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갈노] 윤종수의 히말라야에서 보내온 편지

여기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의 땅 네팔이다.
3월의 아침, 여명이 밝아오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보인다.

 

오늘 같은 날은 배낭을 어깨에 걸쳐 메고 길을 떠나야 한다.
러트너 버스팍에 가면 솔로쿰부 쪽으로 가는 버스들이 기다리고 있다.
마음에 드는 적당한 버스를 휙 집어타면 된다.
끝까지 가는 버스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다.
길이 닫혀 있으면 그 근방까지 가서 걸어가면 된다.
여기 네팔에서는 확정된 것이 없다.
왜 바뀌었냐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체념하는 방법과 적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지난번에는 번달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요즘엔 밤티까지 가는 버스가 있을 것이다.
먼지를 뚫고 마지막 버스 종점에서 내리면 얼추 저녁쯤 될 것이다.
거기에서 적당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머무르면 된다.
언제나 먹을 것은 변변치 않다.
노란 꺼리에 풀풀 날리는 밥을 비벼 손으로 먹는다.
된장이나 고추장에 양파나 멸치를 찍어 곁들여 먹으면 그래도 먹을 만 할 것이다.
히말라야의 밤은 언제나 길다.
텔레비젼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고 할 일은 눈을 감고 명상기도를 드리는 것뿐이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히말라야의 여명을 맞이해야 한다.
빈 속으로 휘적휘적 히말라야의 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아침부터 밥맛도 없는데 무엇인가 배를 채우고 걷는다면 그 맛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루를 힘들게 더 이상 걸어갈 수 없을 때까지 걸어가면 굼빠가 나올 것이다.
거기에는 히말라야 자락 밑에 따뜻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날 아침에는 일찌감치 해뜨기 전에 일어나 굼빠 쪽으로 나가야 한다.
운이 좋으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장면을 만나게 될 것이다.

 

피케이 피크로 가는 길은 흰색, 분홍색, 붉은색 랄리구라스가 가득할 것이다.
벌들이 웅웅거리는 소리가 산 전체에서 울려나올 것이다.
고사목 속에 피어있는 랄리구라스는 얼마나 가슴 설레게 하는가?
역시 꽃들은 수줍음이 있어야 한다.
피케이 베이스캠프에는 양떼들이 풀을 뜯고 거기엔 한 채의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주인장은 나와 이름이 같은 셀파이다.
그때 그는 나를 위해 소뼈를 고아 만든 툭빠를 건네주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피케이 피크(4,068m)에 올라야 한다.
길을 잘 알지 못하면 정상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케이 정상에서 일출을 바라보는 맛은 세계 최고이다.
피케이에서 닾(Dhap)으로 내려오는 길은 네팔 최고의 랄리구라스 숲이 펼쳐진다.
휘파람을 불며 꽃향기를 맡으며 길을 걷는 맛은 천상의 시간이다.
올 해는 어느 도반이 찾아와 같이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나 올 수 없고 아무나 걸을 수 없는 그 길을 나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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