싸움이 이어졌다. 영화에서도 조디악을 쫓는 형사, 기자들이 얼마나 지루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그리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 지루한 싸움을 함께 하게 한다. 2시간 반 동안 불분명한 조디악의 정체를 함께 추리하게 한다. 몰입도가 좋다. 긴 상영시간이지만 한시라도 딴청을 피울 수 없다. 혹여 조디악에 대한 정보를 한 개라도 흘려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영화 '조디악' 스틸컷
영화 '조디악' 스틸컷

그레이스미스를 연기한 제이크 질렌한. 그는 그레이스미스의 열정과 민감함을 제대로 연기해냈다. 사실적으로 연기하기 위해 계획적이고 과학적인 과정을 체험했다. 그레이스미스를 만나 그의 독특한 버릇을 연구하고 행동과 성격을 파악했다. 출신배경과 공손한 태도, 기질까지 완벽하게 잡아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폴 에이브리역에 적임자였다. 동료 배우들에게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며 이야기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특별한 에너지를 지닌 그. 유일하게 현재 생존해있지 않은 인물 폴 에이브리 역시 유머감각 있고 뼈 있는 농담을 즐겨 하던 유능한 기자였다. 그러나 코카인에 손을 댔고 중독되어 몸이 심하게 망가졌다.

토스키는 사건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1977년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를 만났고 책 집필을 도와주며 현재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마크 러팔로는 자신이 맡은 토스키라는 인물과 감독이 각본에 그린 그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잔인하기 때문에 스릴러를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이 연기하게 될 토스키라는 캐릭터는 배우들이 누구나 탐낼만한, 형사를 연기하려고 할 때 모델이 될 만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진한 여운이 남는다. 언제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내내 긴장감이 흐른다. 놀랄 만한 장면은 하나도 나오진 않지만 보다보면 왠지 모르게 오싹해진다.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기막힌 명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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