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학쟁이와 빨갱이는 동의어
천주학쟁이와 빨갱이는 동의어
  • 박석무
  • 승인 2019.04.29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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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오늘날 사학(邪學:천주교)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으니 인륜을 파괴하고 교화에 배치되어 저절로 짐승이나 이적(夷狄)에 돌아가 버린다. 엄하게 금지한 뒤에도 개전의 정이 없는 무리들은 마땅히 역률(逆律:역적죄)에 의거하여 처리하고 각 지방의 수령들은 오가작통(五家作統)의 법령을 밝혀서 그 통(統) 안에 사학의 무리가 있다면 통장은 관에 고해 처벌하도록 하는데, 당연히 코를 베어 죽여서 씨도 남지 않도록 하라.”라는 법령의 반포는 바로 계엄령의 포고령 같은 무서운 내용인데, 『순조실록』 신유(1801)년 음1월10일자에 실린 내용이다. 바로 순조원년 수렴청정하던 정순대비가 내린 금령이었습니다.  

 

박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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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무서운 포고령 때문에 신유년 1년 동안에 일어난 ‘신유옥사’의 대참사는 연초에 시작되었고, 그해 겨울까지 수많은 옥사가 일어나면서 무려 300여 명이 넘는 천주교 신자나 신자로 몰린 무고한 사람들이 풀을 베듯, 짐승의 목을 치듯 목숨이 날아가는 사건이 줄이어 일어났습니다. ‘코를 베어 죽여서 씨도 남지 않도록 하라’는 법령은 ‘천주학쟁이’는 바로 요즘의 ‘빨갱이’와 같아 죽여도 된다는 논리가 인정되어 조건 없이 죽일 수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일제시대에는 반일 사상가나 독립 운동가는 모두 빨갱이였고, 해방 후로는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도 빨갱이로 몰려 개인과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신유옥사에는 진짜 천주학쟁이도 많아 법령대로 죽을 사람도 있었지만, 천주학쟁이가 아닌데도 당파싸움 때문에 반대파 정적들이 천주학쟁이로 몰려 죽음을 당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다산의 기록에 의하면 대표적으로 정헌 이가환이 천주학쟁이가 아닌데도 모함과 가짜 뉴스로 죽임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나는 공(이가환)에게서 천주학쟁이라는 의심스러운 자취를 본 적이 없는데, 서너 명 불여우 같은 자들이 모함하고 헐뜯고 짖어대 끝내는 사학의 수괴로 극형을 받게 되었으니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일반 세상에서는 지위가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영수(領袖)로 삼는데, 천주교에서는 그렇지 않고 죽음에 이르도록 마음이 변하지 않는 사람을 두목으로 삼으며 비천한 종이라도 구애받지 않았다. 공은 여러 상소와 계사(啓辭) 및 옥중의 답변 내용을 보더라도 모두 천주교를 극구 배척하고 있다. 설사 외형이나 내면이 그럴싸하다 치더라도 죽음에 이르도록 변심하지 않을 사람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데 어떻게 천주교의 수괴라고 할 수 있겠는가?”(「정헌이가환묘지명」)라는 내용은 빨갱이가 아닌데 빨갱이의 두목으로 몰아 죽였던 패악한 정권의 만행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당대의 천재학자로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판서에 이른 대감을 그렇게 사형시켰습니다. 물론 다산 자신도 진즉 천주교와는 관계를 끊었는데 한때 천주학쟁이였다는 죄목으로 오랜 유배살이를 하고 말았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천주학쟁이가 가장 두렵고 무서운 호칭이지만, 현대 한국에서는 ‘빨갱이’라는 호칭이 가장 무섭고 두려운 호칭입니다. 독재시대에 정권에 반대한다고 얼마나 많은 가짜 빨갱이들이 양산되었던가요. 요즘 어떤 야당은 정파가 다른 정당이 집권했다고 집권당이나 현 정부를 좌파정권, 즉 빨갱이 정권으로 몰아붙이고 북한 집권자의 대변인이라고 현 대통령을 몰아붙이고 있는데, 마치 신유옥사에 벽파들이 반대파들을 천주학쟁이로 몰아붙이는 것만 같아 무서운 생각이 앞섭니다. 잘못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뜻을 조목조목 밝히면 되는데, 정권 자체를 혹독한 단어로 매도해야만 하는지 무서워서 하는 말입니다. 언어를 조금 순화하면 어떨까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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